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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충동적이었다. 저자인 버나뎃 머피는 삶에서 우울한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큰언니는 죽고, 자신도 건강이 안 좋아져 일을 관뒀고 회복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시간은 많았다. 뭔가 할 일이 필요했다. 불쑥 튀어나온 생각은 '반 고흐는 왜 귀를 잘랐을까?'였다. 전문지식도 없고 관련 분야의 일도 하지 않은 그녀였다. 이 궁금증이 생긴 이유는 그녀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일수도 있고 전적으로 우연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할 일이 생긴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여정이 7년이나 걸릴 줄은 그녀도 몰랐다.
반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갱이 떠났기 때문이다. 동생인 테오가 결혼 소식을 알려 더 이상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원래 괴팍하고 특이한 성격 때문이다. 정신 발작을 앓고 있었다. 등등.
물론 이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섞여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행동의 동기는 결국 본인 밖에 알 수 없지 않을까. 어쩌면 스스로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를 수 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충동적으로 빠진 저자의 동기를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저자가 발로 뛰고 사람들을 만나고 수 없이 많은 자료를 뒤적이며 퍼즐 조각처럼 맞춰 보탠 이 새로운 설은 여전히 반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의 객관적 사실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설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벌어진 일에 하나를 보태는 것 또한 변함이 없다. 행동의 동기는 본인 밖에 알 수 없다는 것도 여전하다. 그럼 이 7년 간의 프로젝트는 헛짓이엇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료에 근거한 이 새로운 설은 반 고흐를 입체적으로 그리게 해줬다. 그동안 알던 대중적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188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저녁 반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잘랐다. 저자는 고흐가 귀를 얼마만큼 잘랐는지를 조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담당 의사였던 펠릭스 레의 편지를 찾아 그가 귀 전체를 잘랐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그녀가 최초로 알아낸 사실이다.) 그리고 그 귀를 씻어 신문자에 쌓아 '라셸'이라는 여자에게 줬다. 이 여자는 대중에게 창녀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아를의 역사 기록물을 뒤지고 (당시에는 공창제도 때문에 윤락업소도 기록이 남아있다.) 후손을 만났다. 결론적으로 이 여자는 창녀가 아니었다. 이름도 '라셸'이 아닌 '가브리엘'이었다. 1888년 1월 가족 여행에서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려 치료를 받았았지만 피부 손상이 있었다. 치료비로 돈을 많이 쓴 가족을 위해 윤락업소에서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반 고흐는 평소 상처 입은 팔로 열심히 일하는 가브리엘을 보고 가슴아파했다. 그녀의 망가진 피부를 대체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줬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가 보탠 새로운 가설이다.
<칼날이 긴 면도기를 들고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몸 일부를 절단하는 광경을 떠올릴 때 몸서리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이 유혈의 장면 뒤, 반 고흐는 발작의 상태에서 절박하게 침대 시트를 찢어 피를 멈추게 하려 애썼을 것이고, 그러다 갑자기 그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반 고흐는 과도하게 예민했고, 때로는 비이성적이었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보이는 그의 이러한 행동 뒤에는 늘 잘못 생각한 논리가 있었고, 특히 귀를 절단한 밤에는 더더욱 그랬다...(중략)...눈에 띄는 그녀의 커다란 흉터를 보며 반 고흐는 가브리엘에게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젊은 실습 사제였던 시절 옷을 다 나눠주고 바닥에서 잠을 잤던 것처럼, 부분적으로는 자신이 동생에게 짐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자살의 이유로 작용했던 것처럼, 반 고흐가 그날 밤 자신의 귀를 가브리엘에게 준 것은 그녀를 겁먹게 하려던 것이 아니라 구원을 가져다주려 한 것이었다...(중략),,,우리는 반 고흐에 관해 그간 간과하고 있었던 너무나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이타적 행위였다. 사려 깊고, 세심하며, 극도의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의 처신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반 고흐는 보다 동정심 많은 사람, 지누 부부와 룰랭 부부, 그리고 라마르틴 광장의 다른 이웃들이 알고 소중히 생각했던 바로 그 ‘므슈 빈센트’가 된다.
이제,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이 모험을 시작할 때 반 고흐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는 사실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반 고흐는 크나큰 위기의 순간들을 겪었지만 그의 그림, 우정, 편지는 개인적 고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자신의 고통의 합보다 훨씬 더 큰 인물이었음을, 그가 결코 창작을 멈춘 적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그의 창작 덕분에 훨씬 풍요로운 곳이 되었다.- 밀리의 서재>
저자의 7년간의 여정을 따라가던 초반에 나는 결론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귀를 자른 이유가 뭘까하고. 그러나 그 조사과정에는 우연적인 발견과 반 고흐를 둘러 싼 주변 인물들에 관한 흥미로운 점들이 존재했다.
집요하게 파고 들지 않았으면 우연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저자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으면 반 고흐의 주변인물들과 사소한 단서는 엑스트라처럼 눈길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 많은 조사들로 반고흐가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진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값진 결과이다. 귀를 자른 날은 그가 살아온 날들 중 하루일 뿐이다. 그리고 그에겐 그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생에는 훨씬 더 많은 날로 이루어져있고,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나 축하하며 그린 그림.
테오가 가정을 꾸려 앞으로의 재정적 지원에 대한 압박감에도
그는 진심으로 테오의 행복을 축하했다. 발작 증세 때문에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음에도
밝게 그려 너무 슬프다.-
"어딜 보아도 텅 비어 있어." 빈센트의 장례 후 테오는 이렇게 썼다.
"그가 너무나 그립고 무얼 보아도 그가 떠올라."
"테오야, 네게 신세진 돈은 꼭 갚겠다. 만약 그럴 수 없게 된다면 내 영혼이라도 주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