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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소광희 40만원 글을 보고 글을 올린다.
재태크로 유익한 책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주로 문제가 되는 번역어를 비교해보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비전공자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미리 일러두고 시작하겠다.
나보고 머라고 하지마라 예전에 상처받았다.
그리고 이글을 읽은 뒤 판단은 자유다.
------------------------------------------------------------------------------------
[Vorhandenes& Zuhandenes]
vorhandenes와 zuhandenes는 각각 이기상교수는 눈-앞에-있음& 손-안에-있음, 소광희교수는 전재자&용재자라고 번역한 바가 있다.
솔직히 이기상교수의 번역의 특징은 순우리말의 일상어적 느낌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어 현상학의 최종적 목적이 더욱 드러나는데 의의가 있다.
이는 후기로 갈수록 '고향 상실 (Heimatlosigkeit)'의 개념이해에 중심에 있는 기술과 전향(Die Technik und die Kehre)에서의 Ge-stell(몰아세움, 닦달)의 개념이 주도적으로 다루어 지는데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기상씨가 조금더 좋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도구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손-안에-있음이 더 좋기도 하고....
{{현상학의 최종목적이라고 해서 두루뭉실하게 표현해서 고민스럽다. 사실 이것은 당대에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에 의해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한 배경을 알고 있어야한다. 후설은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를 "유럽학문의 위기"라 명명하며 이것을 타파하려고 물리세계와 생활세계를 구분했다. 이는 인간과 세계를 산술적 잣대로 다루는 당시 조류에 대항한 것이다. 삶의 세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다양한 의미"를 일깨우게 하기 위해서 "사태 자체로 돌아가라!"라며 현상학을 창시했다. 그래서 생활세계의 현상학라는 말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현상학적 환원의 개념이 나왔다.}}
[Sorge]
여기서는 할말이 딱히 없다.
소광희 교수의 연륜이 묻어나는 아주 멋 들어진 번역이 아닌가 싶다.
이기상교수는 Sorge를 염려라고 소광희교수는 마음씀이라고 번역했다.
나는 그 당시 경문사판을 읽으며 감탄했다
사실 하이데거는 정신, 의식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 지는 같은 심적 활동을 총칭하는데 Sorge를 사용한것으로 보아서 더욱 그렇다.
솔직히 첨언할것이 딱히? 없다.
[Dasein]
여기서는 신상희교수의 번역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 번역되는 현존재 Dasein라는 존재자는 세계-내-있음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현존재는 그곳 안에서 공속하며 삶을 지세운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를 에워싼 사물의 은폐된 존재방식을 드러나게 하며 도구성을 드러낸다.
그런면에서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탈은폐적 성격이다.
{{사실 하이데거의 진리론은 상당히 독특하다. 존재의 빛, 환한 밝힘, 일별, 알려옴, 개시성 혹은 개방성, 탈은폐, 비은폐, 은폐 등의 표현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산파의 비유의 비롯된다. 여기서 할 말은 많으나 생략한다.}}
Da는 의미는 그곳, 거기 라고 하는 것, 현존재의 탈은폐의 장인 세계로 이해해야한다.
상호공동존재인 현존재는 시공과 서로 주고 받으며 세계라는 존재의 탈은폐의 열린 장에 기거하는 존재자, 그런 열린 장에 내몰려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터-있음'이 현존재보다 조금더 좋다고 말하고 싶다.
{{사족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존재와 시간을 번역한다면 Dasein은 그리-있음이라고 번역하면 좋을 듯 한다.}}
[Entwurf]
이는 흔히 '기투'라고 알려져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소광희 교수의 최대 단점 중 하나가 일본식 번역투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투라는 용어가 그것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철학 용어를 이해하는데 최대의 장애인 줄임말로 간결하게 표현해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Entwurf는 이기상 교수의 '기획투사'라는 번역어가 더 좋다.
세계에 내던져진 현사실에 처한 우리는 이미 완료된 과거를 기반으로 기획하는 현재의 모습과 그것을 그 기획에 따른 가능성을 투영해 스스로를 이해하는 구조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유의미화시키고 더 나아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도 또한 쓰임에 맞춰 유의미화 시키고 도구성을 부여한다.
기투라는 짧은 단어는 뻗쳐있음의 구조 전체를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
솔직히 내가 두 번역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굳이? 소광희의 번역에 목을 메며 찾지 않아 봐도 될 듯하다.
모두 너무나 휼륭한 번역들이고 하이데거의 하이픈이 작렬하는 용어를 나름대로 잘 번역했다고 생각한다.
꼭 소광희 씨의 번역을 보고 싶다면 국회도서관이나 국내의 신학자출신 철학유튜버에게 구매하는 수밖에....
이기상씨의 독점판권으로 2046년 이후에나 볼수있을 듯, 그리고 만일 출판된다면 예상컨데 아카넷이 가능성이 높다.
박찬국-백종현 등 동료교수들이 많이 책을 내는 곳이니 말이다.
재간여부는 거의 시간문제다.
시장에 워낙 매물이 안나오는 것에 반비례해 찾는 사람이 많은 데다.
아에 국내 모 대학은 재본을 기다렸다는 듯 이미 pdf로 준비된 곳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여전히 정정히 잘 살아계시니 걱정말길 행여나 돌아가신다 해도 이미 돌아가신 임석진교수의 대논리학 재간을 보면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너는 새로 책이 나오면 구매하지 않을 거냐"라는 물음에는 yes라 답하기 어렵다.
다만 헌책방에서 조우한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과의 추억은 중학생 시절 게으른 나에게 시간을 쓸모있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것으로 부터 여정이 시작했다.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다.
병신 같이 사람을 부담스러워 하는 나 로서는 그 추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추후 재간된다면 나는 구매할 것이다.
아무튼 이정도로 마치고 나는 자러 가야겠다.
재태크로 유익한 책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주로 문제가 되는 번역어를 비교해보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비전공자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미리 일러두고 시작하겠다.
나보고 머라고 하지마라 예전에 상처받았다.
그리고 이글을 읽은 뒤 판단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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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handenes& Zuhandenes]
vorhandenes와 zuhandenes는 각각 이기상교수는 눈-앞에-있음& 손-안에-있음, 소광희교수는 전재자&용재자라고 번역한 바가 있다.
솔직히 이기상교수의 번역의 특징은 순우리말의 일상어적 느낌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어 현상학의 최종적 목적이 더욱 드러나는데 의의가 있다.
이는 후기로 갈수록 '고향 상실 (Heimatlosigkeit)'의 개념이해에 중심에 있는 기술과 전향(Die Technik und die Kehre)에서의 Ge-stell(몰아세움, 닦달)의 개념이 주도적으로 다루어 지는데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기상씨가 조금더 좋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도구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손-안에-있음이 더 좋기도 하고....
{{현상학의 최종목적이라고 해서 두루뭉실하게 표현해서 고민스럽다. 사실 이것은 당대에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에 의해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한 배경을 알고 있어야한다. 후설은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를 "유럽학문의 위기"라 명명하며 이것을 타파하려고 물리세계와 생활세계를 구분했다. 이는 인간과 세계를 산술적 잣대로 다루는 당시 조류에 대항한 것이다. 삶의 세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다양한 의미"를 일깨우게 하기 위해서 "사태 자체로 돌아가라!"라며 현상학을 창시했다. 그래서 생활세계의 현상학라는 말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현상학적 환원의 개념이 나왔다.}}
[Sorge]
여기서는 할말이 딱히 없다.
소광희 교수의 연륜이 묻어나는 아주 멋 들어진 번역이 아닌가 싶다.
이기상교수는 Sorge를 염려라고 소광희교수는 마음씀이라고 번역했다.
나는 그 당시 경문사판을 읽으며 감탄했다
사실 하이데거는 정신, 의식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 지는 같은 심적 활동을 총칭하는데 Sorge를 사용한것으로 보아서 더욱 그렇다.
솔직히 첨언할것이 딱히? 없다.
[Dasein]
여기서는 신상희교수의 번역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 번역되는 현존재 Dasein라는 존재자는 세계-내-있음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현존재는 그곳 안에서 공속하며 삶을 지세운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를 에워싼 사물의 은폐된 존재방식을 드러나게 하며 도구성을 드러낸다.
그런면에서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탈은폐적 성격이다.
{{사실 하이데거의 진리론은 상당히 독특하다. 존재의 빛, 환한 밝힘, 일별, 알려옴, 개시성 혹은 개방성, 탈은폐, 비은폐, 은폐 등의 표현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산파의 비유의 비롯된다. 여기서 할 말은 많으나 생략한다.}}
Da는 의미는 그곳, 거기 라고 하는 것, 현존재의 탈은폐의 장인 세계로 이해해야한다.
상호공동존재인 현존재는 시공과 서로 주고 받으며 세계라는 존재의 탈은폐의 열린 장에 기거하는 존재자, 그런 열린 장에 내몰려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터-있음'이 현존재보다 조금더 좋다고 말하고 싶다.
{{사족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존재와 시간을 번역한다면 Dasein은 그리-있음이라고 번역하면 좋을 듯 한다.}}
[Entwurf]
이는 흔히 '기투'라고 알려져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소광희 교수의 최대 단점 중 하나가 일본식 번역투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투라는 용어가 그것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철학 용어를 이해하는데 최대의 장애인 줄임말로 간결하게 표현해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Entwurf는 이기상 교수의 '기획투사'라는 번역어가 더 좋다.
세계에 내던져진 현사실에 처한 우리는 이미 완료된 과거를 기반으로 기획하는 현재의 모습과 그것을 그 기획에 따른 가능성을 투영해 스스로를 이해하는 구조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유의미화시키고 더 나아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도 또한 쓰임에 맞춰 유의미화 시키고 도구성을 부여한다.
기투라는 짧은 단어는 뻗쳐있음의 구조 전체를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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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가 두 번역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굳이? 소광희의 번역에 목을 메며 찾지 않아 봐도 될 듯하다.
모두 너무나 휼륭한 번역들이고 하이데거의 하이픈이 작렬하는 용어를 나름대로 잘 번역했다고 생각한다.
꼭 소광희 씨의 번역을 보고 싶다면 국회도서관이나 국내의 신학자출신 철학유튜버에게 구매하는 수밖에....
이기상씨의 독점판권으로 2046년 이후에나 볼수있을 듯, 그리고 만일 출판된다면 예상컨데 아카넷이 가능성이 높다.
박찬국-백종현 등 동료교수들이 많이 책을 내는 곳이니 말이다.
재간여부는 거의 시간문제다.
시장에 워낙 매물이 안나오는 것에 반비례해 찾는 사람이 많은 데다.
아에 국내 모 대학은 재본을 기다렸다는 듯 이미 pdf로 준비된 곳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여전히 정정히 잘 살아계시니 걱정말길 행여나 돌아가신다 해도 이미 돌아가신 임석진교수의 대논리학 재간을 보면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너는 새로 책이 나오면 구매하지 않을 거냐"라는 물음에는 yes라 답하기 어렵다.
다만 헌책방에서 조우한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과의 추억은 중학생 시절 게으른 나에게 시간을 쓸모있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것으로 부터 여정이 시작했다.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다.
병신 같이 사람을 부담스러워 하는 나 로서는 그 추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추후 재간된다면 나는 구매할 것이다.
아무튼 이정도로 마치고 나는 자러 가야겠다.
저는 이거 보면서 이기상이 꽤 좋다고 느껴지네요...
내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철학 전공자한테 존재와 시간 번역본으로 읽는다고 하니까 콧방귀 뀌던데? 그리고 그 책 붙잡기 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먼저 읽으라고 훈계 넣더라. 상대성 이론에 대한 비판도 겸용 설명하는 책이라고 하더라고. 근데 실상 난 지금 존재와 시간에 대해서 판단 중지하고 포기했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상대성이론은 하이데거의 시간 개념 중 세계시간만을 다룰 뿐입니다. 만일 철학이 정말 수리물리학에 대적하려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의 논쟁, 그리고 그 이후 베르그송의 "지속과 동시성"에서의 논증의 빈약함으로 충분히 보여준 거 같은데요.
예도 선생한테 물어보셈 ㅋ 님이 더 잘 알 것 같음? 예도가 더 잘 알 것 같음? 그 양반은 프라이부르크 박사과정 밟은 니체-하이데거 전공자임.
만일 진짜 이 책이 상대성이론에 대한 한 형태의 논변을 둔다고 생각하시면 존재와시간 67 이후부터 나오는 시간성 논변 중 "시간성과 통속적 시간 개념의 근원으로서의 시간 내부성" 에서 어디 부분에 상대성이론을 지적하는 파트가 있는지 알려주세요.
6장 이후 내용을 말하는 것 같네요. 삶의 시간과 통속적인 물리적 시간의 동일성을 다루는 내용이 그 추후에 나옵니다. 헤겔의 엔치클로페디 2부의 시공간론을 인용하며 전개되지요. 사실 그 곳이 존재와 시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니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설명해보라며 따지며 골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음... 님이 틀린 거임. 예도 유투브 댓글 창에 써갈겨서 물어 보셈. 그때 가서도 아니라하면 내 인정함. 하이데거와 동문인 전공자한테는 깝치진 마셈..
일단 상대성 이론을 진짜로 염두해 둔것인지는 확실치 못함은 인정하겠으나, 이것이 상대성 이론에 대한 비판을 겸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철학자의 오만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네, 하이데거도 또한 오만하다고 말해야겠습니다. 물리학에 있는 근본 전제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겠으나 이것으로 비판을 꾀한다는 것은 크랙팟이나 다를 바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를 의문시한 뒤 나온 결과가 얼마나 원시적으로 세계를 오해할지에 대해서도 우려합니다. 헤겔 같은 사람이 행성궤도론이란 크랙팟을 만든 이유가 정확히 이 접근에서부터 나오기도 했고요.
저도 불안한 책님의 철학적 내공의 깊이가 얕은 것도 인정하겠으나 비판을 겸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하여 철학자의 오만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 좀 해주셔요... 그리고 대관절 제 눈엔 타당한 논거들도 제시하지 않고 타자들에게 오만하다라는 옷을 씌우는 님이 더 오만하게 보여요.
http://www.aistudy.com/paper/culture/time_soh.htm#_bookmark_32aee38
이
글이 두분의 논쟁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것은 사실 언어로 설명하기가 많이 어려우나,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이데거가 헤겔의 시공간론으로 수리물리학적 상대성이론을 비판했다는 논지는 스티븐 호킹이나, 그보다 훨씬 더 강했던 과학만능주의가 철학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물리학이 ex nihilo 문제를 풀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에드가 앨런 포가 아무리 중요한 시인이든간에, "유레카"는 전혀 물리학자에게 그 어떠한 결실과 통찰도 줄 수 없습니다.
물리학 전공자인데 물리를 철학으로 비판한다? 이쪽에서는 헛소리임
저도 이과생이지만 소칼의 지적사기는 철학계가 유념해야하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아직까지 하이데거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판했다는 것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비전공자라 상대적으로 고급정보를 입수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비판이 사실이라면 앞서 말했듯 산술적으로 판단하는 통속적 시간을 실존적인 본래적인 시간을 염두에 두고 비판하는 논조인 듯 합니다.
그리고 만일 절대적 시간관에 대한 논조라면 이미 칸트 때부터 거의 종결된 문제입니다. 칸트는 시공간을 절대적 물리계로 인식하지 않고 이것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보았습니다. 후설은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에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의견을 아우구스티누스도 내면의 작용으로 신플라톤주의 또한 마찬가지로 절대적 시간관이라는 의견은 철학계에서 이미 오래전 사장됐습니다.
만일 비판한다면 전자의 지극히 현상학자인 하이데거의 현대 과학의 산술성 비판이 되겠는데 이는 별로 논쟁거리가 될수 없습니다.
본인도 아는 바 없으면서 괜히 다른 선생님 끌여들여서 비아냥대고 " ㅋ 박사님보다 님이 더 잘앎?" ㅇㅈㄹ은 왜하시는건지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 나도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니까 아도르노 동문이니 하이데거 비판하면 동격임? 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무튼 간에 글 작성자는 철학 좀 하나 보네.... 여적 여기 있으면서 이런 사람 못 봤는데 ㄷ 굳굳 멋있네.
이런말 하면 안되는데 애국가 4절이 생각나는 존함이네요. "이기상과 이 맘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