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생각의 흐름까지 이해하게 되면 그 가르침에 반대할 수가 없게됨 ㄹㅇ - dc App
익명(kjk8h)2023-01-17 18:13
나의투쟁 읽으면 되겠네 - dc App
갘까(parkcy015)2023-01-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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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7-16 02:13
답글
책을 많이 읽으신 파딱님들은 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익명(118.235)2023-01-17 18:16
답글
장난이지 그걸 진짜로 믿었습니까? 무지하시군요..ㅠㅠ
익명(39.7)2023-01-17 18:18
(히틀러 경례콘)
익명(168.188)2023-01-17 18:16
사람마다 다르지
밤샘소년(ysunggon)2023-01-17 18:17
예수도 유태인인데
NRA(110.46)2023-01-17 18:34
답글
본인이 혐오하는 것은 유태인이 아니라 <유태인적 사고방식>이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바이러스와 같음.
익명(39.7)2023-01-17 18:37
답글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예수는 오히려 완전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예수를 죽인게 유태인들 아니냐?
익명(39.7)2023-01-17 18:38
답글
내가 확답할 수 있는 문제는, 착한 유태인은 죽은 유태인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태인한테 죽임당한 유태인은 누구보다 진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유태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서 소독하는 방법 뿐임.
익명(118.235)2023-01-17 18:55
답글
바울 사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익명(223.38)2023-01-17 19:13
답글
착한 유대인 죽은 유대인 같은 발언은 교회의 기반인 사도의 가르침을 정면 부정하는것
익명(223.38)2023-01-17 19:15
답글
나도 그런 사도바울의 말에 동의한다. 반대로 <유태인적 사고방식>은 그런 사도바울의 말에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음. 역사적 사실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만을 쌓아올리려고 하는 사고 방식을 보고 <유태인적이다>라고 표현하는것임
익명(118.235)2023-01-17 19:23
답글
난 그러한 <유태인적인> 사고 방식을 거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알고 죄에 죽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익명(118.235)2023-01-17 19:24
답글
왜냐? 그속에 진리가 있기 때문임. 이것은 니가 인용한 로마서 9:3의 사도바울의 말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입장임.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쌓으려고 시도하는 <유태인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함
익명(118.235)2023-01-17 19:30
답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이중적 죽음과 우리의 이중적 부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죄에 죽어야만하며, 새생명으로 부활해야하고, 고통과 죽음을 죄에 대한 형벌로써 우리가 육적으로 부활할때까지 짊어져야한다.
익명(118.235)2023-01-17 19:35
답글
내가 번번히 유대인과 이교도를 함께 공격하고 있다면, 그것은 양자가 <자기 의>, 루터의 나중의 용어를 빌리자면 <행위의 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비판은 교회의 내적인 신앙의 약함을 채찍질하는 영적이며 신학적인 판단이다.
익명(118.235)2023-01-17 19:39
답글
원죄는 '죄의 불씨'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따라서 예수는 <고통과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했다. <인간되심>이 우리의 구원이다.
익명(118.235)2023-01-17 20:08
답글
창조된 것으로부터 하나의 진리를 비가시적인 존재로 이해하고 아는자가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와 세상을 향한 그의 뜻이 고난과 십자가에 표현되어있다고 이해하는 자가 참된 신학자가. 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하다고 칭하고, 선을 악하다고 칭한다. 하나의 비가시적인 진리를 <행위>에서 인지하고 보는 그러한 지혜는 부풀러진 것이며, 완전이 눈멀게 하는 것이며,
이쯤되면 진지하게 조현병과 독서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야된다고 봅니다.. 녜..
내가 니 아빠다
혹시 유대인을 죽이라는 환청이 들리진 않나여..? 예수님이 아침마다 보이고..
게이야..그 정돈 아니다ㅋㅋ
근데 일단 내가 니 아빠인건 확실함ㅋㅋ
여튼 요즘 독갤에 조현병 갤러들이 많이 보이는것 같네여.. 화이팅
우리아들 화이팅
ㄴ알았으니깐 알림 오니깐 그만좀 달아 존재 자체가 불쾌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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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지 그걸 진짜로 믿었습니까? 무지하시군요..ㅠㅠ
(히틀러 경례콘)
사람마다 다르지
예수도 유태인인데
본인이 혐오하는 것은 유태인이 아니라 <유태인적 사고방식>이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바이러스와 같음.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예수는 오히려 완전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예수를 죽인게 유태인들 아니냐?
내가 확답할 수 있는 문제는, 착한 유태인은 죽은 유태인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태인한테 죽임당한 유태인은 누구보다 진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유태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서 소독하는 방법 뿐임.
바울 사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착한 유대인 죽은 유대인 같은 발언은 교회의 기반인 사도의 가르침을 정면 부정하는것
나도 그런 사도바울의 말에 동의한다. 반대로 <유태인적 사고방식>은 그런 사도바울의 말에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음. 역사적 사실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만을 쌓아올리려고 하는 사고 방식을 보고 <유태인적이다>라고 표현하는것임
난 그러한 <유태인적인> 사고 방식을 거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알고 죄에 죽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왜냐? 그속에 진리가 있기 때문임. 이것은 니가 인용한 로마서 9:3의 사도바울의 말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입장임.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쌓으려고 시도하는 <유태인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이중적 죽음과 우리의 이중적 부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죄에 죽어야만하며, 새생명으로 부활해야하고, 고통과 죽음을 죄에 대한 형벌로써 우리가 육적으로 부활할때까지 짊어져야한다.
내가 번번히 유대인과 이교도를 함께 공격하고 있다면, 그것은 양자가 <자기 의>, 루터의 나중의 용어를 빌리자면 <행위의 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비판은 교회의 내적인 신앙의 약함을 채찍질하는 영적이며 신학적인 판단이다.
원죄는 '죄의 불씨'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따라서 예수는 <고통과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했다. <인간되심>이 우리의 구원이다.
창조된 것으로부터 하나의 진리를 비가시적인 존재로 이해하고 아는자가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와 세상을 향한 그의 뜻이 고난과 십자가에 표현되어있다고 이해하는 자가 참된 신학자가. 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하다고 칭하고, 선을 악하다고 칭한다. 하나의 비가시적인 진리를 <행위>에서 인지하고 보는 그러한 지혜는 부풀러진 것이며, 완전이 눈멀게 하는 것이며,
완고한 것이다.
이 글 보고 이슬람 믿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오늘도 유대인을 지옥으로 안내했습니다. 아멘
난 신앙심을 키우기 위해 니체를 읽는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