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생각 이상으로 인상 깊었던 단편집이다. 환상문학이라는 것이 어때야 하는지, 어떻게 현실적인 소재조차도 환상적으로 다뤄야하는지를 느낄 수 있고, 의미심장한 불안과 약간의 애수가 계속해서 가슴 언저리를 간지럽힌다. 사실,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 만화>를 읽을 때에는 이 정도로까지 흥미롭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흥미의 차이가 오 헨리스러운 부분에서 났다고 생각하면, 내가 느끼는 문학성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대해 잠시 망설여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분명 그게 이 단편집의 주요 매력이 아닌 것은 분명하면서도. <60개의 이야기>는 (매번 언급할 때마다 슬슬 질리겠거니 싶지만) 보다 더 환상적인 방식으로 카프카의 매력을 연상시킨다.
많은 단편들이 의미심장한 기다림과 불안을 다룬다. 무엇이 자신에게로 닥쳐오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주변의 모두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천천히, 빠져들듯 자신의 원래의 감정에서 끌려나온다. 이따금 주인공들은 그 불안의 원천과 마주치기도 한다. 어떨 때는 그것은 골계적이고, 어떨 때는 반어적이며, 어떨 때는 더욱 더 절망적이다. 이 아이러니는 세계 자체의 아이러니한 잔혹함을 드러내는 것 같다. 우리가 눈앞에 두고 있는 역경이 정말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를 부딪혀 보지 않고선 결코 알 수 없음을,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 우리는 회복될 수 없음을......
동시에 <60개>에는 상당히 기독교적인 모티브들이 자주 등장한다. 거대한 천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구, 심판의 날처럼 느껴지는 순간 고해성사를 하고자 달려드는 사람들, 원죄를 저지르지 않은 외계인 앞에서의 수치 등등. 이 모티브들은 근본으로서 자리잡고 있지만, 이것들이 펼쳐지는 방식은 가끔 보기 힘들 정도로 날카롭게 표현되기도 한다. 어떻게 집단이 잔혹해질 수 있고, 그 잔혹함이 어떻게 그들을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가? 이 살아 숨쉬는 악, 우리 주변에서 늘 침범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와 접속되는 악은 너무나 평범해 우리의 주의심을 자극하지도 않다가, 너무나 급격하게 파고들며 죽기 일보 직전의 끔찍한 불안을 가져다준다.
아마 조만간 동 저자의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어볼 것 같다. (쿳시가 이 책을 추천했다는 걸 듣고서도 게으름으로 멀리하던 책이긴 하지만......) 또한 다른 이태리 환상문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탈로 칼비노, 디노 부차티, 그리고 또, 톰마시 란돌피? 마지막 이름은 애석하게도 한국 번역본은 없는 것 같지만, 혹시 또 알까. 굳이 따지자면, 예전에 읽은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집에서 이 <60개>의 단편들 중 감성이 맞는 것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쪽도 번역이 나온다고 들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무래도 중단된 것인지 소식이 없어서 참 아쉬운 작가다.
P. S. 단편 간의 편차가 조금 심한 편이다. 좋은 건 정말 좋지만 어떤 건...... (그래도 후자가 별로 없긴 하다)
리디아 데이비스 단편 딱 한편 번역되긴 했는데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8341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