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예술일까?

취향이 곧 그 사람이다. 난 그 말을, 그 말이 가진 힘을 믿는다. 이를테면 살바도르 달리보다는 호안 미로를, 잭슨 폴록보다는 라우센버그를, 피카소보다는 보초니를 좋아한다는 표현이 나 자신을 정의한다고 믿는다.

만화는 내 오랜 일부였다.

언제였지, 만화는 예술이 아니다, 만화는 대중의 입맛에 맞춘 인스턴트다, 라고 주장한 친구와 꽤 오래 다툰 적이 있다. 그냥 넘길만도 한 말이었지만서도 그 말이 내 안쪽 어딘가를 건드렸다. 돌이켜보면 아마 그런 내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횡설수설 만화에 대해 변론을 펴다가, 아니 그런데 예술이 뭐지, 만화는 또 뭐고, 난 뭘 사랑하는 걸까 고민해야만 했다. 우리 대화는 길어졌고, 와중에 오간 말은 단 한 마디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에 가서 어쩌면 만화란 내가 그리 사랑할만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더랬지. 그럼에도 유장한 변론 끝에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기괴한 것들을 사랑한다."




당신이 개성적인 만화를 찾고 있다면 - 엽기 시대


트뤼포는 우리에게 작가가 있으리라 말했고, 그 뒤로 우리에겐 작가만 남았다.

"작가주의란 개념은 장 지로두의 말을 빌린 겁니다. "작품이란 없다. 오직 작가뿐이다." 다른 작품은 종종 인기를 끌다가 결국 잊혀지면서도, 클로델·지로두·몰리에르가 만든 작품에는 어떤 총체가 있다는 걸 설명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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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란 독창적인 작품 세계, 일관된 철학, 툭 튀는 개성을 가진 작품들 앞에 붙는 표현으로, 사실 '개성적이다'를 좀 있어보이게 바꾼 말에 다름 아니다. 작가주의 영화, 작가주의 미술, 작가주의 소설, 작가주의 뭐시기, 작가주의, 작가주의, 그 놈의 작가주의들. 이제와선 이런 표현은 난해하고 지루한 작품들을 보기 좋게 설명할 때 쓰이나보다.

만화 장르도 마찬가진데, 이미 많이들 리뷰한 아사노 이니오, 판판야, 타츠키, 아베 토모미 같은 유명(?) 힙스터 작가들을 있어보이게 작가주의 만화들(?)이라고 말하는 걸 여러번 들었다. 이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악동들이라 절대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지 멋대로 엇나가버린다. 이를테면 아사노 이니오의 잘자 뿡뿡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낯선 장면들, 야마모토 히데오 작가의 고로시야 이치에서 사용하는 비합리적이고 편집증적인 서사가 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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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으니까 갑자기 신이 등장하는 장면. 심지어 이 작품 주인공은 사람을 닮지도 않았다.



나는 이 말괄량이 작가들의 목록에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한 명을 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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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시대(원제: paranoia street, 이하 파라노이아 스트리트라고 표현)는 카고 신타로의 유일한 한국 발매작이다. 그마저도 총 세 권 중 단 한 권만 들어왔는데, 이는 카고 신타로의 작품 세계에 단순히 수위를 논하는 걸 넘어서 상당히 기괴하고 반윤리적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만화가 후루야 우사마루는 이 기괴함을 두고 카고 신타로를 일본의 "살바도르 달리"라 칭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살바도르 달리보단 르네 마그리트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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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곤경에 처한 암살자

살바도르 달리가 꿈을 묘사하고자 한다면, 르네 마그리트는 정신병을 묘사한다. 마그리트의 세계에서 옆집 아저씨는 호시탐탐 날 죽이려드는 살인마고, 내 집 한 구석엔 시체가 묻혀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은 허황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굉장히 논리적이다.

마찬가지다. 카고 신타로의 소설은 몽환적이지 않다. 대단히 사실적인 그림체와 서사를 갖췄다. 흔히 말하는 판타지는 만화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카고 신타로 특별하게 만들까?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을 짚어보려고 한다.



1. 독자적인 세계관

파라노이아 스트리트는 탐정과 조수가 "특색이 강한" 마을(스트리트)들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일견 오노 나츠메의 <ACCA 13구 감찰과>와 별다를 바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 '마을'들의 특색이 얼마나 강한지 본다면, 그런 생각은 못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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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태어나고 자란 탐정들만 사는 마을부터, 질병을 사랑한 나머지 불치병을 앓고 싶어하는 마을, 수치심에 구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마을, 시계에 맞춰 산 나머지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야하는 마을(?), 그야말로 편집증 환자들의 천국이다.

카고 신타로는 언젠가 자신이 츠츠이 야스타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카고 신타로의 작품은 츠츠이 야스타카의 <파프리카>처럼 색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진하다. 그로테스크와 에로스는 그런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2. 기준선 흔들기

재밌는 건, 작품의 편집증적인 요소를 처음부터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작해 비일상으로 접근한다.

박병규 교수는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드러누운 밤>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꼬르따사르의 환상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약해지는 현실(또는 현실적인 요소)과 점점 강해지는 비현실(또는 비현실적인 요소)의 간섭 상태에서 발생한다. (중략) 그리하여 세계는 순수한 합리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비합리성을 껴안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현대인의 협소한 상상력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이 말은 정확히 파라노이아 스트리트에도 들어맞는다. 아주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작해서 작품은 어느 순간엔지 모르게 비일상에 들어와있다. 우리가 현실이라 믿고 있던 토대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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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측기가 유명한 마을에서 집단 정신병 소굴로 탈바꿈하는데는 다섯 페이지가 체 걸리지 않는다.


일상과 비일상을 뒤섞어 혼동, 아니 역겨움을 주는 만화. 카고 신타로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3. 만화-현실 넘나들기

카고 신타로의 또 하나의 강점은,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카고 신타로는 만화의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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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에선 만화의 검열을 오히려 한 가지 소품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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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가의 작품 프랙션의 일부. 만화의 정적인 특성, 프레임까지도 신타로 작품에선 장치에 불과하다.


작품의 안팎을 오가는 장면들을 보며 독자들은 일종의 부조리극을 보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과잉된 연극. 이제 그로테스크는 유머로 전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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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카고 신타루가 단지 잔인하고 역겨운 작가라 말할 지 모르겠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화를 아는 작가라고.



만화는 예술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만화는 예술일까? 난 벤야민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만화가 예술인지 아닌지는 논할 가치가 없다. 만화가 예술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만화는 자체로 굉장히 독창적인 매체다. 카고 신타로의 작품에서 나는 만화에서만 가능한 무궁한 상상력을 발견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 한 점과 함께 글을 마치고자 한다. 다카시는 오타쿠 문화가 현대 일본의 정체성이라 보았다. <마이 론섬 카우보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피규어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메스러운 얼굴에 비해 몸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2차원에 있어야 할 인간이 3차원으로 튀어나온듯한 어그러짐.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캐릭터는 완전 나체다. 심지어 한 손으론 발기한 성기를 쥐어잡고 있다. 정액은 무슨 용처럼 솟구친다. 이게 무슨 예술이란 말야? 참고로 이 작품은 한화 170억에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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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이면에서 비대해진 우리의 판타지, 페티쉬, 키치를 발견한다. 21세기는 현실보다 데포르메에서 현실감을 느끼는 세대다. 만화는 현실과 아예 다르면서도 새로운 대안 현실을 만들어낸다. 무언가를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작품이 철저히 현실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렇기에 만화는 어떤 지점에선 텍스트와 영상의 기괴함을 넘어선다.

그리고 난 이런 기괴함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