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읽은 돈으로 살수없는것들과 연속해서 읽은 센델 책. 이 책 역시 이전 책과 마찬가지로 센델의 주장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부시정부 시절 생명공학과 윤리의 관련성에 대한 위원회에 참석하고 내린 결과물을 추가보완한 이 책은 위원회에서 받아드려지지 않은 그의 주장을 정리했고 부시정부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반대정치성향을 가진 정부의 위원회에 참석하고 그 결과물에 대한 비판을 당당히 적는 학자적 태도가 멋있게 느껴졌다.
이 책에서의 문제의식은 돈으로~에서의 문제의식과 비슷하다. 정치철학자로서 본인의 근본주장을 일관성있게 전개했다고 볼수있을것이다. 이 책의 테마인 생명공학은 기술 찬성론자들에 의하면 효용을 증가시키기에 가치와 상관없이 \'옳다\'는 가치무관성을 담고있고 효용극대화적인 생각을 띠기도 한다. 생명공학의 효용성을 극대로 추구하면 과학만능주의가 되는데 돈으로~에서의 시장만능주의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의사에 근거한 자유로운 행위(교환, 과학기술의 적용)가 효용극대화를 가져온다는 공리주의적 입장과 연관된다.
이에 대응하는 센델의 논리는 공동체의 미덕을 강조한다. 시장만능, 과학만능적 행위가 행위가 경제적 이익, 과학적 진보를 불러오는것이 객관적 사실이지만 이는 도덕적인 \'불편함\'을 야기하고 이 불편함은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가 저하되는데서 오는 부패(degrade) 현상이라고 본다. 기본전제가 불변하는 하에서 경제적 진보나 과학적 진보가 일어난다면 이는 당연히 총합의 증가일것이다. 그러나 교환, 기술에 의해 공동체의 미덕 그 자체가 손상된다면 경제적, 기술적 효용이 증가한다고 해서 그 진보가 인간, 사회에 긍정적이라고 볼수없을 것이다.
시장적, 기술적 영역의 침범에서 윤리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경계선을 긋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시장주의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도덕적 불편함 없이 받아드려져 왔으나 경제학이 팽창하면서 도덕적 불편함을 야기하는 부분이 생겨난다. 그러나 어느부분이 전통경제고 어느부분은 아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선을 긋기 애매한 지점이 많다.
이 책에의 주제인 생명공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지도아래 사회적으로 우수한 혈통만을 번식시키고 열등한 사람들은 멸종시키는 우생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드려진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태어날것이 확실한 상황에서의 낙태는 허용가능한가? 장애인이 가능하다면 성별을 이유로한 여아낙태는 허용가능한가? 유전강화를 위해 우수한 유전형질을 선택하여 출산하는 것은 가능한가? 우수한 형질의 정자, 난자은행은 적법한가? 출산전 하는 형질강화와 태교를 통한 강화는 차이가 있나? 출산전 강화와 출산후 시키는 강화는 차이가 있나? 마약물을 통한 강화와 과학기술을 통한 강화는 차이가 있나? 과학기술을 통한 강화와 비인격적 교육을 통한 강화는 차이가 있나?
책에서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선긋기의 애매함\'에 대해 다룬다. 이에대해 센델의 주요 논적인 자유주의자의 기본주장은 개체의 자율성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유전공학이 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번식과 멸종이 강제되는 우생학은 자유의사에 반하기에 자유주의자들도 반대한다. 그러나 부모의 선택아래 자녀의 능력을 강화하는 \'자유주의적 우생학\'은 특정 세력을 멸종시키는 바 없이 개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의 효용을 증진시킨다고 본다. 태아의 자유의사가 반영되는것은 출산 후이고 출산 전에는 부모의 자유의사만이 고려가능하기에 부모가 원하는 유전적 조치들이 가능하다. 출산후에는 개체의 자유에 의해 강화가 가능하다. 마약물을 통한 강화를 통해 강화된 약물 운동선수들의 리그와 비약물 운동선수들의 리그를 분리하다는 주장도 극단적 자유주의자에 의해서는 주장된다.
\'자유주의적 유전공학 시장\'에 대한 센델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유전공학을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적 선택이 가능하고 태어난 후에도 과학의 힘으로 인위적인 강화를 이뤄낼 수 있다면 인간의 \'책임\' 과 \'연대\'라는 미덕은 없어진다.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유전적 조치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모든것이 과학에 의해 개선될수 있다면 성과와 실수에 대한 개인의 진정한 \'책임\'은 없어질 것이다. 뛰어난 운동선수의 능력은 그 선수의 재능과 노력이 아닌 유전공학의 승리로 생각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대\'의 가치도 없어질 것이다. 자신보다 불운한 사람을 돕자는 연대의 마음은 모두가 확률적 불확실성속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서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공학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이들의 불행은 \'불운\'때문이 아니게 되고 이들에 대한 동정심도 사라지게 된다. 서로간의 연대가 없어진다고 보는것이다.
센델의 주장은 다소 신학적으로 들릴수 있는 \'출생은 신이 주신 선물임을 인정하는\'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나가자는 것이다. 개인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것과는 별개로 부모로서 자식을 낳을때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그 탄생을 축복하고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이 축복받을 수 있는것은 그것이 우연의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고 불운이 동정받을 수 있는것은 그것 역시 우연의 결과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력\'이라는 가치가 인정받는것 역시 모두의 출발선이 운명에 의해 좌우됨에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과학적 진보는 도적적 가치들을 파괴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할것은 센델이 과학기술의 전면적인 반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시정부시절 배아세포의 연구사용 주장에서도 센델은 찬성을 주장했으나 공화당에서 거부했다. 센델이 과학기술의 적용억 반대하는 지점은 \'출생을 신의 선물로 보는것\'에서 나오는 연대와 공감의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출생 이후에 질병에서 치료용으로 배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잘못하고 비추눌렀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