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가톨릭 교리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반작용을 했기에 결별했다-는 설명이 제일 널리 알려진 것이고 또 사실인데
한편으론 가난한 집안 출신인 하이데거가 계속 지속적으로 가톨릭으로부터 금전적으로 지원받으며 공부를 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남 눈치보고 비굴하게 살 수 밖에 없던 것이 하이데거에겐 큰 유감이었다함.
즉 학문적이유의 결별도 이유지만, 인간사적으로 자신의 가난했던 성장환경 & 그런 자신이 돈을 받고 가톨릭 재단 인사들에게 굴종적이었던 점들이 큰 영향을 줬다 이 말인듯.
실제로 하이데거는 늘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받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받들어 교회를 수호할 철학을 하겠노라 서약하고 받았다함.
한편으론 가난한 집안 출신인 하이데거가 계속 지속적으로 가톨릭으로부터 금전적으로 지원받으며 공부를 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남 눈치보고 비굴하게 살 수 밖에 없던 것이 하이데거에겐 큰 유감이었다함.
즉 학문적이유의 결별도 이유지만, 인간사적으로 자신의 가난했던 성장환경 & 그런 자신이 돈을 받고 가톨릭 재단 인사들에게 굴종적이었던 점들이 큰 영향을 줬다 이 말인듯.
실제로 하이데거는 늘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받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받들어 교회를 수호할 철학을 하겠노라 서약하고 받았다함.
아이러니한 건 하이데거는 가톨릭의 그 지원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기 재능을 꽃피워보지도 못했단거지. 아버지부터 성당의 관리인으로서 생계를 유지했었고. 그리고 하이데거는 살면서 가톨릭신앙은 계속 가졌음. 하이데거는 종교를 감성의 영역으로 봤기에 믿되 그 교리를 이성의 영역에서 절대화하진 않았음.
벨테 신부라고 하이데거랑 같은 고향에 대학교도 동문인 종교철학자가 있음. 하이데거는 이 신부의 철학적 실력을 매우 극찬했고 자기 철학이 종교에 어떻게 쓰이는지 볼려면 벨테 책을 읽어라 할 정도였으니까. 더불어 은둔생활할 때도 벨테 신부랑 계속 서신 주고받았고 죽은 뒤엔 자기 장례미사를 벨테신부에게 맡김. 벨테신부는 프라이부르크대학 신학/철학장 이었고.
그래서 확실히 하이데거의 저서와 신실한 기독교 주의였던 키르케고르하고의 느낌이 달랐구먼. 하이데거도 기독교리 하에 연구를 하지 않았나? 까지만 알고 있었서 의문이었어 실존주의에 신까지 끌여들인 키르케고르와 달리 종교적 색채다 다소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베른하르트 벨테 -종교철학(분도출판사)- 나중에 한번 읽어보샘. 현존재와 무로 신존재증명하는 게 있는데 하이데거가 아마 자기 철학으로 호교론 펼쳤으면 딱 이 느낌이었을듯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33259
아니 이게 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