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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책을 읽었다. 당연하지만, 비평서를 읽기 전에 비평서에서 다루는 글들을 미리 읽어야 할 테다. 덕분에 고골의 <검찰관>, <죽은 혼>, <코>, <외투> 등등의 글들을 읽거나 다시 읽었고, 다시 읽은 고골의 단편들이 예전의 인상보다도 훨씬 더 기괴하다는 걸 느꼈다. 나보코프의 고골론에서도 당연히 언급하는 것이지만, 고골의 글쓰기는 예측 못한 괴상함이 가득한 그로테스크로 이루어져 있다. 괴상망측하면서도 공포스럽지는 않은, 생생한 기괴. 그리고 이 생생한 기괴로 고골은 러시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속물근성пошлость을 훌륭히 표현하고 있다. (나보코프는 이를 vulgarity로 편의상 번역하지만, 그것으로는 пошлость의 뜻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당부하고 있어 이 번역서에서도 일반적 번역어인 속물근성 대신 뽀쉴로스찌라는 발음으로 대신 표현하고 있다.)
<죽은 혼> 1부의 치치코프는 고골의 글쓰기의 이 두 요소가 하나로 합일된 인물로, 치치코프는 너무나 과장스럽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속물적이고도 기괴하여, 누구도 이 인물이 현실적으로 처벌받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 그는 그저 토실토실하고 고약한 살아 숨쉬는 악마로, 언제나 번드르르한 말로 사람들의 속물근성을 자극하고 그들에게서 자그마치 죽은 혼들을 사모으기 위한 계약서를 받아간다. 누가 감히 이 친절하고도 우애 좋은 치치코프 씨의 진실됨을 의심할까? 그는 그저 인두세를 절세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을 제안하고 있을 뿐인데. 자신의 텅 빈 영지를 세상에 부유하고 있는 무의미한 영혼들로 채우는 겸.
이 생도감 넘치는 기괴함을 고골은 도저히 처벌할 수도, 감화시킬 수도 없었다. <죽은 혼>은 원래는 2부도 아니라 3부로 끝날 작품이었고, 1부를 '죄'를 다루는 부분으로 삼고, 2부와 3부는 각각 '벌'과 '구원'을 다룰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 악마를 처벌할 수 있을까? 그에게 가장 적합한 처벌은 그저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것 뿐인데. 소각되지 않고 남은 2부의 흔적들로부터 복원된 글에 담긴 공작에 의한 처벌 및 감화나 글로 남지는 않았지만 고골의 구상 흔적으로 남은 외딴 벽지에서 수도사로서 살아가는 일은 도저히 치치코프에게 어울리지 않다. 덕분에 2부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골의 선악에 대한 주관이 분명하게 녹아든 인물들은 <죽은 혼> 속의 세계에서 너무나 이질적인 이방인처럼 느껴지고 만다.
이러한 오해는 부분적으로는 <검찰관>의 흥행 이후 그의 글이 우스꽝스러운 사회비판으로만 이해 받고 있었다는 고골의 염려에서 기인하기도 했다. 그가 <검찰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사회를 비판하고자 하였던 것이느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이 사회비판의 칼날을 빛내는 사회개혁가들이 꿈꾸던 그것은 아닐 테다. <검찰관>에는 꽤나 분명한 종교적 암시들이 들어가 있고(결말에 진짜 검찰관이 등장하는 순간, 모든 이들이 마치 성경 속의 심판처럼 그대로 얼어붙어 오랫동안 멈춘 채로 극이 끝나는 것이라든가), 덕분에 <검찰관>을 관람한 이들에게 고골이 원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건 결코 혁명 따위는 아니었을 테다. (물론, 나보코프라는 이 저자-러시아 혁명으로 아버지를 잃고 해외로 피신해야만 했던, 문학의 정치성에 강하게 반대하는-의 주관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는 판단이기도 할 테지만.)
<코>나 <외투>와 같은 단편에서는 고골의 그로테스크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말이 되듯 구성되어 있는 글들 속에서 고골은 우리가 세계를 보며 포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혼돈을 표현한다. <죽은 혼>의 서술 속에서 호문쿨루스처럼 산발적으로 생겨나 세계의 주변부를 장식하는 영문 모를 인물들의 존재처럼, 코나 아까끼의 유령은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보이지만 좀 더 세밀하게 볼수록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괴상한 우리의 세계-더 정확하게는, 고골이 바라본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고골론과 나보코프 본인의 글쓰기가 듀엣을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 <니꼴라이 고골>에는 이따금 영문 모를 문장들이 일반적인 서술 사이에 삽입되어 있곤 하다. 고골의 비상식적인 서술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일까?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서술자가 급작스럽게 내용과 무관한 한탄을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책에도 역시 <창백한 불꽃>의 기묘한 장난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나보코프는 고골의 <광인일기>를 언급하며 책 마지막의 연보에서 그 줄거리를 다룬다고 넘기는데, 정작 연보를 보면 내용 대신 "이 작품의 마지막 단란이 <Nikolai Gogol>의 맨 앞에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물론, 이 책의 맨 앞에는 고골의 생애가 있다. 광인과 고골을 슬쩍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메타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수수께끼 등으로 나보코프는 자신이 고골론을 쓰며 말하는 세계에 대한 시각을 표현하고 있는데, 덕분에 윗 단락에서 말했듯, 과연 정말로 고골이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세계가 나보코프가 바라본, 아이러니하고 프랙탈적인 수수께끼로 가득한 세계가 맞았을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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