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hk.or.jp/kaisetsu-blog/700/306760.html


저번에 우연히 찾아보게 된 글

가와바타 수상 10년 전후로 집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떻게 일본인이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게되었는지를 분석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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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은 알 수 없긴 하지만)

일본인 최초로 수상 목록에 오른 것은

『치인의 사랑』, 『세설』 등으로 유명한 탐미주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시로 유명한 일본 초기 모더니즘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

이렇게 두 사람으로 보임


가와바타가 처음 후보에 들어온 것은 61년의 일이고,

미시마는 63년에 처음 후보에 들어옴


결과적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니시와키 준사부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이렇게 네 명이 최초 일본 노벨상 수상 후보라고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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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시 한림원의 평은 어땠는고 하니,

다니자키와 가와바타는 긍정적이었던 반면,


니시와키와 미시마는 다소 후순위였음

이 두 사람이 후순위였던 이유는 이럼

니시와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미시마: 아직 젊고, 일본에서는 진지하게(즉, 미시마가 먼저 받을 거라고) 생각되않는다.


그렇다면 다니자키와 가와바타, 둘 중 누가 수상에 가까웠느냐

이 의견은 한림원 내부에서도 강하게 갈려서,

심지어 두 사람이 동시 수상할 것도 고려되고 있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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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65년 작고하여 후보에서 빠지게 되고,

(이때 한림원 의사록에는 '이 작가는 최근 사망했다'라는 단평만 있었다고 함)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가와바타가 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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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째서 한림원은 동시 수상까지 고려할 정도로 갑자기 일본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까?

이 시기 후보자에 대한 코멘트를 추가 살펴보면,

'새롭게 중요한 언어 영역으로 노벨상 범위를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

'일본에 상을 수여하는 것은 상의 지리적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저술되어 있다고 함


이 시기 노벨상은 상을 주는 범위가 너무 좁다는 비판에 노출되었고,

그래서 언어후보군을 당시 번역을 타고 흘러온 일본 문학까지 확대한 것으로 보임(이 부분은 내 뇌피셜임)

이때 한림원은 위의 비판으로 인해 일본문학계의 반응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었다고 함


종합해보면 기존 서구권 중심의 수상을 타파하자는 한림원의 분위기 + 그때 마침 일본 문학 영역본이 흘러들어옴(덤으로 한국 문학이 번역되기 시작한 건 대략 7, 80년 대부터로 알고 있음)

= 일본 문학이 후보군에 편입됨 -> 네 사람의 후보군으로 좁혀지고, 여기서 다시 다니자키와 가와바타로 좁혀짐 -> 다니자키가 작고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끔씩 가와바타가 노벨상감이었냐는 질문이 있기도 하고,

한 번 참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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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그나저나 올해 미시마 노벨상 후보 지정된지 60년인데 같이 출간 60년 맞은 『오후의 예향』 안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