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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마키아벨리의 편지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편지 구절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쓰게 된 배경과 책읽기에 관한 열정이 담겨 있어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들어간다네. 더러워진 평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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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마키아벨리의 편지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편지 구절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쓰게 된 배경과 책읽기에 관한 열정이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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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구절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책읽기에 집중하는 그의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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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그는 의관을 정제하고 그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마키아벨리가 묻고 이들이 답을 한다. 그는 이런 대화가 얼마나 귀중한지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는 가난도, 두려움도, 죽음에 관한 공포도 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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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전을 읽는 그의 방식은 이후 ‘군주론’과 같은 저작을 쓰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편지를 쓴 당시가 마키아벨리에게 가장 큰 불행과 고난의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소델리니 정권이 붕괴되면서 서기관의 자리에서 쫓겨났고, 쿠데타 음모로 감옥에 들어가 고문을 당했다. 그의 편지를 보면 “나를 향한 운명의 장난”, “운명의 신이 나를 괴롭히는 것”에 관한 분노가 행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이런 삶의 불행과 달리 저술가로서의 명성은 커졌다. 마키아벨리의 전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정치가인 마키아벨리는 사라지고 작가인 마키아벨리가 나타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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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를 보면서 창작에는, 특히 독창적인 창작에는 약간의 불행이 불가결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에게는 정치적 좌절과 실패가 독서를 가능하게 했고, 뛰어난 저작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예부터 뛰어난 저작은 삶의 처절한 패배 속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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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북칼럼니스트 독서에 대한 유명한 문구나 일화를 남긴 저자가 많이 있다. 그래도 그 가운데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발견한다면 다소 의외일지 모르겠다. 『군주론』의 저자 말이다.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오해받아왔지만 위대한 정치사상가로서 한창 재조명되고 있다. 위대한 정치사상가라는 타이틀에 견주면 사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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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유명한 문구나 일화를 남긴 저자가 많이 있다. 그래도 그 가운데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발견한다면 다소 의외일지 모르겠다. 『군주론』의 저자 말이다.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오해받아왔지만 위대한 정치사상가로서 한창 재조명되고 있다. 위대한 정치사상가라는 타이틀에 견주면 사소하지만 그는 위대한 독서가이기도 했다. 1513년 마흔네 살에 쓴 한 편지에서 그는 저녁에 귀가하여 서재로 들어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문가에 그날 입었던 진흙과 진창으로 더럽혀진 옷을 벗어두고, 위풍당당한 궁정풍의 옷을 입지.”
마키아벨리에게 서재는 고대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고대 궁전이다. 고대의 대가들을 더럽혀진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서 만날 수는 없는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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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본다면, 대화라는 건 책장을 이곳저곳 펼치는 것이겠지만 마키아벨리는 독서를 대가들에게 질문을 건네고 그들의 대답을 경청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 과정은 그에게 더할 수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곳에 머무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고, 빈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이 정도면 역사에 남을 만한 독서 아닐까. 마키아벨리를 오늘날에도 독서가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인 건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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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줄 아는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나라이면서 성인 독서량이 이토록 저조한 나라는 전 세계에 다시 없다. 책을 가장 적게 읽기’ 월드컵이라도 있다면 막강한 우승 후보다. 문제는 그래도 좋은가이다.
우리에게 다소 위안이 되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더 훌륭한 인격을 갖게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의 수용소에서도 독일군 사령관은 틈나는 대로 괴테를 읽고 있었다고 하니 독서의 효과는 분명 제한적일 것이다. 일찍이 책은 거울과 같기 때문에 “거울에 당나귀를 비추면서 성직자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대할 수 없다”고 일갈한 과학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선 ‘책을 읽는 당나귀’가 좀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책을 읽을 자유’는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자유는 권리의 의미도 갖는다.
마키아벨리의 독서론이 시사하듯 우리는 독서를 통해 고대의 대가들뿐만 아니라 온갖 지식의 거장들, 그리고 지혜의 현인들과 만날 수 있다.
(중략)
독서를 통해서라면 교황과도 마주앉아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겐 활짝 열려 있다. 그런 기회를 아낌없이

가사를 생각하지 않고 듣기만 하면 참 좋은 노래인데 이해하면 아마 노래 끝나고 우울해질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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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치만 메디치 각하에게 똥꼬쇼 포트폴리오로 군주론을 써 바친
피렌체의 당시 지배자가 메디치 가문인데 어케해 ㅠㅠ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74655.html
https://youtu.be/22rIt2X2j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