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편 제5곡
그 유명한 프란체스카 사랑 구절
103-105
Amor, ch'a nullo amato amar perdona,
mi prese del costui piacer sì forte,
che, come vedi, ancor non m'abbandona.
여기 103행 직역해보면
사랑, (관계대명사절)사랑받는 어떤 자도 사랑하지 않도록 허용하지 않는 인데
카톨릭출판사에선
[어느 연인에게도 사랑을 허락하지 않은 사랑이]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의 뉘앙스와 뜻은 어디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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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역본은 어떰?
몰루 최민순신부님 역본밖에없어서 - dc App
야 이거 오역 지적하는 사람 처음이다
오역이 아니라. 올바른 해석 같은데? <사랑=사랑받는 어떤 자도 사랑하지 않도록 하는 사랑=사랑을 허용하지 않는 사랑>
사랑의 이중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않는데서 오는 착각임
원문뜻은 사랑하지 않는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랑임 님은 반대로 해석함 - dc App
사랑1). 사랑2)하는 널 사랑1)은 용서한다. 2번 사랑은 1번 사랑과 다른 의미임.
왜 nullo를 해석에서 빼버림? - dc App
2번 사랑은 <대립>으로 해석하는 것이 알맞음.
perdona를 용서하다라고 해석하면 뜻이 어색해질텐데 - dc App
안이상함. 니가 이상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임. 애초에 가톨릭의 사랑은 이 지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음. 그렇기에 2번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되는 것을 뜻함.
사랑에 대한 동격 관계사절로 후술하는 내용인데 사랑- 그어떤 사랑받는 자도 사랑하지 않는걸 허락하지(용서하지) 않는다 인데 어떻게 해석이 사랑을 허용하지 않는 사랑이 됨? - dc App
그럼에도 불구하고 1번 사랑은 그러한 2번 사랑을 통해서 천상에서 이루어진다.
프란체스카가 세속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갑자기 가톨릭 신의 사랑이 왜 나옴? - dc App
2번 사랑을 1번 사랑과 완전히 동격으로 취급해버리면 그것은 기독교적인 해석이 아님. 왜냐하면, 최후의 심판 사이에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여러번 나타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기독교적인 해석이기 때문임
이태리어 문법적인 해석은 싹 무시하고 신의 사랑으로 해석해버리네 - dc App
먼 문법타령함ㅋㅋ문법을 포괄해서 봐도 그런 해석이 기독교적인 해석이야. 1번 사랑과 2번 사랑이 동격으로 표시된다면, 그 의미가 최후에 날에서는 동일하기에 동격인 것이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랑'들'이 최후의 그것과 동일하게 '여러번'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니 해석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음. 완전히 비기독교적이며 오히려 이교적인 해석임. 만약 니가 신곡이 이교적인 책이다라고 말하고 싶다면, 가톨릭번역으로 읽지마삼
그니까 왜 프란체스카가 세속적인 사랑의 성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구절에다 갑자기 신의 사랑 개념을 대입하냐고 문법적으로 해석해도 저 역본은 오역인데 - dc App
어이가없네.. 내가 언제 신곡을 기독교적으로 안 받아들인다고 했나.. 저 구절이 프란체스카의 세속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그렇기에 속세적 사랑을 갈구한 자로서 지옥에서 죗값을 치른다는 기독교적 내용이 나타나는 부분인데... - dc App
그 세속적인 사랑이 <원죄>이지만, 그 죄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기독교 사상이기 때문임.
cha nullo로 부분때문에 최민순 역본 오역인지 아닌지 물어봤더니 그부분 싹 빼버리고 신의 사랑으로 해석하면 오역 아님 이러는데 뭐라고 대답해야되냐.. - dc App
계속 엉뚱한 소리하니 내 말이 전달이 잘 안됐나 보다 내 잘못이크다 무의미한 논쟁 그만할께요 - dc App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이중적 죽음과 우리의 이중적 부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죄에 죽어야만하고, 새생명으로 부활해야하고, 고통과 죽음을 죄에 대한 형벌로서 우리가 육적으로 부활할 때까지 짊어져야한다.
<인간되심>이 <구원>이다. 여기서 2번의 사랑이 <인간되심>이고 1번의 사랑이 <구원>임. 나는 같은 언어라고 완전하게 동일어 취급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임. 사소한 차이가 존재하기에 저런 번역이 나온거고
아니 그것보다 중세 이태리어 할 줄 아냐 대단하네 - dc App
성악 전공해서 이태리어 대충 보는데 다른 유럽어들에 비해서 중세랑 현대어랑 차이 미미한게 이태리어임 - dc App
나라면 "사랑받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하기를 면해주지 않는 사랑이"라고 번역하겠음. "사랑받은 자는 누구나 사랑하게끔 만드는 사랑이"라고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좀 심한 의역 같고. 영어 번역 불어 번역 봐도 오역 맞아. 좋은 번역본이라도 오역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
휴 드디어 제대로 이해하시는 분이 왔군요.. 이거 이해하는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네.... - dc App
니가 이교적으로 해석하고있는거야. "사랑(구원)받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원죄)을 면해주지 않은 사랑(구원)" 이런 의미로 읽어야함. 지상에서의 사랑(원죄)과, 천상에서의 사랑(구원)은 다르다고. 이걸 완전히 동일하게 일치시키려는 니 해석이 비기독교적인 해석이라니까.
윈죄를 구원과 동일시하는 기독교적인 사상에 의해서 저런 이중적인 관계가 생기는 것임.
답답한 소리하네, 니말대로 따지면 영어권 독자들도 죄다 잘못이해하고 있는거다. 영어권 사람들은 '만물의 법칙에 따르면 사랑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거절하면 안된다.' 라고 이해하고 있고, 게이 소설인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게이들끼리 속삭이는 사랑을 속삭이며 나누는 장면에 인용되기도 했단다.
https://literature.stackexchange.com/questions/18466/what-did-aciman-mean-by-love-which-exempts-no-one-whos-loved-from-loving
니가 답답한데? 난 '만물의 법칙에 따르면 사랑(구원)받은 사람은 그 사랑(원죄)을 거절하면 안된다.' 라는 입장에 동의함. 그리고 그 해석이랑 동일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음.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렇기에 <구원>받는 것이다. <인간되심>이 <구원>이다. 니들이 오해하고 있는 지점은 이미 예전부터 이교적인 방식이라고 해서 문제가 지속적으로 되어왔던 부분임.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쌓아올린다는 견해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면 최민순 신부의 저 '어느 연인에게도 사랑을 허락하지 않은 사랑' 이라는 구절은 오역이 맞는거잖아, 너는 왜 나랑 같은 해석을 가지고 저게 오역이 아니고 올바른 번역이라고 생각하냐?
너희들 처럼 <지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천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완전하게 동일시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기독교적인 견해임. 왜? 단 하나의 진리가 여러 개 있다는 의미와 직결되거든.
머라는거냐? 그렇기에 오역이 아닌거지. 최민순은 그러한 오류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원죄)>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사용 안한 것임. <어느 연인에게도 사랑(구원)을 허락하지 않은 사랑(구원)> 다시 말해서 구원은 천상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를 정확히 함축하고 있음.
의견 잘 들었고, 비기독교 신자인 나는 단테 읽지 말아야 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원죄)>는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구원)> 이다. <인간되심>이 <구원>이다. 이러한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죄와 구원의 의미가 <정반대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반대되는 개념 속>에서 <하나의 일치된> 진리를 찾아내는 기독교적인 사상에 있기 때문임
어 읽지말고 괜히 헛소리하면서 글을 왜곡하고 다니지나 마라~
'사랑'이라는 단어가 대단하긴 한가보다, 진리도 하나고 신도 하나인데, 단어 주제에 두 가지 다른뜻이 있는걸 보면
다르게 보지만 연관되어 있다는 견해임. 즉 이원론이 아니라 불이원론임. 반대로, 이 둘을 <완전히> 동일시 해서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쌓아올리면 그것이 진리를 여러개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으로 귀결됨.
위에 성악 독붕이 말대로 이태리어는 중세와 현대 차이가 크지 않음. 몇 년 전에 유명한 이태리 교수 한 분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단테가 쓴 단어가 500개라면 400개는 현대 이태리인들이 무리없이 읽을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러게 '사랑받는 모든 자는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말같은데? 보통 외국어에 있는 이중부정이 문법상 의미와 실제로 사용하는 의미가 달라서 좀 아리송하네. 영어의 이중부정인 'I don't need no money.' 도 올바른 문법으로는 '나는 돈이 정말 필요해.' 라고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나 돈 좃도 필요없어.' 라는 의미로 쓰잖아
Love, that exempts no one loved from loving in return Love, that releases no beloved from loving Love, that exempts no beloved from loving in return. Love, which spares none of the loved from lovin
영역은 이렇다네
마지막 lovin' 힙하네요 - dc App
뭔 소리인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미국애들도 잘 모르나보다. 현대 영어로 해석하면 '사랑은 이끄는 힘이 있다.' 란다
https://www.italianpod101.com/blog/2021/03/04/italian-quotes/#:~:text=Amor%20ch%E2%80%99a%20nullo%20amato%20amar%20perdona.%20%28%E2%80%9CLove%20that,love%20has%20a%20powerful%20way%20of%20attracting%20love.
오역아님
김운찬 번역: 헛된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사랑
오역맞는거같은데?
118은좀아스퍼거같노
'아스퍼거'가 아니라 그냥 '아퍼' - dc App
오역이 아닌게 확실해졌네 <헛된 사랑(원죄)를 용납하지 않는 사랑. 최민순이랑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음.
멍청한 새끼는 걍 아가리 좀 닫고 있어라~
사랑은 상호적이라는게 요지인데 원죄니 뭐니 지랄좆빨고있노 니 구름이지?
빙신아ㅋㅋ김운찬도 <헛된>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이중적인 의미를 완벽하게 <나누면서> 강조하고 있는데, 눈깔 삐었냐? 넌 제발 아가리 좀 닫고 살아라.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가리 싸물라고 박테리아같은 새끼야ㅋㅋ
헛된 사랑이랑 사랑이랑 같냐? 띨빡한 놈아
지.잡대 구름아 자살하자
이새낀 진짜 병신이네 ㅋㅋ내가 사랑은 상호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존나 헛소리 오지게하냐? <윈죄>가 <구원>이다라고 위에 이미 4번은 말했다 등신아
구름이 누군데 븅아ㅋㅋ
제미나이프로 답변 결과는,
최민순: 완벽하게 오역. 번역자의 감상을 적어놓은 것 같다고 함. 논리적으로나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오역이라고 함. 김운찬(열린): 결과론적 의역. 내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시적으로 쓰려는 노력을 한거 같다고 평함. 박상진(민음사): 원문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재구성한 아주 잘된 번역. 약간의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셋중에서는 압도적으로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평함. 한형곤(서해): 책 이제 주문해서 아직 물어보지 못함.
번외로, 위에 오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사람들 댓글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아주 고차원적으로 해석하여 해석 자체보다 한단계 더 나아간 문학적 깊이가 엿보이지만 신곡 원문과 비교했을 때, 해당 번역이 오역임을 반박한다고 볼 수 없고, 그 해석 자체도 단테학에 비추어봤을 때 전혀 들어맞지 않은 해설이다'라고 평함. 비평은, 질문자체를 여러번 해서 받은 답변이라 내가 요약한거. 그래도 표현자체는 제미나이가 사용한거 대부분 재활용했음.
@12123(211.108) 사랑하는 누구에게도 사랑을 허용치 않던 사랑이(한형곤): 기술적으로 가장 나쁜 번역
해당 구절에 대한 번역이지 전체 번역에 대한 평은 아니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