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절망하는 바냐 아저씨를 위무하는 소냐의 마지막 대사라든가
라스꼴리니꼬프 곁에 남아 감옥 생활을 견뎌주는 소냐라든가
데미안 속 싱클레어의 경외와 동경의 대상 에바 부인이라든가
이처럼 문학 작품 내에서 여성이 갖는 어떤 '치유계' 능력이랄까 그런 힘이 막강하고
소녀라든지, 원숙한 여성이 메인 주인공을 어루만지고 위무해주지 않으면
도무지 어떤 절망한 인간을 위로하는 인간상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데
절망한 바냐 아저씨를 같은 동성 턱수염 친구가
위로해주는 모습이 나로썬 상상이 잘 안간다
몰입이 바로 깨지는데
즉 이것은 어린 소녀가 위무해줘야만
거기에 절묘한 슬픔과 아름다움과 감동이 풍겨온다고 생각함
왜 현대 여성들은 불편해할까
여성의 품은 위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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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향을 얘기하는 게 아니야... 괴테의 말처럼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도다 라는, 여성적인 것의 절대성이 있단 말이야...
앵그리 레즈비어니즘인가 뭔가 하는 그거인듯
살면서 위로해주는 친구 한번도 못만나봤음..?
내 처지를 정확히 알고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해주는 위로가 진짜 눈물나게 고맙지 뭔 어린 여자애가 위로해준다고 위로가 되누.. 보통 그런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는 단순히 무슨 어린 여자애면 다 좋음을 천명하는 게 아냐. 그리고 본문에서 나는 이미 '문학 안에서' 라고 정의했다....
글고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음 여캐가 친구가 아닌 이상 - dc App
아니 뭔 문학이 별세상도 아니고.. 파산 크리 맞아서 집 뺐기고 벽돌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꼬마 여자애가 "아저찌 이거 드쎄여"하고 사탕 주고 가면 갑자기 힘이 솟아나서 "그래! 힘을 내야지!" 한다는건가여..? 이해는 안가지만 그런 설정이 없는건 아니니 재밌게 보셈..
ㄴ그렇게 유치하게 힘이 난다는 빈약한 스토리는 순전히 네 짧은 공상이고.. 나는 처지 이해도를 넘어 여성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구원 갈망이 어머니 태에서 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문학에서 극대화해서 표현할 수 있으니 별세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
ㄴ아녜.. 근데 저는 그거시 바로 빈약한 스토리텔링이라는 뜻이였어여.. 이것저것 걷고 나면 본질적으로 제가 예시로 든 빈약한 스토리랑 차이가 없잖습니까 ㅎ 연출을 그럴싸하게 됐을뿐, 인간에 대한 얄팍한 해석과 스토리를 저런 '이해할수 없는' 계기로 마구 이리저리 틀어버리는 꼼수질의 대표적인 사례라서 괜히 지적해보고 싶었네여.. 도스토예프스키 후기작들이 어떤 대머리한테 욕쳐먹은 이유가 저런것 때문이라 생각해여..
캐릭터를 장기말처럼 맘대로 다루면서 그것 뒤로 조명 쫙 내리째고 후광 똭 비추니깐 사람들이 오 환호하겠지만..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네여..
그 점에 관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이것저것 걷지 말고 이것저것까지 포함해서 작품을 관망하도록 하자
여성성이 지닌 일종의 모성애적인 포용력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런 점이 없지야 않을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묘사하는 건 너무 인위적인 수단 장치 같은 느낌인딩
코르셋 그만 조여
페미니스트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성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니까ㅇㅇ 물론 분파마다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