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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쓴다는 건 무엇인가 정리 ⅱ.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정리 ⅰ.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정리 ⅱ.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정리 ⅲ.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ⅰ.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ⅱ.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ⅲ.
18세기는 특별한 시대였다.
이 시대에 작가는 여전히 특정 계층 아래 속해있었다. 그런데 사회가 바뀌면서 이 계층에 변화가 찾아온다.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 고위층에 등장하며 독자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독자층은 두 갈래로 갈라져있다.
따라서 작가는 서로 모순되는 두 요청에 응해야만 했다.
이것이 18세기 작가들을 특징지은 '긴장'이다.
이 시대엔 지배 계급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신을 잃었기 때문에 사상을 보존, 전파하는 것은 더 의미가 없었다.
새로운 사상이 이미 물밀 듯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는 교회 문학에서 보이는 '성직자'와 같은 작가는 더 이상 나타나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트들은 혼란에 빠져 이데올로기에 환기를 불어넣어 주길 작가에게 부탁했다.
당연하지만 '성직자'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작가는 이미 없었기에 이 작전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또 한편으로는 '상승 계급'을 이루고 있던 부르주아지는 기존 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자신들 고유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기를 바랐다.
이때 이들은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억압받고 있었고, 경제 측면에선 이미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들만의 교양과 여가를 향유하게 된 상태였다.
이것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피압박 계급'의 독자가 작가 앞에 나타난다.
이제 작가는 이러한 양립적인 두 진영의 독자 사이에서 중재자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지배 계급이 여전히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했고, 부르주아들도 책을 사 보았기에, 작가는 양쪽의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이때 당연하게도 작가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작가 자신은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부르주아 계급에 속해있으면서도 귀족 계급의 인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사르트르의 말로 하자면,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인 계급 이탈'이다.
(저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끼어있는
일명 '쁘띠부르주아' 계급에서 탄생한다고 보았다.
이후에도 작가가 양가적인 계급 사이에서 탄생한다는 관점은 계속해서 언급된다.)
이러한 계급적 특수성으로 인해, 작가는 이전 시대처럼 귀족 계층에 기생하면서도
'도를 지나친 행동'으로 권세가들에게 멸시를 받기도 하게 된다.
인식은 상층민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하층민의 생활을 한 셈이다.
그렇기에 독자가 이분되듯 작가의 의식도 양분되었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글쓰기를 택하며 계급 이탈을 받아들이고, 이를 고독으로 심화시켰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제 귀족들을 부르주아의 눈으로, 또 부르주아를 귀족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양가적인 계급 위치에서의 고립으로, 갑작스레 하나의 독립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이제 문학은 한 통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형성하고 비판하는 힘이 되었다.
이러한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더해서, 18세기 문학에 특이성을 더한 것이 당시 사회상이었다.
이 시대 부르주아 계층은 서서히 저무는 귀족 계층을 완전히 전복하기 위해서 피억압 계층과 제휴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혁의 지도자로서 권리를 인정받기를 바란 것이었다.
한편 이 시대의 혁명은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이데올로기나 조직된 정당도 없었기에
그들을 계몽시키고 기존 이데올로기를 청산시켜줄 누군가를 바랐다.
일단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건 후일의 일이었고,
당장은 언론의 자유라 부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쉬웠다.
이때 작가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호소하게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되었다.
즉 작가가 호소하는 자유와 피압박 계급의 실질적 이해가 이 시대에는 아주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18세기에는 '영구지속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의 붕괴로
'현재'를 순수하게 지각하게 되며, '지금 당장'의 행동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작가들은 이데올로기에 비판을 제시했고
우연히 사회상과 맞아떨어지며, 문학이 곧 직접적인 행동으로 직결되게 되었다.
작가들은 공적인 생활에 개입하고, 불공평에 항의하고, 소송에 재심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독자층의 격변과 유럽인의 의식 변화는 작가에게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이제 책이 독자의 자유에 대한 자유로운 호소가 된 것이다.
다음이나 그 다음이 마지막 정리일 텐데,
이제 문학이 이상적으로 참여를 이루었던 18세기를 지나,
왜 이랬던 문학이 (사르트르 입장에서) 곱창 나버렸나?를 고찰함
18세기가 문학의 대격변으로 활기를 띠는 시대였다면,
19세기부터는 격변이 끝나버리고 문학이 새로운 침전을 겪는 시대임
이제 그 다음 챕터인 4장, 「1947년 작가의 상황 」은
사실상 이 책의 본론으로, '요즈음 문학은 에잉 ㅉㅉ'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음
일단 정리는 3장까지만 할 거고, 3장은 이제 후반부만 남았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는데 참 들쭉날쭉 정리했구나 싶음 허헣
대체 『구토』는 언제 읽냐고 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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