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L.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답)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 언어철학, 형이상학 분야에의 기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철학자입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논리-철학 논고>에서,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이 말은 보통, 우리의 언어로서 의미있게 논의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근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우리가 이러한 한계를 만났을 때는 굳이 그 한계를 넘어 언어로서 설명하려 애쓰기 보다는 침묵하여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언어가 세상을 표상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엄연히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을 표상하거나 이해하는 데 쓰일 수는 없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에 기초합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문구는 언어로서 의미있게 논의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언어로 이들을 애써 설명하기보다는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 철학적 이해능력을 보고 싶었습니다.
==================================
자, 일단 정말 짚고 싶은 건 진짜 대단하다는 거임.
나는 그렇게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함에도 이렇게 글을 쓸 능력이 없음 ㅠㅠ
그런데 나는 진짜 찐 비트겐슈타인퍼거로서 조오금은 지적하고 싶은 점이 듬.
여기서 ChatGPT의 단점이 꽤 잘 드러나는 거 같아서.
단점이 "진실이랑 거짓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거 같다"랑 "전문적인 이과생 질문에는 아주 이상하게 대답하더라" 잖아.
지금 저기에도 그럼.
비트겐슈타인에게 유명한 "한계"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깊이 고민한 적이 있었음.
그리고 이게 가장 좋은 예시인듯.
한계는 뭔가 지도에 원을 찍찍 그어서 이 안까지만 있으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2차원의 틀로 전부 깔아놓았지만 3차원의 무언가는 설명하지 못하는 거랑 비슷한듯.
"세상의 모든 것을 표상하거나 이해하는 데 쓰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이 너무 애매함.
자비를 들여서, "세상"이란 단어가 애매함. - 다의적임.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와 "세계의 한계"를 깊이 구분하거든.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요소명제의 결합으로 전부 표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그런 요소명제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논리학에 대해서는?
여기선 이렇게 말해.
첫째, 논리는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세계의 한계는 또한 논리의 한계이기도 한다고. (5.61)
둘째, 논리학은 학설이 아니라 세계의 거울상이며, 논리는 transcendental하다고. (6.13)
그리고 6 부분에서 나오는 많은 철학의 논제들, 예를 들어 인과성 문제와, 수학의 존재에 대한 물음, 세계의 존재에 대한 물음, 회의주의에 대한 물음, 그리고 삶의 의미로 대표되는 윤리들은 그런 "요소명제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거임.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세계의 한계"라는 특수한 용어를 사용해서 해결하려고 함.
이런 세계의 한계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설명이 아닌 "언표하지 못하는 게 드러났다"(6.522)고 함.
자, 간단히 말해, 세계는 전부 표상이 가능한데, 표상을 가능케 하기 위한 조건은 세계의 한계에 있어서 이것은 보여진다는 것임.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실증주의가 자기 철학을 쓰는 걸 보고 이렇게 말한 적 있다 함. "너네는 '언어의 한계'를 괴상하게 쓴다. 언어는 감옥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철학을 어느정도 공부한 사람들을 포함, 지식인들도, 비트겐슈타인을 그다지 잘 파악하지 않으면 그들의 선이해 즉 편견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이정도로 말하거든.
아무 유명한 생물학자가 자연주의의 오류를 밥먹듯이 저지른다던가, 예전 프랑스 철학계에서 헤겔 열풍이 불 때 이게 진짜 헤겔이라기보다는 코제브라는 창조적 오독을 한 사람의 열풍이었다는 등. 전문가들도 이정도임.
여기서 가설 하나를 세우겠음 : ChatGPT는 이 진실 거짓 혼동 문제, 이과생 공대생 전문 질문의 난점을 쉽게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음. 왜냐면, 날고 기는 인문학자 지식인도 잘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인 거 같기 때문에.
하나만 깊게 파는 사람은 섬세한 것, 시대에 빠르게 변하는 것, "감지력"이 필요한 사유를 잘 못하는 반면, 섬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기하학적 정신", 즉 엄밀논리적 정신이 부족하다고 파스칼의 팡세에서 말했는데, 지금 GPT가 그 섬세한 정신의 인문학자의 늪에 있는 것 같음.
지금까지 썼던 semantic space를 활용하는 language model이 아닌 뭔가 완전 다른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냥 추측이지만, 좀 달라야 할 거 같음.
비트겐슈타인은 무의미하고 모호한 형이상학의 논쟁들이 언어의 사용 문제라 보았음. 이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의 체계는 사유에 한계를 설정하여 인식론적 철학 체계를 설정하는 칸트와는 염연히 다름. 너는 일단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인식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 오도임.
걍 불가능한 거 아님? 어떤 견해라는 게 언뜻 보면 거기서 거기일 수 있지만 진짜 피와 살이 담겨져 있는 생각들도 있지 않을까. 즉, 정말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한 챗봇을 만드느니 차라리 인간 생물을 하나 만드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거지. 근데 그건 걍 짝짓기해서 사회에 풀어놓는 거랑 다를바가 없는 거니까. 걍 자연은 못이김..
그냥 챗GPT 좀만 제대로 된 거 물어보거나 용어 섞어써도 헛소리만 그럴듯하게 하던데 일반인 수준의 대화를 원한다는 가정 하에서만 쓸만한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