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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스토옙스키 왈, <모든 것을 포용하는 포용성>의 작가인 푸시킨은,
기존 러시아 문학 사조를 계승하면서도, 기존 사조에 반발로써 새로운 문학 세계를 전개하려 했다.
푸시킨 작품속에 나타나는 수많은 전시대의 작품들은 한편으론 그의 존중을 통해 계승되어 내려오는 동시에,
또 한편으론 작품속에서 조롱과 비판을 받으며 새로운 장르의 반환점이 된다.
고전주의 아래 푸시킨은 그 정형성을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그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며,
낭만주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면서도 진부하고 방만한 그 태도에 대해 반감을 보인다.
좋든 나쁘든, 흘러간 작품들은 푸시킨에게 일종의 디딤돌이 되었고,
푸시킨은 자신이 이어받은 모든 사조를 펜 아래 승화시켰다.
결과적으로 푸시킨이 전개한 작품 세계는 '이전 문학들의 총체적인 계승'인 동시에
그에 반발하는 '별개로 재구성된 독자적 세계'인 것이다.
이것이 푸시킨 문학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수성'이다.
2.
이와 동시에 푸시킨을 축약하는 용어는 바로 양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그려진 세계나 작품의 주제의식은 물론이고,
푸시킨 자신조차 양가성 아래에서 위에서 말한 '포용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로 푸시킨의 세계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는 요소다.
일단 첫 번째로 러시아와 외래 국가 사이의 양가성이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작품 사조적인 이야기도 포함한다.
먼저 푸시킨 자신부터 외조부가 아프리카 흑인 출신이기 때문에,
또 그러면서도 황제의 가호를 받아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저명한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푸시킨은 서구권/동구권의 다양한 문화를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러시아 귀족이라는 자신의 출신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러시아의 존립성와 외래 세계의 포용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러시아는 동구권과 서구권 사이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국가이다.
이러한 두 문화 사이에 걸쳐있는 양가적인 정체성이 푸시킨 작품 세계에서는 곧잘 나타난다.
3.
위 두 단락에서 언급한 총체성을 바탕으로, 푸시킨은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세계를 비추기 시작한다.
걸쳐진 세계를 보는 그의 언어에는 존중과 비판이 동시에 담겨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캅카스인, 체첸인, 타타르인, 카자크 등등은
자유롭고 목가적인 생활을 향유하는 동시에 야만적인 약탈을 일삼는 이들이다.
어디까지나 외래로 나타나는 그들은 러시아에게는 재앙의 존재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들의 세계 속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고,
사랑과 슬픔도 즐기는 인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외래족인 아닌 러시아 내부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뻬쩨르부르끄는 청동기마상의 가호 아래 세워진 찬란한 도시이지만,
도시의 지리적 특성에서 기인한 잦은 홍수로 사람들의 생활과 일상은 손쉽게 파괴되기도 한다.
이렇듯 푸시킨은 세계를 무언가 한 가지 관점에서 칭송하거나 비난하기보단,
(물론 일방적인 칭송과 비난도 있다. 특히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동시대 문인들은 어느 작품에서나 숨도 쉬지 않고 조롱한다.)
세계의 좋은 일과 나쁜 일, 희극과 비극, 사랑과 죽음, 멍청함과 순수함, 난폭함과 진실함 등
어느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양가적 대비들을 포용하고 있다.
4.
또 하나, 푸시킨의 작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사랑'이다.
주로 20대 시절을 흥청망청 보낸 인물이, '사랑이란 참 멍청한 거란다.' 하는 식으로 회한을 담아 언급하고,
또 불꽃의 심상을 자주 활용하여 달콤하고 정열적인 동시에 파멸적인 것으로 자주 표현된다.
그렇다고 사랑이 항상 멍청하게 비하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회상하는 시점에서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 추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항상 지나치게 빠른 끝이 있고,
인물들은 그 끝을 벗어나와 이미 회한의 시점에서 사랑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푸시킨은 이러한 사랑의 아이러니를 자주 그려내었다.
다소 질릴 정도로 언급해서 대체 첫 사랑을 어떻게 겪은 건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뒤에는 항상 비극이 따라온다.
인물들은 사랑으로 인해 비극을 겪는데, 이것은 모든 이들에게 나타난다.
그 아무리 잔혹하고 간악한 인물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별 수가 없다.
사랑과 비극이라는 요소가 나타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연의 양가성이다.
푸시킨 작품을 보면(비중이 없는 민중들은 제외하고)
대개 한 가지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인물은 드물다.
어떤 군주는 간악한 배신자로 그려지고, 책모를 위해 사랑조차 배신한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후회하고, 사랑한 이에게 죄책감을 갖고,
스스로에 대하여 깊은 모멸감에 빠지기도 한다.
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은,
사실은 모두 죽음과 비극에 의해 상처받았던 이들이고,
그들은 어찌 보면 그것들을 외면하며 자유로울 수 있기도 하다.
왕위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힌 어떤 이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만,
그 죄는 이미 피할 길이 없다.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조차.
그에 반목하는 젊은이는 거짓부렁으로 된 존재나 다름없고,
사랑 앞에서 모든 걸 고백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푸시킨 손에 태어난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적인 감정이 나타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비참한 회한이다.
그들은 자신이 머물렀던 그 안락한 정과 사랑을 떠올리며,
또는 자신이 그를 배반하여 저지른 모든 죄를 떠올리며, 회한에 젖는다.
과거의 그들은 늘 현재의 자신을 불러오고, 그런 현재에겐 늘 비극이 뒤따른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 누구라고 하든지, 그들은 사랑과 비극 사이에 걸쳐있다.
5.
결국 도선생이 말했던 <모든 것을 포용하는 포용성>은 정말로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한 가지로만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포용'.
한 지점마다 존재하는 복합적인 면들을 비추어내는, 그 포용성의 총체가 바로 푸시킨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이 매듭짓고, 푸시킨으로부터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은 1837년 결투에서 총을 맞아 쓰러졌고, 이틀 후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는데, 아마 이것이 그에겐 끝일 터였다.
그의 묘비명은 생전 그가 썼던 시와는 다르게 지어졌다.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낼까. 잘 모르겠으니까 아무렇게나 끝내도록 하자.
고(故)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이야기의 끝.
.
23. 01. 06. ~ 23. 01. 30.
예브게니 오네긴을 제외한 글 모두 석영중 교수님의 역본으로 읽음
서사시는 솔직히 번역을 거친 이상 빛바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음
문체는 개인적으로 좋았음
희곡의 경우에는 눈에 띄는 오역이 있었음
많은 부분 석영중 교수님 해설을 참고하였음
보리스 가두노프 스페이드 여왕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잘 읽었어요 감사해용
ㄱㅅ
대딸은 ㅇ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