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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만큼이나 프랜즌의 '자유'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월터 가족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문장도 없다. 말 그대로 월터 가족의 구성원들은 각자 태어나고 자란 가정의 영향을 받아 그로 인해 불행하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자라게 되지만, 그 울타리 내의 공간은 인간이 숨쉬기에는 너무나 좁은 곳인지 견디지 못한다. 급기야는 또 다른 가족구성원에 대한 반감으로 반작용을 일으킨다. 그것은 비극이지만 그 반작용의 이름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 이름은 바로 자유다.


하지만 이 '자유'라는 것의 기원을 따져보면 가족들에 대한 반감과 반작용이다보니 역설적이게도 '자유'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점점 더 자유롭지 못하고 더욱더 가족이란 거미줄에 얽혀 옴짝달싹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는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것은 사실 그것에 더욱 집착하고 의식한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자유'의 권리행사를 부르짖으면 부르짖을수록 실제로는 자유에서 멀어진다. 그것이 이 '자유'라는 것의 본질이 아닐까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그저 울타리 안에 있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그 존재들로 하여금 발생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면 칠수록 오는 것은 더한 고통이다. 그저 있는 것들을 그대로 본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길이 보이고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들간의 불화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아가 형성된 일종의 불행아들이다. 옛날이였으면 당연히 가족간 얽히고설켜 사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자유의식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월터 가족은 모두 스스로 자유롭다 여기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자유롭지 못하다. 가족이란 틀에 갇혀 평생을 산다. 서로에 대한 분노를 멈추고 그들을 소통불능의 대상으로, 어떤 존재로 만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있는 그대로 그 존재를 보았을때 월터를 책임이 강한 존재로, 패티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조이를 독립심이 강한 존재로 보았을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문이 열리고 그 문틈으로 평온이란 빛이 비추게 된다.


요즘은 자유에 대해 어느 누구든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만연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자유란 말을 오용하는 경향, 실제론 자유가 아닌 것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자유라 명명하고 그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경향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의 일환으로 자유를 행사한다는 명목 아래 사실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자가당착에 빠지는 상황도 포함될 것이다. '자유'를 외치기 전에 과연 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라는 자성과 함께 자유의 오용, 자유에 대한 책임, 그리고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현대모습과 결부시켜 현대적 문제를 되짚어보게 하는 것이 현대문학만이 가진 가치가 아닐까 인식전환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