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제 :
여기서 쓰레기라 함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의 생각이 어떻든, 의심의 여지 없이(즉 건설적인 비판의 가능성을 위해 읽는 것이 아님) 잘못된 방향의(자신이 현재 알고있는 것으로 인해 공감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생각임.
예를 들자면, 1+1=2 를 공부해야 하는 목표의식을 갖고있는데 그것을 더 잘 학습하기 위해서 1+1=3을 공부하고 있고, 1+1=2의 근저에 숨은 논리를 반대 명제와 함께 탐구해 알아내는 정반합으로 이루어지는 이론적 연구과정도 아니라는 것임, 즉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거나 그런 종류가 아니거나이기 때문에 '쓰레기' 라는 과격한 어휘를 사용함.
이때 건설적인 비판의 영역을 벗어나는 '쓰레기'는 성숙한 정신에게서는 (이론적 여지를 남겨둔다는 의미에서)거의 모든 경우에, 기존 생각되던 주장과 너무 차이가 있으므로 지향점이 어떻든 더 상위의 이론으로 발족하는데에 적합하지 않다고 전제함.
2. 입장 :
나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근묵자흑이라고 원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거라 생각함
3. 질문 :
이에 관해 경험이나 의견, 이론을 공유해줬으면 함
4. 그래서 무슨 글을 읽고 이런 글을 싸냐?
: 장강명 /표백/을 읽었음
누가 쓰레기인가에 대해서 토론할 문제임. 책이 쓰레기인가? 아니면 독자가 쓰레기인가?
이미 그런 부분에 대해 전제에서 밝힘. (책의 절대적 가치평가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어떤 책이 어떤 독자에게 '쓰레기'일때, 그것을 읽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서는 애초에 도구이기때문에 사용자인 독자의 시점에서 평가를 진행하는거임
그것을 판단할 근거가 되는 것은, 공간질서를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임. 사상은 매우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의 사상에 반대되는 사상은 기존의 것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수 있어야한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문제가 된다.
만약, 특정 사상이 기존의 질서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무정부주의적이거나 니힐리즘적인 상태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지양되는 것이 맞음. 본문의 니 말대로 건설적이지 못한 책은 읽을 필요가 없음. 다만 이것은 읽고 판단해야하는 문제임.
일단 대립적인 사상에 관해서만 말하는 건 아님을 밝힘, 염두에 둔 것은 오히려 세계관, 즉 개인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총체의 현재의 내러티브,같은 느낌이었음. 또, '쓰레기'라 할 때 주로 염두에 둔 것은 니힐리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표백에 대한 너의 생각이나 관련된 너의 일화가 반영되었들 것 같음) 개인의 독특한 열등감의 조합으로 생산된 세계에 대한 뒤틀린 인식이었음, 다른 내용도 포함하기에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질문과 그 전제는 그러한 맥락에서 작성됨.
이때 새로운 이해가 갑자기 전제 없이 하룻밤만에 깨닫고 생겨날 수는 없다고 존재함, 인간은 관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상 같이 스며드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학습의 과정이 필요함. 따라서 그 내용이 별로든, 아니든 간에(즉 실질적으로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의 너머에 있을 때에도) 현재 학습의 유용성이 존재하진 않다고 봄. 비유를 하자면, 소 귀에 경 읽기, 덧셈하는 아이에게 선형미적분 가르치기, 황새가 뱁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정도가 있을듯? 너의 주장을 한 데에 요약해보자면 근데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나랑 결을 같이하는 것 같음. 의견 ㄱㅅ
ㄴ 존재>전제
공간질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은 배제할 수 없음. 오히려 배제하는 것이 잘못된 쪽임. 왜냐하면 그것이 질서의 근원적인 성질을 생각했을 때, 니힐리즘적이기 때문임. 질서는 어디에서 오는가? 질서는 서로간의 대립상황에서 나온다. 그 원초적 질서의 구성 요건들은 대립상태를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음.
공간 질서에 관해서 좀 더 깊이있게 설명해줄 수 있음? 뭘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겠음
모든 질서는 대립상황에서 나온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를 판단할 근거가 <대립상황>속에 존재하는 것임. <대립상황>이 모든 공법과 사법에 선행한다. 만약 그러한 대립상태를 없애버린다면, 그것은 법 자체의 근거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함. 즉 법자체로서 법의 근거가 되어버리는, 법만능주의상태가 생기는 것임. 이것은 모든 법을 니힐리즘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의미함
니가 열등감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감정들도, 기존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배제할 수 없음. 다만, 그러한 판단이 도덕적 법적 판단 그 자체로써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질서 내부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임. 만약, 열등감을 가진 감정이 결국 공간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그들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럼 누가 그것을 판단하는데?라고 말할 수 있음. 이에 대한 반문으로 독립적인 권위를 가진 어떤 존재를 상정함. 예를 들면 영국의 상원, 프로이센의 참모본부, 프랑스의 아카데미, 그리고 바티칸을 그 근거로 들 수 있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롤스가 말한 무지의 베일의 그것임.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독립적인 우월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임. 브루노 바우어의 헤겔주의적 어구를 흉내내서 표현을 바꾸어본다면, 그의 획득물을 획득물 자신보다 더 잘알며, 이러한 교양과 지식의 우월성으로 획득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자만이 상위에 존재할 수 있다.
이때 대립상황이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함. 정치적 상황의 특성상 양극화된 대립이 존재하고 그 중도가 세계와 일치한다. 그러나 일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는 아주 대충 말해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음. 따라서 대립상황과의 독립이 니힐리즘적 상실을 의미하지 않음. 다른 방법으로 세계와 벚은 연결될 수 있음. (이때 해당 내용은 chatgpt라는 인공지능을 사용해본 경험과 일부 관련됨, 경험의 핵심은 인공지능은 이미 언어적으로는 우리를 뛰어넘었으나,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모델링과 그런 움직임의 경험을 언어적으로 연관시킬 수 있는 게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아직 갖고있는 우일한 강점이라는 것임). (계속됨 기다려주셈)
이때 내가 열등감에 대해 언급한것은 법, 정의와 관련없이 그것이 세상이 해석하는 틀이 되고, 인간은 틀을 가지면 보통 그 틀에따라 확증 편향을 일으켜 인지하는 경험을 특정 조건에 따라 한정시키고, 따라서 그 사람의 세계는 무해석의 것, 사회의 평균적인 인간들이 동의하는 것에서 벗어난 이형질체가 된다는 것임.(경험 이상의 절대적인 것에 관해서는 아직 생각하고 있어서 이 부분의 생각은 미완성임) 이때 인간은 어떤것이 존재함을 알면 틀어지기 때문에 '무너질' 위험이 있음. 그리고 서로 너무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오해, 소통하려고 노력하다 의미상의 손실, 전달하는 것의 망각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모쪼록 양해부탁함.(계속 있음
마지막으로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개인적으로 피하는 것이 유익할수도 있음. 인간은 노출만으로도 합리성에 상관없이 영향을 상당히 받기 때문에, 사고에 불필요한 노이즈가 생김. 말하자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을 내 안에서 작게 탄생시키는 것과도 같음. 그리고 쓰다보니까 깨달은건데 생각하지 못한 전제, 니체가 말한 철학자의 밑에 있는 사상에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봄.
2번 초기는 이거로 대체해주셈 법 정의와 관련없이 그것으로 인해 틀이 생기고,
글이 이상하면 말해주셈 그냥 처음부터 다시 쓰겠음... 지금 막 헬스장 갔다와서.., ㅈㅅ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립상황 자체>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임.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질서의 근원적 시초이기 때문이다. 물론 니가 말하는 보편주의의 본질 역시 <대립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난 <독립되는 것>이 니힐리즘이라고 말한게 아님. 왜냐하면 보편주의로 부터 독립된 이형질체 역시 보편주의와의 <대립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임.
애초부터 <독립된다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이던, 개별적이던 간에 나머지 것들로부터 어떠한 태도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독립되는 것>은 대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립상황>을 증폭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가져오는 것은 니힐리즘이 아니라, 오히려 질서의 원형으로써 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것은 상호간의 <독립성>을 서로 인정한다는 것임. 내가 니힐리즘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독립적인 개체>간의 <대립상황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임. 그것들은 애초에 <하나>다. 서로 간의 간접적인 소통 혹은 직접적인 전쟁을 통해서 <하나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임. 따라서 양자 모두 존중 받아야한다.
그 <대립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그 <대립 상황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됨. 문제가 되는 것은 <대립상황> 자체에 직면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제한하고 있는 태도의 문제다. 그것은 확실히 <대립상황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이며, <대립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거부하고 피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교란자를 <소리없이> 없애버리는 규범과 제재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법을 니힐리즘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뜻함.
내가 적은 댓글들은 <가치들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명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배제하는게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 내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배제하는 방식에 관해서 그것이 타당한지? 타당하지 못한지?에 대한 것이다.
대립을 주요 구조로 삼는다는 너의 사고는 굉장한 합리성을 띄고 있고, 완벽히 합리적인 존재에 의해 운영될때에는 적합하다고 봄. 다만 내가 주안점을 두는 곳은, 실질적으로 인간은 사고에 여러 결함을 갖고 있는 존재이며, 그 결함으로 인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합리적인 것과 대립'시킴으로써 유지하며 질서와 체계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항상 그런 방식으로 모든 것을 사고의 중심에 놓이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상적으로는 직관과 습관에 의해 움직임. 이때 직관과 습관은 비합리와 합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대충 말해 익숙함만을 구별하므로,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그 대립 속의 질서와 자신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받아들일 것을 고르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임. 다만 교란자를 밀어버려 '니힐리즘적'이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립시킴의 유용성과 배제함의 유용성을 저울질 해 가능한 한 가장 큰 합리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임. 이때 본문에서 나는 쓰레기라는 강력한 단어와 전제들을 사용함으로써 대상이 배제함 이외의 행동의 대상을 아님을 밝힌 것임.
상호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밑의 차원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교란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상호 동의가 있지만, 그 교란자가 방해자에 불과할 때라는 전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부분이었다고 봄. 이런 의미에서 초기 답변에서는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결을 같이한다'고 함
너의 그런 사고 방식이야말로 전적으로 완벽히 합리적인 존재에 의해 운영될때에만 적합한 견해임. 그러한 점에서 너와 나는 일치함. 다만 너는 그러한 합리적 존재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못할 것임. 왜냐하면 너의 이론이 <대표하는 자>를 포함할 수 없는 견해이기 때문이지. 반대로 나의 이론은 이미 <대표하는 자>의 존재를 그자체로써 포함하고 있음.
내가 말하는 <대표하는 자>는 <대립 상황 그 자체>임. 다시 말해서, <대립상황>의 불이원성을 말하는 것임. 즉 <대립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그러한 대립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들 상호간에 규칙이 생기고, 또 이것이 <대립 상황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독립적인 대표하는 자>에 의하여 <다시 대립>되며 거기서 또 다른 질서가 창출된다.
따라서 전제를 해야하는 것은 상위에 존재하는 <계급>임. 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 합리적인 대표가 존재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상위에 있는 존재를 상정하는 <독신주의 관료제> 를 주창함.
그리고 그들간의 <대립상황>은 부정적으로 나눠진 이원론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대립상황> 자체의 불이원성을 주장하는, <원래 그들은 하나였다>라는 <대립상황>자체를 긍정하는 시각임. 오히려 너의 사고 방식이야말로, A와 B를 확실하게 구분하려고 시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 방식임.
다만 그것을 나눌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못하고 있음. 넌 지금 사고 방식이 굉장히 꼬여있는 상태임. 나의 시각에서 본다면 확실히 관료제가 합리적인 존재에 의해서 운영될 수 있음. 왜냐하면 <대립> 상황이 니힐리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당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지.
그 누구도 <대표하는 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대립>상황을 거부할 수 없음.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니힐리즘적임.
너는 어떤 것이 합리적인 존재로써 <대표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임? 보편성에서 거리가 멀면 그것이 열등감인가? 예를 들어서 자본을 많이 획득한 고위직들은 너의 말에 따르면 보편성에서 거리가 멀기에 열등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애초에 계급이 없는 오늘날의 사고 속에서는 어떠한 <대표>도 찾을 수 없음.
왜냐하면 계급이라는 관념은 사회질서 중에서 복수의 계급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하나의 계급이 자기를 국민과 동일시하는 경우에 이것은 계급이라는 관념 자체의 지양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임. 따라서 시민사회는 이미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하며, 오늘날 도처에서 반복되는 <보편적인 이원주의>에 운명을 맡기게 된다.
즉 시민사회는 자기의 양극성을 노출하고 한편에서는 부르주아지에로,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것도 대표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자기 자신을 대표할 뿐인 보헤미안으로 분열한다.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대표가 될 수 없음.
생산이 여지없이 익명화되고, 주식회사와 그 밖의 법인격의 은폐가 구체적 인격에의 귀책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단순한 자본가 개인의 사유재산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속물로서 제거될 뿐임. 기업가가 노동자에 대해서 <내가 여러분들을 부양하고 있다>고 말하면, 노동자는 기업가에 대해서 <우리들이야말로 당신을 부양하는 것이다>라고 응수할 것임.
여기서 어떤 것이 대표의 자격을 가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존재하는가?
아니지, 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임. 니가 말하는 것이야말로 <보편적인 이원주의>를 통한 소여의 분열, 이간, 결합을 필요로하는 안티테제, 무차별점을 가진 외 극성, 해결곤란한 균열상태이며, 자기자신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에로 도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발전도 불가능한 미결상태라는 사실임.
이거 누가 한국어로 번역 좀 해줄 사람?
ㅈㅅ.... 쉽게 쓰는 능력은 애저녁에 잃어버린지라...
그 책의 주장의 근거가 있을 거 아니야? 그 근거가 맞으면 수용하는 거고 아니면 틀렸다고 판단하는 거지
대충 말하자면, 그렇게 읽기 편하게 정리된 상태의, 학술토론이 이루어지기 용이한 상태의 논의에서 주안점을 두고 작성한 글은 아님. 또 주안점이 그 곳에 있더라도 언어로 주장되는 것의 특성상 '수용하는거고 아니면 틀렸다고' 가 불가능함.. 이거는 설명하기 너무 복잡해서 못하겠음.. 설명 못해서 ㅈㅅ..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 글 맞냐? 어휘력 문장 구성능력이 그야말로 참담하다 진짜
어휘력에 관해서는 '발족'의 사용을 두고 말하는거임? 떠오르는 게 그거여서 일단 쓰긴 쓰고 그 이후에 찾아봤는데, '단체 따위가 첫 일을 시작함' 라는 의미상 내가 뜻하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서 그대로 사용함.
당시 찾아본 의미는 '어떤 조직체가 새로 만들어져서 일이 시작됨' 이었고, 조직체의 의미에는 '체계 있게 짜여있는 체제나 단체' 라는 의미가 있었음.
문장의 구성에 관해서는 가독성을 희생해서 음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음
진짜 쓰레기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나 할법한 생각으로 보임. 너한테 표백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너 기준에서 나에게 가장 쓰레기였던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였음. 근데 이 책 및 나아가 앤더스 에릭슨의 기반 연구를 분석 해체해서 체계적인 비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유용한 방법론 몇개를 건졌고 실제 내 연구에도 반영 할 수 있었음 ㅇㅇ
진짜 쓰레기를 읽고 싶으면 약초마스터 같이 시류에 휩쓸려서 생산된 양산형 판타지물 및 라노벨같은게 섞여있는 도서관 서고에서 랜덤 뽑아읽기를 하면 됨 읽는 것 자체가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재미조차 없으면서 고통은 고통대로 주는 그런 수준이 되어야 쓰레기 처럼 과격한 라벨링이 정당화 된다고 봄
표백이 쓰레기라는 게 아님. 재밌는 책인데 내가 말하는 쓰레기란 작중에서 소개되는 세연의 세계관과 그 열등감이라는 뿌리의 총체임.
또 라노벨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미 라노벨 몇을 읽어보았지만, 보통 그 전개가 성적인 열등감을 갖고 있었음. 표백의 경우에는 네가 위인전적인 열등감이라 칭하는 힘으로 전개되었다고 봄. 표백 속의 세계관에 대한 비핀을 마주하며 방어적인 자세는 세계관의 평행이 그 기인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어봄. 또 딱히 표백만을 염두에 둔 건 아님. 내 의견 하나로 쓰레기와 한 작품을 엮는 만행을 저지르려는게 아님. 표백에서 떠올랐을 뿐인 생각을 일반화해서 그 이론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물은 것임. 4번의 의도는 독서 갤러리 주제에 일치였음.
아 문장 잘못읽었네 표백 관련 부분은 ㅁ;시헤줌
또 인신공격은 좀 자제해줬으면 함. 나도 너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이후 인간 사고력의 부정확함을 경험하고 생각을 바꿈. 경험적인 거라 설득은 불가능하지만, 일부 연구사례들을 제시하자먄, 대표적으로는 1분 전에 어떤 것에 노출된 집단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집단을 비겨했을 때, 노출된 집단의 어떤 것에 대한 선호도가 유의미하게 증가한 사례가 있음.
ㅁ;시헤줌 > 무시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