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인생에서 상실을 진지하게 경험해본 사람들이
goat으로 꼽는거같고
아직 어린애들
or
그냥 낙관주의자
or
늘 인생에서 성공만 해서 굴곡 모르고 자란 사람들
(작중으로 따지면 나가사와 선배같은 애들)
이런애들은 책보고 뭔 이딴책이 다있지?
이러는듯.
그래서
작중의 표현처럼
뒤틀림이 있고
자기의 뒤틀림을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 책을 진짜 애정함.
작중의 표현처럼
뒤틀림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바깥세계 사람들은
이책을 보고서는 아무 느낌도 없을거임.
책의 한국판 구판 제목인
<상실의 시대>도
정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함.
노력을 했지만 인생 안풀린 사람
그 과정에서 여러번의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삶의 실존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던 사람들,
상실로 인하여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던 사람들.
작중의 와타나베는
독일행 비행기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나오코의 상실이라는 상처에 또 혼란스러워 하던 장면이 있었지.
나오코 역시 기즈키의 상실로
결국 상실을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함.
비단 이책만이 아니라
카뮈의 부조리,
사르트르의 인간은 피투된(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쇼펜하우어나 에밀 시오랑,
데이비드 베너타, 마광수의
반출생주의 철학만 봐도
인생에서 상실을 겪고
인생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라는걸 자각하는 사람들이
반출생주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함.
치열하게 노력 안해보고 대충 산애들,
혹은
너무나 뛰어난 유전자를 가져서 늘 선두에 있는 애들,
아니면 걍 어린애들
이런애들이
뭔 저딴사상이 있냐면서
그저 유교식 논리에 입각해서
패륜취급할뿐임.
상실에 대해 얘기하다가
얘기가 좀 샜는데
이 <노르웨이의 숲>
빌드업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상실한 이후에
자기가 처음 사귀고 몸을 섞었던
사랑하지도 않던 여자를 떠올리고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느꼈다는 점임.
와타나베는 그녀를 딱히 사랑하지도 않고
사귀고 몸을 섞고.
대학을 도쿄로 간 후에
헤어지게 됨.
여자는 자기와 몸을 섞었으니
이제 자기에 대한 마음이 식었냐고 하지만
와타나베는
아무 감정도 없이 그냥 헤어짐.
그리고 나오코를 상실하고나서야
자기가
예전의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자각하게되고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끼게됨.
나가사와 선배가 작중에서 이런말을 함.
하쓰미와 다투다가
'사람이 다른사람을 이해하게 되는건
그런 시기가 왔기때문에 이해하게 되는것이지,
그 사람이 이해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서 그런게 아니야'
이런 비슷한 말을 함.
이게 이 작품을
관통하는 말이라 생각함.
와타나베의 처음 여친도
와타나베가 자기를 이해해주길 진심으로 원했지만
그런 진심과는 무관하게
와타나베는 다른 상실을 겪고서야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됨.
하쓰미도 나가사와의 이해를 바랬지만
나가사와는 하쓰미가 자살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쓰미의 상실을 이해하게 됨.
나 역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내가 아무런 데미지도 없이 관계를 끊었지만
나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사람들이
이제서야 떠오르게 되고
미안함을 느끼게됨.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이용했던 사람 역시
언젠가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될거임.
상실은 극복될수 있는가, 없는가.
나는 극복될수 없다고 봄.
이 책에서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큰 데미지를 입고 그걸 억누른채 살 뿐인걸 보면 알 수 있음.
우리 모두는 늦든 빠르든
데미지를 입을 상실을 반드시 겪게 될거임.
상실을 겪은 사람만이 이책을 온전하게 이해할게 될거임.
작중에서 잘난척하던 나가사와 마저도
하쓰미의 상실로 데미지를 입게됨.
상실의 부재는 존재하지 않음.
이르냐, 늦냐의 차이일뿐임.
이 책은
뭐 엄청나게 교훈을 줘서 사람들을 이끌고 계도하겠다는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목적이 확실한
그런 책이 아님.
그냥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모두에게
마치 자전적인 입장에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그런책임.
그래서 상실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 봐도 딱히 느낌없는거.
마지막의 와타나베의 대사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우리 모두가 느끼는 말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https://klyro.sarl/yvynb
시대가 남긴 상처 사람이 남긴 상처 모든 상처는 잊었다 생각할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놀숲의 진짜 씁쓸한 점이라 생각함
대중소설중에서는 goat급이긴 함
문학은 삶에 대해 고찰하거나 죽음에 대해 고찰하거나, 아니면 진짜 위대한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하거나 인데, 이 작품은 그렇게 자살 파티를 벌여놓고도 딱히 죽음에 대해 고찰하지 않는다는 점이 내가 이 작품을 낮게 평가하는 이유임. 그렇다고 삶에 대한 고찰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근데 윗 댓글대로 어차피 대중소설이니까 뭐. 바랄 걸 바라야지
작가 입장에선 굳이 고찰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구절절 얘기 안 한거 아닐까 어차피 죽음은 뭔가 특별한 것이나 삶의 대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자너
니체가 답이다
최고에요 - dc App
잘읽었다 글잘쓰네 - dc App
제목이 노르웨이의숲 보단 상실의 시대가 더 잘 어울리긴 하지 읽기전까진 고양이 얘긴가 했어 ㅋㅋ
내가 별 느낌 없던게 그래서였던건가
울었다.. 11월에 선물받고 두번 읽었는데, 이런식으로 와닿은거구나
글 잘 써서 부럽다
딴건 모르겠고 일단 무지성 야스가 별로 이입 안 됐고 그 뭔 정신병동 나오고서부턴 그냥 참 한도 끝도 없이 청승맞는 책이네 싶어서 덮음. 잘 쳐줘봤자 대학생 때나 멜랑꼴리한 맛에 취했을 치기어린 삼류소설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범작을 두고 '이해 못하는 애들'이란 표현 운운하면서 나열한 예시들은 동의하기에 무척 난감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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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위악 사이에서 중심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인 -> 이 소재는 goat급이라고 꼽히는 거의 모든 현대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소재인데 똑같은 소재를 다룬 노르웨이의 숲이 청승맞은 삼류소설이면 이방인도 설국도 인간실격도 호밀밭의 파수꾼도 위대한 개츠비도 수레바퀴아래서도 싹다 삼류소설이겠네? 한심하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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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인데 당연히 사람마다 생각 다르다고 생각함. 하지만 굳이 대학생때나 느끼는 치기어린 사랑과 연애만이 상실의 전부는 아님. 책을 내내 관통하는건 '상실은 극복될수 있나' 라고 생각하고. 니가 상실에 갇히고 도취된게 오히려 어린애라고 하지만, 반대로 치열하게 했는데도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 그거를 못잊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경구가 떠오르는군요.
일례로 외무고시 행정고시 패시하시고 사법고시는 끝내 실패하고서 영어강사 하셨던분은 영어강사로 성공했음에도 다 늙은 지금까지고 몸 약해지면 꿈에서 사법고시 떨어지는 꿈꾸고 울면서 깬다고 하심. 사람은 나이가 들고 상실을 겪으면서 오만하거나 냉소적인 태도가 멋있는게 아니라 타인에게 공감하고 친절한게 오히려 진짜 멋있다는걸 깨닫게 됨 .
연세대 나온 친구있는데 그 친구도 전국구 외고에서 전교권에 연세대 상경계열 가서도 학점 4점 넘게 유지하던 친구였음. 그친구가 cpa뛰어들기 전만해도 자기입으로 'cpa 그거 1년내에 못붙으면 병신아니냐? ' 이러던 친구였음. 그친구 결국 3년하다가 안되고 취업함. 나가사와를 닮았던 그친구도 상실을 겪고서는 이제 남을 함부로 재단안하게됨
그래 니 말도 맞다. 아무래도 영어식 글을 자주 접하다보니 예시 나열 양보 대조 반복 비교 이런 장치를 내가 글쓸때 자주 쓴다. 게다가 아무래도 디시다보니 10분만에 후딱쓴글이라서 하루키 싫어하는 사람들을 단정적으로 후려친거도 없지않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동의 못하는건 연대생 친구의 삶의 변화와 내 감상평 비교하는건데 ㅋㅋ 이건 동의 못하겠네. 나야말로 오히려 과거에 상처준 사람들이 생각나고 , 내 상처를 남에게 전가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말야 그리고 이 책 자체가 자전적 소설이라서 책의 내용을 통해 자기의 삶을 자전적으로 보면서 성찰할뿐임.
반고닉 말이 와닿네...치열하게 했는데고 무언가를 상실한 경우는 솔직히 별로없어. 어떤경우는 노력을 덜했을수도 있고, 사실 거기에 매달려 있다는거 자체가 앞으로 못 나아간걸 의미하기도 하고...인생은 사실 뭔가에 끝까지 집착하기엔 너무 무의미한 거야
절대 아님. 오히려 무언가를 치열하게 한 사람들일수록 과거로 돌아가기 싫어함. 서까남 : 서울대경영. 본인입으로 인생이 너무 고단해서 애한테 인생 경험하는거 죄악이라 생각해서 애낳는건 죄라고 함 이경규: 절대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함 그시절에 너무 고생했고 또 잘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싫다함
은행지점장에 늘 '못난놈들이나 세상탓한다. 올라갈 놈들은 노력을 한다 ' 레퍼토리처럼 달고 사시던 큰아버지. 결국 지점장 잘리고 다시는 그 소리 안하게 됨.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55190&search_pos=-450478&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D.95.98.EB.A3.A8.ED.82.A4&page=4
하루키 좋아하는 애들은 왜 한결같이 독자들의 경험에 호소하는지 모르겠음. 비평적으로 접근을 안 하고, 매번 경험이 없기 때문에 네가 이해를 못한다는...
음.. 나도 이거 예전에 봤는데 난 하루키 책은 놀숲본게 전부임.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개츠비가 초록불빛 잡는 제스처 취하는거 개츠비의 순수 이런거도 다 독자의 경험따라 간다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사람들이 디카프리오가 축배드는 짤 프사에 올리는거 그이상으로 생각 못한다고 생각함
그리고 원래 문학의 목적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투영해서 책을 보는거 아님? 나는 콜레라시대의 사랑, 위대한 개츠비,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 전부다 그렇게 봤는데
서강대 교수님이셨던 장영희 교수님도 비슷한말 하셨고...
나는 네가 그런 식으로 독서를 하는 게 틀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문학을 대함에 있어서 다른 관점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러한 관점으로 보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하루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고 낙관주의적이고 굴곡을 모른다는 식으로 네가 지금 단정짓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사실 이거 쓰기전에 독갤러들 의견이 어떤지 궁금해서 검색해보고 여러개 스키밍 했거든. 근데 좀 어린애들이 써보인 후기가 많더라고. '나오코 이년 그냥 트위터 정신병자년 아님? ' '그 할카스랑은 왜 섹스한거임?' 이런 단편적인 후기들? 그래서 그사람들을 상정하고서 써봤다. 니생각도 물론 존중한다.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싸이코의 경우를 생각해봐. 이 작가들이 독자들이 경험을 투영해서 읽기를 바라고 이런 소설을 썼는지 말이야. 나는 같은 상실이라는 주제를 관통하고 있으면서도, 문명의 실존을 분석하면서 시간 개념의 상실, 인간성의 상실까지 밀고 나가 시대적인 통찰을 보여준 토마스 만의 마의산이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해. 나는 하루키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이 작가는 사실 절대로 그런 경지에까지 도달하진 못하지. 하루키한테 그런 걸 바라거나 기대하는 건 윗댓들 말처럼 애초에 얼토당토 않은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독서 커뮤니티를 하다 보면 하루키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래 독자들한테 과대평가되는 작가들이 동시에 반발작용으로 과소평가도 많이 이뤄지는 법이야.
얘는 자기논리에매몰돼서 자가당착된것조차 모르고있네 ㅋㅋ 하루키스트들이 하루키 책 안좋아하는 사람들을 세상굴곡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한다고 뭐라하면서 정작 본인은 하루키스트들한테 그 편협한 잣대를 똑같이 적용하고있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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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는데 상실은 극복 할 수 없다는건 공감이 안되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을 겪고 좌절하고 슬퍼해도 결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극복해서 내일을 살아감 사실 상실을 극복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님 대부분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지고 무뎌짐
작중에서도 와나타베가 만난 어부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지만 결국은 극복하고 살고있는거처럼
너무 동의함.. 큰 상실을 여러 차례 겪고 우울증을 겪고 읽었는데 내 인생 책 수준이었어 대조과정에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렇진 않았고.. 좋은 감상 고마오
댓글들 대충 다 봤는데, 소설 내에서 상실을 극복하거나 하고 있는 자와 극복못한 사람들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더 재밌을 거 같아. 나가사와의 말처럼 자기연민은 비겁한 짓이라는 게 키 포인트라고 생각해.
어리고 낙관주의에 인생에 굴곡이 없는 사람들이다? 문학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투영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치기어린 생각이고, 또한 편협한 문학관이냐. 전자에 대하여 위 답글이 인용한 이성복의 시구가 훌륭한 한마디가 되겠고, 후자에 대하여 위 답글이 제시한 롤리타, 아메리칸 사이코, 마의 산(놀숲이 오마주한 원작)가 역시훌륭한 반례가 되겠지.
후자에 대해서 보르헤스가 했던 말들을 몇 보태자면, "실존주의는 나 또는 자아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 그들은 절박감과 괴로움을 다루는데, 결국 우리의 허영에 아부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비도덕적이다."
"나는 장편소설이 독자들에게 아첨을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독자가 흥미로운 인물이 되니까요. 반면 서사시를 예로 들면, 서사시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불행을 분석하지 않게 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장편소설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또한 덴마크 왕자 햄릿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바이더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키플링이 말했듯이 커다란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반성을 촉구하니까요. 장편소설은 그런 경향이 있답니다. 그러나 서사시나 또는 서사시적인 피가 흐르는 작가들의 경우—예컨대 조지프 콘래드와 조지 버나드 쇼가 그런 경우랍니다—그런 식으로 ‘자극’하지 않아요."
(질문자: 그러니까 당신은 심리소설이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의 철학(실존주의) 같은, 잘못된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서정시조차도 윤리적으로 잘못된 게 있다는 거죠?) "완전히 동의해요. 심리소설에는 뭔가 잘못된 게 있어요. 낭만주의 운동과 감상주의에도. 그러한 종류의 것들은 장려하기보다 억눌러야 해요."
글쎄.. <대지> 를 쓴 펄벅은 <자라지않는 아이 The child who never grew> 에서 이렇게 말함. '내 딸이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능만으로는 훌륭한 인간이 될 수도 없음을 배웠습니다' 사람은 관념과 경험에 지배되어서 사물을 본다는게 내 생각임
그것이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과, 문학에서 독자가 자기 경험에 기반해 취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자기의 불행에 기반해 ㅇㅇ
윌리엄 포크너가 쓴 <에밀리에게 장미를> 이라는 짧은 소설이 있습니다... (중략) 사랑을 소유라고 여긴 에밀리는 극약을 먹여 살해하고 그 시체와 40년간 동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을 학생들에게 읽힌뒤 에밀리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는 사이코예요 미쳤어요'
하지만 그렇게 결론지으면 문학적인 토론이 이루어질수가 없습니다ㅡ .... 이렇듯 나 자신이 에밀리라고 느꼈을때 비로소 문학적 비평이 가능해집니다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장영희님 글중에서 -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나도 읽어봤지. 그런 자기연민의 관점이 현대소설의 문제점이라는 게 보르헤스의 인식인 건데, 너는 네가 받아들이는 부분이 문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그 소설을 물론 그런 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남부의 고딕소설 전통의 연장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겠지. 한 관점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참 편협하다는 거야.
정확히는, 그냥 고딕소설 전통 ㅇㅇ
58 이새끼는 지가 편협한 문학관이라고 까놓고는 예시로 가져오는 게 편협한 내용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ㄴ나는 1. 자기연민에 빠지고 취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시각을 어리고, 낙관주의에, 치기어리다는 시각을 일단 비판한 것이고, 2. 하나의 문학관이 전부라는 시각을 비판한 거야. 당연히 어떤 한 관점에 대해 안티테제를 제시하면 이쪽 관점이든 저쪽 관점이든 하나만 놓고보면 편협해보이지. 모든 것을 수용하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게 어딨음? 여러 관점들을 다 보자는
거지. 그게 문학의 전부가 아니니까.
(질문자: 그러니까 당신은 심리소설이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의 철학(실존주의) 같은, 잘못된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서정시조차도 윤리적으로 잘못된 게 있다는 거죠?) "완전히 동의해요. 심리소설에는 뭔가 잘못된 게 있어요. 낭만주의 운동과 감상주의에도. 그러한 종류의 것들은 장려하기보다 억눌러야 해요." - dc App
"He must be eight years old. He's lonely. I'm not lonely. I have a wife waiting in bed for me." / "He had a wife once too" / " A wife would be no good to him now" / "You can't tell . He might be better with a wife" (...) "Why don't you let him stay and drink?" the unhurrued waiter asked. / "I want to go home to bed" / " What is and hour?" / "More to me than to him." /
"We are of two different kinds," the older waiter said. <<a>> 헤밍웨이 단편 중</a>
그렇게 대답하면 할 말이 없지. 그건 맞음. 서로 달라.
ㅂㄹ
글 잘쓰네 맞는말이다
마음이 여려 남들도 다 겪어내는 일상 속 고통을 상실이라 느끼며 스스로를 가여워하는 섬세한 중산층 이상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음
미도리 개꼴류
우선 노르웨이 숲 재밌게 읽었고 하루키 좋아하는 편임. 그런데 이 글의 논조엔 동의하지 않음. 이런식의 접근은 문학을 읽을 때에 좀 안좋은 태도가 아닌가 싶음... 책의 주제가 상실이라고 이 책이 상실이라는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데, 마치 노르웨이 숲과 상실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한 몸인 것처럼, 노르웨이 숲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 감동을 느꼈
기에 그 감동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마치 인생 속에 상실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뭐랄까 겨우 취향으로만 자신을 정의하고 방어하는 얄팍한 생각이랄까...
규정짓기 좋아하네
글쓴이가 어리다는건 알겠다
수준 참..
노르웨이의 숲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이 글은 처음부터 그냥 거부감이 드네 - dc App
글 잘쓰네 어느정도 인사이트 있는 애들은 얘가 말하는게 뭔지 알거 인사이트 없는 애들이 화내는듯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했으면 화도 안냄ㅋㅋㅋ
어릴적엔 멋 모르고 읽고 아리송하게 끝냈는데 내일 다시 읽어봐야겠다
잘 봤습니다.
ㅋㅋ 노르웨이숲 등장인물 감정선 너무 얄팍해서 개노잼으로 읽었는데 그거 하나로 인생에서 노력한거 하나 없는 꼬맹이가 되어버렸네 니가 내 인생을 안다고 자신하냐? 책 한권으로 선민의식까지 내비치는거 진짜 꼴사납네 인간실격 재밌게 읽은 사람은 그럼 다 다자이 오사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