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우리의 인식을 두 층위로 나눴다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지성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플라톤이 세운 학교가 아카데미다.
이 학교에서 나중에 플라톤 학설을 완전히
부정한다.
개별적인 인간이  인식하는 사물은 의견일 뿐이다
인간은 결코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물의 성질은
한계가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감각 범위를
초과하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나?
연역적 추론은 가정을 토대로 하여 신뢰할 수 없고
귀납적 추론은 사적 경험의 총합에 불구하다.
인간은 경험에 의해서 사물의 본질 파악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진리는 큰 집단의 신념의 강요다.
이 진리는 사회적, 인습적 강요의 소산이다
이게 아카데미학파의 견해이다.

데카르트 역시 감각을 통한 진리는 자명한 진리가 아니라고
거부하고 이성을 통한 진리가 명증한 진리하고 주장했다.
이에 흄은 그 수학적 진리까지 경험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회의론을 폈다.

칸트는 흄을 반박하기 위해서 또 다시 이원론을 펼친다
우리가 세계의 객관적인 모습을 알 수 없다
우리는 감각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각 개인의 감각적 경험에 불과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본질이 아니라 현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경험이 제각각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보편타당하다
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식능력이 존재한다.
수학적 인식은 다른 사람들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모두가 인정한다.  
결국 칸트는 본질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인간에게 보편타당한 인식능력이 있음을 보임
으로써 회의론을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칸트의 해결책이 성공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