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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독갤 투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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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s to pass.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길 비는게 아니라


It's about learning how to dance in the rain.

폭우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Vivian Greene 비비안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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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옛적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일명 DFW라고 불리는 사내가 살았다.


1962년에 뉴욕 이타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둘다 수석졸업이라는 이야기가 있음) 졸업논문으로 쓴 <시스템의 빗자루>라는 장편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1996년,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작이라 불리우는 <Infinite Jest(이하 무한한 재미)>를 출간하며 단숨에 주목을 받는다. 1,000페이지가 넘어가서 흉기로 사용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메가소설이라는 점에서 벌써 짐작할 수 있듯이, 미친듯한 TMI와 맥시멀리즘으로 리뷰란에 눈을 뒤집고 찬양하는 사람들과 게거품물고 까내리는 사람들 두 부류만이 존재하는 굉장히 신기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할 이야기는 바로 이 <무한한 재미>에 관한 것이다.


<무한한 재미>는 DFW의 인생의 역작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원히트 원더라는 뜻에서 그런게 아니라(참고로 DFW는 소설보다 그 특유의 익살 넘치는 에세이가 더 유명하다) 책에서 나타나는 여러 테마가 모두 그의 인생과 아주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10대를 함께했던 테니스, 그리고 2008년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평생에 걸쳐 그를 괴롭혔던 우울증, 마약, 섹스, 중독, 가족관계 등 모든 요소들이 이 소설 안에 밀접하게 담겨있다. 이런게 바로 '인생소설'이 아닐지.

악명높은 번역 난이도로 유명한데다 당연히 출간된 번역본도 없지만 <무한한 재미>를 읽게 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DFW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

(알마출판사에서 준비중이라고 듣긴 했지만 완독 후기를 여기 짧게 말하자면 미안하지만 애타게 무한꿀잼을 기다리는 독서갤러리 유저들은 올해도 포기하는게 좋을 것 같다. 박상륭의 칠조어론을 달시파켓이 영어로 번역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느낄 절망감이 어떨지 짐작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그냥 잊고 살아라..)



2.


작품의 배경은 디스토피아적인 현대 미국(비슷한)의 대체현실으로, 주인공은 크게 네명이며 각각의 스토리가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듯 하나, 중간중간 접점이 있는 등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해럴드 인칸덴자]

인칸덴자 삼형제 중 막내로, 둘째형 마리오와 함께 엔필드 테니스 아카데미(ETA)에서 지내고 있다. 미식축구 프로선수로 이미 데뷔한 맏형 오린과는 가끔 연락하는 사이.

작중 진행 시점에서 아버지인 제임스 인칸덴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이며(오븐에 머리를 쳐박고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자살함), 아버지의 취미였던 영화제작이(정확히 말하면 그의 유작 중 하나였던 "무한한 재미"가) 의도치 않았던 방식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도널드 "돈" 게이틀리]

알코올 중독자의 아들로 태어난 돈은 스포츠 유망주였으나 어느 막장인생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술과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지옥 입갤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화려한 유망주에서 길거리 강도로 전락해버린 그는 어느날 평범하게 '작업'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결국은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레미 마라트 & 휴 스티플리]

레미 마라트는 캐나다 퀘벡 분리주의을 표방하는 테러집단 AFR(휠체어 탄 앰살자들)의 일원이며 휴 스티플리는 OUS(대충 미국 CIA, DEA, 비밀임무국 등을 섞어놓은 가상의 집단) 언더커버 요원이다.

둘은 미국 내 최근에 발생한 기묘한 사건에 이끌려 영화 비디오테이프 원본 하나를 찾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그 비디오테이프를 본 사람은 영화가 너무 재밌는 나머지 죽을때까지 화면만 쳐다 보게 된다고 한다. 마라트는 분리주의 운동을 위해 해당 테이프로 전 국토 내 광범위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원본을 뒤쫒는 중이며, 스티플리는 마라트와 일시적으로 협력하지만 테러방지를 위해 선제적으로 테이프를 확보하려고 한다.



3.


<무한한 재미>는 중독, 오락, 삶의 의미 찾기 등 메가소설 답게 여러 방면에서 광범위한 테마를 담고 있다. 작품 핵심 테마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1. 중독, 정신질환 및 자살

2. 삶에 있어서 오락, 유흥의 가치

3. 재능과 명성



1.

암울하게도 이 소설은 중독이 개인과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정말로.. 실감나게 묘사한다. 특히 작중에 잠깐씩 나오는 "익명의 마약 중독자들(실제로 존재하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모임을 차용한듯)"모임에서 각자 참여한 사람들이 마약과 중독이 자신에게, 자신의 삶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담담하게 혹은 격렬하게 고백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소설 내 최고 장면들로 꼽을만큼 감동적이고 우울하고, 동시에 마음을 착잡하게하는 등 인간의 마음을 깊게 파고드는 묘사 장면들이 많다.

DFW가 말년에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심하게 고생했는데, 실제 경험담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묘사가 디테일하고 감동적이다.


작중 주인공들인 해럴드와 도널드 같은 등장인물들은 소설 내내 중독과 씨름하고(해럴드는 학생임에도 마약과 마리화나에 중독되어 있고 도널드는 마약을 끊었지만 담배든 술이든 이전에 중독자였던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 끊었던 것을 유지하기 위해 힘겹게 고군분투중이다.), 동시에 소설은 그들의 경험을 도구로 삼아 마약과 알코올, "중독"의 파괴적인 힘을 강조한다.


작중 "중독"과 중요하게 연계되는 테마는 다름아닌 중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정신 질환과 자살"인데, 이것 또한 개인과 그들의 주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이 역시 안타깝게도.. DFW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우울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어두우며 무거운 주제에 대한 심도깊은 묘사를 통해, 이 소설은 중독의 결과(정신질환)와 그에 굴복한 사람들, 혹은 반대로 벗어나고자 도움을 구하는 것(+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깊게 생각할 만 한 거리를 제공해준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데 오래 걸렸던 이유 중 하나는 원서인 것, 또 단어들이 어렵고 소설 구조가 매우 복잡한 등 여러 요소들이 있었지만 이런 정말 Deep한 주제들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던 것도 한 몫 했다. 잠시 책을 덮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삶과 죽음의 의미 등 홀로 외롭게 생각하게끔 하는 장면들이 정말 많았다.


2.

<무한한 재미>의 두번째 핵심 테마는 바로 Entertainment다. 소설은 오락, 혹은 유흥과 이것이 개인과 사회 전반(특히 산업쪽으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봄과 동시에, 마라트와 스티플리 같은 등장인물들의 작중 묘사를 통해(둘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산에서 함께 도시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장면인데, 다른 요소들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둘만의 대화형식으로 서술되어 몰입감이 좋다.) 우리의 삶에서 오락의 역할과 그것이 우리의 가치와 믿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제시한다.

해럴드의 아버지인 제임스가 제작한 영화 "무한꿀잼"은 이런 오락의 위험성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로 작용하며, 소설이 유흥"중독"을 묘사하는 방식 또한 현대사회의 휘발성 높고 점점 템포가 가속화되는 스낵컬쳐 등 여러 오락 컨텐츠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소설이 1996년에 발표되었음을 감안할 때, 개인적으로는 정말 대단한 선견지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으로 대표되는 활자, 능동적이고 호흡이 긴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끔 느끼겠지만 현대사회를 이미 잠식하다시피 한 유튜브와 짧은 동영상으로 대표되는 스낵컨텐츠, 엄청나게 휘발성 강하고 공장 방식으로 찍어내는 웹툰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런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3.

세 번째 테마는 바로 "재능과 명성"이다. 이 소설은 엔필드 테니스 아카데미(ETA)의 학생들, 혹은 축구 유망주였던 도널드 게이틀리를 통해 재능과 명성, 그리고 창의성 사이의 관계와 이러한 요소들이 작중 등장인물들의 성장과 몰락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ETA의 학생들은 주니어 시니어 포함하여 기껏해야 18살이 채 안된 모두 어린 소년 소녀들이며, 이 소설은 이들을 통해 이미 너무 사회에 발을 빨리 들여버린 어린아이들의 비정상적인 조숙함과, 젊은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압박감과 시선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인들, 특히 사교육이 정점에 이르렀던 소위 말하는 90년대생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깊이 공감가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인 성공이 중요해서 우리는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살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런 주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소설은 재능과 명성, 사회적 성공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묘사하며 성공을 달성하는 데 있어 인내와 노력의 중요성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즉각적인 성공과 명성에 너무 많은 기대를 주고 사회적인 압박을 가하는 현대사회의 위험성을 동시에 제시한다.



4.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무한한 재미>는 중독과 오락, 우울증 등 광범위하고 무거운 주제를 탐구하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소설이다. 심각하게 얽히고 설킨 플롯 구조와 수십, 수백명의 등장인물 및 여러 화자를 통해,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오락에 대한 집착과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깊은 논쟁거리를 제공하며, 동시에 "중독"의 위험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를 제시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삶의 의미를 찾는 것 등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많았고, 실제로 나 또한 그러했다.

개인적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들, 중독과 회복(아이러니하게도 등장인물들을 중독이라는 지옥에 빠트리는 것은 인간이지만, 중독에서 꺼내 구원하는 것 또한 같은 인간이다.), 인간 관계, 정신 질환 등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심도깊은 묘사를 통해 이야기에 깊이와 풍부함을 더하고 동시에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훌륭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첫 페이지를 펼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인간의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해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는 어떻게 보면 사회고발적인 소설로(그 피해자 중 한명이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작가라는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DFW는 그가 떠난 후에도 개인주의가 잠식해버린 현대사회에서 독자들이 잠시 책을 덮고 우리 주변의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에게 안식이 있기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서로 보듬어야 한다 등 교훈적이거나 원론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다만 나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을 때, 적어도 아직 그런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모두들 느끼고 있겠지만 현대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혐오의 시대다. 서로 이분법으로 가르고 싸우고 헐뜯으며 거기서 느끼는 말초적인 쾌감을 얻는데 하루하루치의 도파민을 충족해나가는.. 나 역시 인정한다. 세상 그 어느것보다 싸움구경이 재밌고, 어떤 커뮤니티를 들어가든 정신나간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을 단체로 욕하고 돌을 던지며 병신 취급하는 것의 대한 쾌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 또한 -오락 중독- 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