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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홀연히, 마을에서 떠난다.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짧은 몇 마디의 문장들 뒤에.

소년을 떠나게 한 어떠한 설명도 주어지지 않은 채, 소년은 순식간에 탕아가 된다.

마치 처음부터 탕아였던 것처럼, 소년의 삶에서 고향의 이름은 지워진 채 시간은 흘러간다.


처음부터 운명에 떠밀려 고향을 떠나는 『낙원』의 구조는 얼핏 서사시처럼 보인다.

그는 지독한 현실에서 떨어져 고향을 등진 채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믿지 않은 신에 의해 그는 유랑하는 상인단을 따라 또 다른 모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머무르고, 계속해서. 머무르고, 다시 떠나고,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스쳐가고.


작품 속 사람들에겐 모두 고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떠난 채로 존재하며 떠난 채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모험과는 사뭇 다르다. 모험에는 '돌아갈 곳'이 있지만 이 사람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다.

그들에게 돌아갈 곳이란 이미 파괴되어 있거나, 서서히 파괴되어 가거나, 앞으로 파괴될. 그런 곳들뿐이다.


삭막한 아프리카 땅에서 미지라는 이름도 어느새 진부해지고,

고향이 될 뻔 했던 추억들엔 결국 또 다른 슬픔이 있었다.

어느 곳도 그들의 삶을 품을 수 없었고,

어디에서나 모두가 이방인이었다.

애초부터 이 땅에 고향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각자가 믿는 것.

장사, 신, 수치심. 그런 모호한 것들이다.

그들은 믿음에 따라 각자의 땅에 묶여있는 것이다.

그러한 조형된 안위가 그들에게 고향을 선사한다.


소년 유수프는 상인과 떠난 모험에서 운 좋게 살아돌아온다.

그런데 모험이 끝난 이들에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이들은 모험을 겪으며 물자는 물론이고 몇 명은 생명까지 잃는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겪고도 그들은 담담하게 다시 떠나야 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떠나야 한다.


품어줄 이가 없는 그들이 믿는 건 장사와 신뿐이다.

또한 어쩌면 '낙원'


당연하지만 이 방대한 대륙에 낙원이라 부를만한 곳은 없고,

오히려 낙원을 찾아다니는 것을 통해 그들은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주인공 유수프도 정말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사랑에 빠져 훌쩍 떠나려한다.

그런데, 그에겐 고향이 없다.

그는 어디에서든 정착에 이르지 못하고 그저 머무름에 그치게 된다.

그의 새로운 이웃들은 그의 근원지를 궁금해할 것이지만, 그는 그 이름을 잊은지 오래일 것이다.

이것이 그의 서사시가 완성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유수프가 맞닥뜨린 건 누군가 짓밟은 땅 위에 드리우는 또 한 번의 짓밟음이었다.

그는 정착하지 못한 채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고, 마침내 짓밟음들에 이끌려 떠나게 된다.

Fin.


작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뭐 그런 거지.' 마냥 '신이시여, 그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들은 불운한 일이 있으면 쿠란을 집어들고, 해당된 페이지를 읊으며, 신에게 자비를 구한다.

앞서 말했듯 종교는 그들을 묶는 일종의 또 다른 고향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그들에게 고향을 선사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신에게 구하는 자비는 자신들에게 고향이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지시킨다.


결국 고향이 없는 그들은 무언가를 믿고 그에 따라 끝없이 둔주하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겐 그보다 더 나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바라건대,

신이시여, 자비를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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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아?" 하미드가 물소리로 가득한 밤공기 속에서 부드럽게 물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폭포들이 있다고 생각해봐. 유수프,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걸 상상해봐라.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너는 아니? 낙원에는 네 개의 강이 있단다. 강들은 동서남북 여러 방향으로 흘러서 신의 정원을 사등분하고. 그래서 어디에나 물이 있는 거야. 누각 밑, 과수원 옆, 테라스 옆, 숲 옆의 길에도 물이 있는 거지"

"어디에 그런 정원이 있다는 거야?" 칼라싱가가 물었다. "인도에? 인도에는 폭포가 있는 정원이 많아. 그런 곳이 당신의 낙원이야? 그게 아가 칸이 사는 곳이야?"

"신은 일곱 개의 하늘을 만드셨지." 하미드는 칼라싱가를 무시하고 유수프에게만 얘기하듯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천국은 칠층에 있는데 그 자체도 칠층으로 나뉘어 있지. 가장 높은 곳이 제네트 알아든, 즉 에덴동산이야. 털복숭이 신성모독자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어. 제아무리 천 마리의 사자처럼 으르렁거려도 안 돼."

"인도에는 칠층이나 팔층짜리 정원들이 있지." 칼라싱가가 말했다. "무굴 야만인들이 만든 거야. 그들은 테라스에서 진탕 마시며 놀고 기분이 내키면 사냥할 수 있도록 정원에 동물들을 키웠지. 그게 낙원인 게 틀림없이. 그렇다면 당신의 낙원은 인도에 있는 거야. 인도는 아주 영적인 곳이거든."

"당신 생각에는 신이 미친 것 같아?" 하미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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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후의 삶』이 더 좋았긴해씀


물론 이 작품도 굉장한 작품임

공간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낙원(또는 고향)의 부재와 부재 속 실존을 사유하는데,

구르나의 손길에 따라 세련된 장면에 녹아나기 때문에,

그것들이 하나하나 장면으로 다가옴


사실 중간까지는 되게 아련한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낙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모닥불 둘러싸고 춤추는 장면 같은 것

이런 부분은 그들의 허망된 낙원의 꿈에도 무언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했음


그런데 후반부에 유수프가 제기하는 의문들을 보면서

결국 그들에게 정착이란 건 없고 끝없이 허위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마지막 장은 역시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중간에 채찍 아재가 말했듯이 모든 믿음이 뒤엉키고 부서질 현실을 나타낸 듯

그리고 고향을 잃은 유수프는 운명에 따라 그것에 흡수되어버린 것 같고...


아무튼 좋았다 이겁니다

왠지 바닷가에서는 더 좋을 느낌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