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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쓴다는 건 무엇인가 정리 ⅱ.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정리 ⅰ.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정리 ⅱ.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정리 ⅲ.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ⅰ.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ⅱ.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ⅲ.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정리 ⅳ.
19세기, 부르주아지는 승리했다.
그리고 문학은 멸망했다.
기존에 부르주아지의 권력 장악을 본의 아니게 도왔던 문학은,
부르주아지의 승리가 확정되자 글의 거의 유일한 주제가 사라지고 말았다.
기존에 양가적 입장에서 문학의 고유성과 부르주아지 사이에 놓여있던 문학의 조화가,
실현을 통해 깨져버린 것이었다.
문학은 단순히 형식적인 놀이로 변했고 무언가를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작가 역시 이미 특권적 지위를 상실했다.
당연하지만 양가적 입장에서 활동하던 작가가 부르주아지가 귀족 계층에 흡수되며
존립할 공간을 상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기존에 숨결을 불어넣은 비판 정신을 되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의 독자로 군림하게 된 부르주아지가 그것을 거부했다.
결국 작가들은 부르주아라는 계급 아래 갇혀있게 된 꼴이 되었다.
계급의 승리는 곧 그들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여버린 것과 같았다.
특히 부르주아의 선악관은 작가들의 선악관과는 정반대였다.
부르주아는 이 세계가 하나의 관념 체계(그러니까, 자연물을 인간 사고로 전환한 모든 가상의 법칙, 규칙, 질서, 가치, 등등)로 환원될 수 있다고 확신했고,
결과적으로 노력, 고통, 결핍, 억압, 전쟁 등 모든 것을 관념으로 용해시켜 버린다.
그래서 세계에는 악(여기서 악(원문: MAL)은 일종의 존재론적 비유로, 우연히 부조리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근원적 잉태를 뜻함,
그러니까, 실존주의가 말하는 '인간은 그냥 있음'이란 전제라고 보면 될듯?) 대신 다원성이 있을 뿐이었고,
어떤 관념이 있으면 그것을 체계 속으로 통합시켜야 했다.
모든 것은 관념과 정신끼리 맞물렸고,
인간의 진보란 곧 거대한 동화작용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작가의 예술관에서, 관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미는 관념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술가는 하나의 체계에 동화되지 않는 소재를 필요로 한다.
작가의 세계에서 사막이나 처녀림 등이 정신과 맞물리기 위해서는 관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닌,
실존의 무한정한 자발적 전개를 통해 존재를 존재로 밝히는 것,
불투명성과 대립적 요인을 내포한 존재를 밝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1장에서 언어의 감각/물질성에 대해서 사르트르가 이야기했듯,
그리고 인식론을 짚을 때 여러번 사르트르가 강조했듯,
작가의 언어란 곧 실체를 쌓는 것. 실체를 관통하는 것.
또한 존재는 상호간 사고의 재구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존재하는 것.
쉽게 말해 부르주아가 관념적인 법과 질서, 사회, 경제 등으로 모든 본질을 해석했다면
사르트르가 말하는 작가란 인식에 의한 물성의 재구성으로 세계의 본질을 해석하였음)
그렇기에 작가의 악은 무언가 사고로 환원되는 일시적인 관념이 아니라,
그냥, 물질처럼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 시대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물의 오랜 소유가, 그것들의 가치가 지배력과 지배권의 근거라고 생각했다.
또 그들은 인간이란 (관념적인) 사회적 결합의 변치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모두 비슷하고,
또한 어떤 지위의 인간이건 저마다 '인간성'을 지니기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분석에 의해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르주아의 분석에 따르면, 각각의 노동자는 개별적인 인간들이 서로 동일한 인간성을 지니면서 서로 고립하고 있었고,
그들에겐 내적 연대성이 아니라 유사성이라는 외적 연관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필자가 잘 이해를 못해서 정확하지 않음; 혹시 잘 이해하신 분 있으면 정확하게 알려주셈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은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사태에 불과해서, 그런 것이 사회적 원자의 영구적인 성격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각각의 노동자가 일시적 성원을 이루는 종합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는 것은 다만 개별적인 무산자(無産者)들뿐이었다.
그런 무산자들이 동일한 인간성을 지니면서 서로 고립하고 있고, 그들을 이어주는 연줄이 있다면,
그것은 내적 연대성이 아니라, 유사성이라는 외적 연관뿐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결국 부르주아는 개인들 간에는 심리적인 관계만 있을 따름이라 생각했고,
의식, 규율, 예절에 의해 행동했으며, 남들은 한낱 꼭두각시로 보였다.
그들은 감정이나 성격에 대해 어떤 지식을 가추려 한다 해도, 그것이 모두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관한 것처럼만 느꼈다.
가난한 부르주아의 지침서는 '벼락부자 되는 법'이었고, 부자의 지침서는 '사람을 다스리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작가를 전문가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 질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보단, 인간 심정, 즉 심리학에 대해서 더 알려주길 바랐다.
그러니까 남을 유혹하고 지배하는 일종의 자기개발서를 작가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자유가 없었다. 그저 사회의 영구적 관계에서 남 위에 서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생각할 뿐이었다.
작가들은 결국 기존의 자유에 대한 호소로 작품을 쓴 것이 아닌,
심리적 법칙과 그 법칙에 지배되는 독자를 위해 작품을 제시하게 되었다.
반면에 훌륭한 작가들은 이러한 작품 세계를 거부했고, 이 거부가 문학을 살려냈으나,
이것이 그후 50년의 문학 특징을 결정하고 말았다.
결국 19세기 중순부터 20세기 초 전까지, 이 법칙은 작가가 모든 독자에 거역해서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갈등은 전레없는 현상이었다.
18세기까지는 작가가 현실적인 두 종류의 독자를 갖고 있었고,
자기 뜻대로 한쪽에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50년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와, 문학의 요청 사이에 발생한 모순은 숨길 길이 없었다.
같은 무렵 무상 의무 교육의 실천으로 잠재적 독자들이 사회 심층에서 형성되며,
작가는 그들이 자기들의 현실을 밝혀주기 기다리고 있었다.
민중이라 이름붙인 이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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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다음에
부르주아 부분 너무 어려운데;
다시 읽어봐야겠읍니다
얼마 안 남았는데 남은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오래 걸릴 듯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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