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마 이 책 속에 표현된 사고들을 - 또는 어쨋든 비슷한 사고들을 - 스스로 언젠가 해 본 사람만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은 그러므로 교과서가 아니다. - 이 책의 목적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어떤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달성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의 머릿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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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도 그렇지만 문학에서도 위의 이야기는 참으로 옳다. 내가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사이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홀로 지내야 하는 외동 아들이 아니었다면, <플랜더스의 개>나, <방랑자 라스무스>의 고독한 이야기들이 그토록 마음에 와닿았을리 없으니까.
부모님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가기는 하지만, 한글을 깨치지 전부터 교회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열 개의 의문이 솟아나던 사람이 아니었다면 <데미안>의 카인 이야기나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이라는 논문집 속의 유물론적 선언들이 꼭 나를 위해 쓰여진 것처럼 받아들여지지도 못했을 테고.
철이 들면 들수록, 나는 왠지 이 세상에 더럽게 안 어울리는 존재라는 자각이 커지지 않았더라면 <아웃사이더>나 카프카의 소설들이 복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을 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독서라는 행위가 주는 것은 변증법적으로 말해 사고나 지적 성장의 양적인 확대일 뿐인 듯 하다. 그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질적인 변환을 가져오는 것은 독자의 삶과 스스로의 사고일 뿐.
밑에 카뮈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글을 보고 문득 생각나 끄적여 봄.
알고있는것이 아니라 겪고 있는것 정도가 맞을지도
ㄴㅇㅇ 그러네.
과학같은 경우는 현재까지 알려진 정도가 맞는단어가 되겠네요.
ㄴ ㅋㅋ 언어영역 빵점인 새끼등장
밎는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세상에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고 이해를 만들게 되지.
그것을 언어적으로, 이론적으로, 수리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해도...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음. 그런 두루뭉술한 이해를 명쾌한 언어와 증거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학자고.
근데 이것도 결국 머리차이인듯. 머리 좋은사람은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고 깊이 하니 그런 경지에 닿는거겠고. 평범한 사람은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것을 배우는 경우가 사실 더 많지.
사람들안 보통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읽잖아. 관심있는 분야의 생각도 평소에 할거고. 그러니 새로 읽은 책의 내용중엔 자기가 평소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들이 쓰여있어도 이상하지 않은거지. 하지만 이건 그게 그사람의 관심분야였기때문에 가능한 일 아닌가 함.
완전히 관심 밖인 무지의 영역이라면 평소 별 생각도 없고 견해도 없으니 완전히 생각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수 있는듯. 그건 그렇고, 관심분야라 해도 결국은 명쾌한 논리와 피상적인 파악은 차이가 큰듯. 진화론을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는것하고, 논리와 근거로 쌓아올려진 이론으로 이해하는거하곤 천지차이인거같음.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의미가 있는듯.
또 학자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걸(적어도 학계 주류의 설명과 방향을 같이한다는걸) 확인하는것도 의미있는듯. 생각을 가지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남과 나누는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음. 자기 혼자서 생각만하고 담아두기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있는지 아닌지 확인할수가 없으니까.
사실 그게 즐거움 아닐까. 내가 생각했던것들을 대단한 천재들이 이미 설명해놨다는거. 자존심 상하지 않아. 오히려 기쁘지. 내가 천재들의 사유를 따라한거니까. 독자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발끝만큼이라도 따라갈수 있고 닮을수 있다는거. 인정받는 느낌이지.
글쓴이나 비트겐은 머리가 좋아서 이미 많은걸 생각했기때문에 독서란 단순히 그것들을 재확인하는것에 지나지 않는건지도. 나는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느끼고 놀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걸 명확하게 정리해 주지.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도움이 되더라.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이네. 같은 책을 10대에 읽고 20대에 읽고 30대에 또 읽어보면 완전 다른 게 눈에 들어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