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로그의 글들은 책으로 옮기기에는 단상처럼 길이가 짧은 것이어서
더 길게 글을 써야만 했는데 윤은 거기까지는 작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저자들은 많았다.
수집은 목록의 작성이고 애호는 취향의 드러냄이니까 그런 걸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기란 어려웠다.
무엇보다 길어지지 않았다. 취향은 물질이 되기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책은 물질이고 그것은 원고지 매수로 카운트되고 가격으로 치환된다.
//<새 보러 간다>, 김금희
이윽고 사람들이 그를 물에서 끌어내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덮어주었다.
그를 마치 아이처럼 대했고, 그는 생존의 지혜를 재고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고, 한쪽 어깨가 움직이지 않고, 몇 가지 사소한 상처 외에 그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바보 천치이고 정신이상자라는 듯 그에게 말했다.
그들의 거짓 배려와 얇은 베일을 쓴 경멸 속에서 그는 자신이 물 속에서 선택한 미래를 보았다.
양로원이라는 미래에 그는 흐느꼈다. 그냥 빠져 죽었어야 했다.
그는 작업실 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한마디로 핵심은 사생활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사생활 없는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양로원에서는 전혀 사생활을 누릴 수 없을 터였다.
헬기에 탔던 사람들처럼 그를 홀로 두지 않을 터였다.
그는 바지를 벗고 속옷 안에 접어둔 넝마를 꺼낸 뒤 유반 커피통에 오줌을 누었다.
은퇴하기 1년 전 산탄총을 샀더랬다. 은퇴로 인해 극적 변화가 일어나리라 상상했다.
사냥과 낚시를 즐기고, 새벽에 작은 보트를 타고 캔자스와 네브래스카를 여행하고,
혼자서 우스꽝스럽고 별난 유희의 시간을 보내리라 상상했다.
총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매혹적이었지만, 구입 직후 그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찌르레기 한 마리가 부엌 유리창에 부딪혀 목이 부러졌다.
그는 점심을 마저 먹을 수 없었고, 결코 총을 쏠 수 없었다.
인류는 다른 종을 몰살시키고, 대기를 온난화하고,
인간과 닮은 것들을 전반적으로 파괴할 기회와 지구를 지배할 권리를 가졌지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유한하고 구체적인 동물의 몸을 지녔으면서 무한을 인식하고 스스로 무한하기를 바라는 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유한성의 집행자이기를 멈추고,
극단적 변화의 기회이자 무한성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논리적 입구처럼 보이게 되는 시기가 왔다.
피와 뼈 조각과 회백질의 바다에서 유한한 시체처럼 보이는 것은 ―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다 ―
너무나 큰 사생활 침해라 그 자신보다도 더 오래 남을 듯했다.
또한 아플까 두려웠다.
게다가 여전히 답을 찾고자 하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자식들이 올 터였다.
개리와 드니즈와, 어쩌면 지적인 아들인 칩까지.
칩이라면 그 대단히 중요한 질문에 답을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 질문은.
// <인생수정>, 조너선 프랜즌
"그들은 자주 당신을 위협했을 거에요. 참을 수 없고,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어떤 것으로요.
그리고 당신은 '저에게 이러지 마세요. 다른 사람한테 하세요. 이러이러한 사람에게 하십시오' 라고 말했겠죠.
그러고는 나중에 그건 일종의 속임수였고, 고문을 멈추게 하느라고 그랬을 뿐이라고 둘러댈 생각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건 뻔한 거짓말 아닌가요? 물론 그런 일이 닥치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죠.
목숨을 구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걸 거에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길 바라는 거죠. 그래요.
그런 일이 닥치면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건 개의치 않고 오직 자신만 생각하게 마련이죠."
"그래 오직 자신만 생각하게 마련이지."
그가 그대로 따라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전과 같지 않게 돼요."
//1984, 조지 오웰
파킨슨은 질질 끄는 느린 걸음이 곤두박질치는 돌진으로 바뀔 때
자기를 잡아줄 하인을 10미터 앞으로 뛰어가게끔 했던 한 환자에 대해 쓰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와 같은 연민은 알츠하이머가 아우구스테의 황폐한 혼란 상태에 대해 묘사할 때도
그리고 코르사코프가 각인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환자들에 대해 설명할 때도 똑같이 나타난다.
아스페르거의 '어려운 아이들'에 관한 1944년 사례 연구에서는 환자의 경험이 매 이야기마다 울림을 갖는다.
이 12명의 인물을 묘사하면서 필자가 그들의 이름을 피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그들의 사례 연구가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혼란,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된 마음의 병들>, 다우어 드라이스마
모처럼의 휴가를 두고 그 여자의 계획은 너무나 많았었다. 그러나 그 계획들은 어느 것 하나도 실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처음의 계획에는 들어 있지도 않았던 엉뚱한 곳에서 휴가를 보냈다. 결국 어떤 의무감에서 나온 결정이었는데,
그 여자는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한 고향의 어머니 곁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어머니한테 갔었다. 모녀는, 첫날은 오랜만의 상봉에 기쁨으로 들떠서 지냈다.
다음 날엔, 집안의 여러가지 일에 대하여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았고,
그 다음 날엔 어머니 특유의 나무랄 수 없는 잔소리가 시작됐고,
그 다음 날엔 딸 특유의 신경질이 되살아났으며, 마지막으로 모녀는 한바탕 크게 싸웠다.
다음 날 새벽, 딸이 버스 정류소로 가기 전에 모녀는 어느새 슬그머니 화해를 하고 있었으며
딸이 버스에 올랐을 때 어머니는 헤어지는 슬픔 때문에 차창에 매달리며 쿨쩍쿨쩍 울었고 딸은, 딸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뿐이었다. 그 여자의 휴가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번잡한 육교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 여자는 샌들의 가죽끈 밖으로 가지런히 내밀어져 있는 자기의 발가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들은 땀과 흙먼지로써 남 보기에 창피할 만큼 더럽혀져 있었다. 그 부분만은 그 여자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 부분만이 참으로 자기의 소유인 것 같다고 그 여자는 느끼고 있었다.
//<야행>, 김승옥
"맘대로 해요."
서니는 몸을 흔들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며 덧붙였다.
"당장 가서 짐을 쌀 거야."
"용돈도 다 끊을 거다."
"상관없어."
서니는 문을 열면서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 했다. 서니가 덧붙였다.
"먹고살 수 있어."
"서니..."
서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눈은 축축하고 사나웠다. 100미터 거리에서 노려보는 것 같았다.
"필요 없어."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가차 없었다.
"한 번도 필요했던 적 없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나를 필요로 했지.
하지만 그 반대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척하는 삶>, 이창래
예전에는 여행 자체에 멋진 이상을 덧입히곤 했다. 많은 길을 걷고 많은 마을에 머물고
많은 언어를 듣고 많은 얼굴을 만나면 내 판단을 흐리게 하는 편견과 선입견이 줄어들 거라 믿었다.
그렇게 온전한 사해동포주의자로 성숙해지길 기원했고, 실제로 한쪽 다리 정도는 벌써
사해동포주의자의 몸이 된 것처럼 거룩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십 대로 저물어가는 요즘 돌아보니 사태가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온 것 같다.
요즘의 나는 오히려 나라, 민족, 환경을 바탕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일이 잦지 않은가.
그렇게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요인들로 눈앞의 개인을 판단하고 나면
스스로 선택한 직업, 표정, 생활 방식에 따라 한 생을 간략히 재단하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나는 많은 경우의 수를 채집해온 결과로 편견과 선입견을 물리치는 대신 오히려 통계라는 함정에 빠져 있었다.
//<우주가 아름다운 이유>, 박형서
나는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내던졌다. 더 세게 담장을 붙잡았다. 더 세게, 더 세게, 있는 힘을 다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우리 집을 뒤진 게 헛물만 켰다는 뜻은 아니에요." 담장을 놓았다.
손에서 피가 흘렀다. "미리 얘기해 두는 게 옳았겠지요. 하지만 당신 몫으로 남은 일이 있어요.
아버지의 유년 시절, 산에 들어온 이후의 오랜 세월, 그리고 후기작품 전부."
"후기작품은 없을 텐데."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 생각이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그러면 결국 아주 얇은 책이 되겠군요."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카민스키가 안경을 눌러썼다.
"내가 이 외출을 얼마나 많이 상상했는지 아나?"
"백만장자 게임, 브루노와 우베, 홀름과 그가 운영하는 약초 가공공장을 말이죠."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 일출을"
//<나와 카민스키>, 다니엘 켈만
끝으로 <백치>에서 이폴리트가 읊는 유명한 "필수 설명" 중 한 토막을 보자.
"개인의 자선을 비난하는 사람은," 나는 말을 시작했다.
"인간 본성을 비난하고 개인의 존엄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적 자선'과 개인적 자유는 서로 다른 문제이고, 상호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의 친절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입니다. 남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충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생한 충동이기 때문입니다...
말해보십시오, 바무토프,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그렇게 관계 맺는 것이 '
연관된 사람들의 운명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겠습니까?"
우리 시대의 주요한 소설가가 인물에게 이런 말을 시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다른 냉소적인 주인공이 비판할 수 있도록 제시된 위선적인 장광설이 아니라,
인물이 자살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늘어놓는 열 쪽짜리 진지한 독백의 일부로)?
우리가 그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요즘 소설가들이 그런 것을 상상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기준에서 그런 소설가는 가식적이고 장식적이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다.
오늘날 진지한 소설에 이런 연설이 직설적으로 나온다면, 그에 대한 반응은 분개나 비난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쁜 것, 즉 치켜올린 눈썹과 아주 쿨한 미소일 것이다.
그 소설가가 거물이라면, 뉴요커에 정색한 비아냥이 실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소설가를 웃음거리로 치부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생각하는 진정한 지옥이다).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이 재미는 말하자면 놀이로서의 일이다.
혹은 규율 잡힌 재미가 충동적이거나 방종한 재미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혹은 모든 역설이 우리를 마비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재미를 새롭게 다스리게 되었을 때, 픽션 쓰기는 이제 당신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당신이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것, 혹은 남들 어느 누구도 보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조명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주제야말로 알고 보면 모든 작가들과 독자들이 공유하고 반응하는 것,
느끼는 것이다. 픽션은 이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아니고, 남들이 가장 좋아해줄 것이라고 여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선보이는 수단도 아니며, 그보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 된다.
이 과정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무섭다. 또한 고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최고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이 처음에 글쓰기를 통해서 벗어나고 싶었거나 가장하고 싶었던 당신의 부분,
바로 그 재미없는 부분을 직면함으로써 이제 글쓰기의 재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역설이다.
그러나 이 역설은 어떤 종류의 구속도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선물이고, 일종의 기적이다.
그리고 이것에 비한다면, 낯선 사람들의 애정이라는 보상은 한낱 먼지에, 보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재미의 본질>,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월리스 에세이집은 많은 분들이 읽어봤으면 하네요
외국 번역서들은 먼가 번역이 이상한게 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