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세기와 추리 소설의 탄생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5fa11d028316d89837e453d871a154fbca341c6f9de935ecb76b142243b9626c1ce140385166133777ea413872d64f9320688debdb2b918cd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5fa11d028316d89837e453d871a154fbca341c6f9de935ecb76b142243b9626c1ce140385166133777ea413872d37aa630288d7bfb2ae1610


추리 소설의 탄생은 20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 그 시작을 같이 한다.

20세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합리주의/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 과학의 발달,

중산 및 노동자 계급의 증가, 독서의 대중화(신문 보급이 특히 큰 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알다시피 연재 소설이라 하면 보통 신문 지면에 연재되었기 때문.)
그리고 결정적으로 추리하면 빠질 수 없는 전문범죄자들이 탄생하게 되고,

동시에 범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애드거 앨런 포가 탄생시킨 추리 소설은

아서 코난 도일 경(코난 도일은 독실한 아일랜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종교 대신에 과학을 바탕으로 한 실증주의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적이고 이지적인 탐정 캐릭터인 셜록 홈스가 탄생했다. 정작 코난 도일은 말년에 오컬트와 환상에 빠진 게 아이러니지만.)손에서 '셜록 홈스'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와 함께 그 절정을 맞이하였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추리 소설은 당시 시대상과 세계관을 전적으로 반영한 장르다.

그래서 합리주의/실증주의라는 바탕에서 탄생한 추리 소설은

그 자체가 '세계의 가해성',

즉 세계는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분야를 완성시킨 코난 도일은 과학적이고 이지적인 소설을 지향했다.

내용적으로 추리 소설은 대부분
문제의 발생 -> 문제의 원인을 탐구 ->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동원 -> 문제가 해결되고 세계는 다시금 안정
이라는 수순을 밟고 있다.

결론적으로 고전 추리 소설에는 '이 세상의 문제들이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있다.'라는
다소 낙천적인 메세지가 담겨있다.


2. 하드보일드와 기존 세계에 대한 반발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a85fa11d028316d89837e453d871a154fbca341c6f9de935ecb76b142243b9626c1ce140385166133777ea413877960ae6502ded8bfb2e9a0f1


20세기 중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를 통해 절정을 맞은 추리 소설은 세월이 흘러가며 조금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성과 그들의 감성과 감정에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존 황금기 퍼즐 미스터리에서 가해자는 그야말로 '범죄자'였다.

위 단락에서는 기존 추리 소설의 마지막에서 문제가 발생한 세계는 다시금 안정된다고 언급했다.

즉 세계는 본디 안정되어 있고 나쁜 범죄자들이 그속에서 문제를 일으킬 뿐. 이라는 것.


애거서 크리스티는 사건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쯤부터 범죄자와 정상 사회로 이분되던 세계는 조금씩 나뉘어질 조짐을 보인다.

(물론 크리스티 소설이 '사실은 가해자들도 좋은 사람이었어'를 반드시 지향한다는 건 아니다.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란 이들에 대해, 그 '인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접근해보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실로 충분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퍼즐 미스터리의 세계는 어느새 저물고,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를 기반으로 한 하드보일드의 세계가 열렸다.


그럼 황금 미스터리에서 나타나던 기존의 합리적인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뭐 그런 거지.
망했다.
뭐 그런 거지.

하드보일드는 전후 시기, 기존 자본주의의 회의로부터 태어났다.
합리적이고 가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세상은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범죄는 해결할 수 있기는 커녕 이제는 뭐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사회는 과학을 바탕으로 진보하기는 커녕 자본가들의 욕망스러운 세계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에 세계의 편에서 범죄자들을 몰아내던 멋진 탐정들은,

이제 썩어빠진 세계에서 꼬질꼬질한 잡범들 꼬투리나 잡는 소시민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의관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하드보일드는 기존 세계에 대한 반항을 기본으로 하지만,

'만약 이런 세계에도 뭔가 남아있다면 그걸...' 이라는 기사도적인 태도가 존재한다.


세계는 썩었지만, 그래도. 라는 일말의 희망.

그것이 하드보일드가 용을 쓰는 결정적인 지향점이다.

아직 하드보일드에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이것은 실제로 해결되거나,

또는 불가피하고 처참하게, 좌절된다.


또 하나, 챈들러가 그려낸 탐정 캐릭터인 '필립 말로'의 재밌는 점은,
도대체가 비꼬고 조롱하지 않고서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유머를 끼얹은 강한 풍자성은 커트 보니것의 농담에 대한 단평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농담은 그 자체로 예술이며, 감정의 위협으로부터 기인한다.
매우 훌륭한 농담은 위험하다.
그것이 느 의미에선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드보일드 속 세계에서,

탐정들은 사건의 완전한 해결과 세계의 복구를 지향하기 보단,
사건의 바탕에 있는 부패한 세계의 온상을 드러내며, 그곳에 있는 자그마한 해결점을 찾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이때쯤부터 합리적인 해결이 없는 세계는 이미 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3. 추리 소설 '형식'의 채용을 통해서 열심히 말해보기


a15528aa2527b356a68084e54483746c27f44c51a64fa969e5c446b505b0f19bb147300a1ae384c5b59daecfc74d3d09463a2dd154c843aea15528aa2527b356a68084e34088766f2c3d51dbb23197e564673de5ab0c4e667e6c4fd77fe5037ff2bfe93d9744


정말 뜬금없지만 스릴러 첩보 느와르 일본추리 본격 사회파 코지 다 건너뛰고
준묵은지 작품들로 건너와보자


현대에서 추리 소설은 '장르' 자체로 있기 보단
'형식'의 채용으로 많이들 나타나고 있다.
현대 소설들이 추리 소설로부터 가져오는 근원적인 요소는
"아니, 그래서 이게 왜 이렇게 됐지?"라는 추리소설 본유의 '합리적 탐구'의 플롯이다.

처음 단락에서 추리 소설은 '세계는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있다.'라는 명제를 달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또한 추리 소설이 "자,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라는 시점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하드보일드 시기 추리소설에서는 "자, 이 세계는 합리적이지가 않구나. 하하 옘병할."이라는 의식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하드보일드가 드러내는 것은 '세계의 잔혹한 불가해성'이었다.
현대 소설은 바통을 이어받아 이러한 '불가해성을 가해해보기' 위해서 추리소설을 차용한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은 이장욱 센세의 소설 데뷔작으로,
지하철에 치여죽은 한 남자가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를
여섯 사람의 과거가 얽히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는 추리/미스테리 소설에서 흔히 보여지는, 과거를 통해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형식의 일종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미스테리 소설이었다면, "아~ 이 남자는 이런 범인이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죽었군."이라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나타났겠지만,
이 소설이 보여주는 건 복잡한 인과관계가 얼기설기 만들어낸 '불가해한 사건'이다.
즉 해결책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건이 얼마나 불가해한 건지 보여주기 위해서 추리 소설의 형식을 채용한다.

'지상의 노래'는 이승우 센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이다.
이 소설은 산골 폐교회에서 발견된 '벽서(벽에 쓰인 성경의 필사본.)'를 바탕으로
왜 여기에 벽서가 있는가? 벽서가 있었다면 사람이 있었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를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보는 소설이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 얼기설기 얽힌 인과관계의 복잡함을 통해 세계의 본질적인 불가해성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이 소설은
벽서가 새겨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죄와 실존과,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건의 발견은 모든 것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마땅히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다만 나름대로 '인과관계'를 다시금 조합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그러니까, 그걸 조합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곳에 모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두 소설 모두 추리 소설의 형식을 일부분 차용하지만, 추리 소설의 최종 지향점인 '문제점의 해결방안'까지 도달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관이 '문제를 생각하면 해결 가능한 세계.'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재한 세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채택하는 것은 '추리 소설'이 내재하는 '사건의 탐구성'. 그 자체이다.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이런저런 인과관계를 탐구해보기.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각자가 믿는 실재를 형상화하는 것.
이것이 현대 소설이 추리 소설을 차용함으로써 이뤄내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 아이 참 재미있는 추리 소설(맺는 말)

위에 주절주절 써놨지만, 사실 저건 추리 소설을 구조주의적으로 탐구해본거고,
이외에도 추리 소설은 더욱 다양한 시점에서 해제해볼 수 있다.
보르헤스는 추리 소설에서 독자가 작품 세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 던 것 같다? 아마도.
어쨌든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점은 추리 소설이 폭 넓고 다양한 시선을 제시한다는 것이고,
개재밌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아닌가? 아니라면 좀 슬픈데...


어쨌든 추리 소설은 현재까지도 여타 장르와 다를 바 없이, 또는 색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추리 소설은 존나 재밌으니까 읽으란 말이다.

무엇이든,
또 누구든 좋으니.
.

.

감사합니다.

보닌이 듣고 보고 생각하고 배웠던 내용들을 조금씩 가져다가 썼습니다.

정작 실제로 읽어본 책들은 많이 없을?지두.
많이 읽어봐야겠지요...


다들 추리 소설을 좋아하세요......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