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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혁, 「정조대 척사론자들의 활동과 후대의 평가」, 『조선시대사학보』, 102, 2022


이 논문은 정조대 촉사론자들의 활동과 후대의 평가를 다룬 글이다. 저자는 이를 학문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 사회적 활동 측면의 세 부류로 나눈다. 우선 학문적 활동의 경우, 성호학파 안정복에 대한 평가를 예로 들 수 있다. 제자 황덕길은 안정복의 행장을 지으면서, 안정복의 척사활동을 고평가하였다. 안정복은 성호학파의 학맥을 잇는 중요 학자로 『천학고』와 『천학문답』을 저술하여 본말을 궁구하고 시비를 가려 그것을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상제와 귀신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였다. 또한 동시에 이황-이익-안정복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계보도 밝히고 있다. (184~185쪽)

이어서 충청도 지방에서 거주한 성호학파 이삼환에 대한 평가도 덧붙였다. 이삼환은 이익의 조카인 이병휴의 아들로 『양학변』을 저술하여 척사 활동에 힘썼다. 이삼환의 행장은 손자 이시홍은 행장에서 이삼환의 척사 활동을 강조했으며, 『양학변』 저술과 함께 정조가 충청도 지역에 천주교가 퍼지지 못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기고자 한 것도 빼놓지 않았다. (186쪽) 

이는 노론 계열도 마찬가지이기에 노론 계열에서는 정조~순조대에 조유선의 척사 활동을 매우 강조하였다. (187~191쪽)

정치적 활동에서는 신유박해 이후 정치계에 자리를 보존하게 된 근기남인들이 척사 활동을 부각시켰다. 강준흠은 목만중의 신도비명을 저술하면서 만중을 안정복 ·이헌경과 동일선상에 위치시켰다. 목만중은 안정복 · 이헌경과 달리 척사에 관련된 저술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강준흠은 목만중을 그들과 동일선상에 위치시킨 것이다. (191쪽) 이는 앞으로의 정치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친서파 근기남인과 천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배척하는 입장에 있었으므로 천주교 문제로 인해 친서파 근기남인과 엮여 공격받는 상황을 차단하고, 앞으로의 정치 활동을 이어 나가기 위한 정치 명분에 혐의가 될 것이 없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2~196쪽 참조) 

노론 시파 윤행임 역시 친서파 근기남인과의 관계를 의심받고, 정적에 의해 이를 비판받았기에, 아들 윤정현은 행장을 통해 이를 부정하고, 윤행임의 척사 활동을 강조하였다. (196~198쪽)

사회적 활동에서는 정조대의 평택 출신의 유생 조상본이 있다. 조상본은 평택현감 이승훈이 공자의 사당을 참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권위, 조상본 등이 이를 성균관 유생들에게 알려 이승훈은 청금록에서 삭제되었으나, 이승훈의 동생 이치훈의 청원으로 재수사가 시작되었고 권위는 형문 중 사망하고, 조상본은 유배되었다. 이를 ‘평택사건’이라 한다. 순조대 이후 이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고, (201~204쪽) 조상본의 행장을 지은 송병선은 천주교가 더욱 확산되던 19세기 중반에 척사의 모범으로 조상본을 삼았고, 그의 척사론을 강조하였다. (203~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