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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편의 글이 실린 선집이다. 다양한 대표작들을 모았을 터이고, 덕분에 실린 글들의 연도도 초창기부터 말년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초창기의 글들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 정도일까. 타락하고자, 혹은 쓰러지고자 하는 이야기들. 맥아리 없이 살아가며 모든 기성적인 것에서 반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진심을 다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부족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이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라고 느끼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게 더 옳을 테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정.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남자를 탐하지만 육체적인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의 육신에 대한 탐닉.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타락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딘가로 쏠리고 싶어하는, 제도적으로 권하는 전장에서의 자살보다는 좀 더 추하게 보일 만한 방식으로. 어떤 단편에서는 그 여체에 대한 내심의 혐오가 자연으로의 동경 및 애수와 섞이기도 한다. 여체와 동일하게 무심하고 욕정을 불러일으키며 결코 변하지 않을 거대한 것.


어쩌면 독문학과 마찬가지 상징을 생각하며 이 글들 속의 '삶'과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구로타니 마을>에서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의 글들 속의 여성들은 어찌나 불길한 고깃덩어리가 되는지! 그는 그저 이 꿈틀대는 육체의 생동감 속에 빠져 파괴되고 싶을 뿐일지도 모른다. 저 불타오르는 무기력한 일본의 거리들 속에서, 거기에 충격 받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멍한 시선을 허공에 던지며 누구와 마주치는 순간 실언증에 걸린 채.


뒤로 갈수록 더 매력적인 글들이 나온다. 이미 유명한 <활짝 핀 벚나무 숲 아래>, <간장 선생> 등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는 <장난감 상자>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소설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아 소설과 에세이가 뒤엉키는 것이 약간은 꼴사납다고 생각했지만, <장난감 상자>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두 형식이 잘 어우러진다. 자신의 일상을 문학적으로 부풀리되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늘 남겨두어야 할 작가가 어느새 그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글 속의 자신을 현실의 자신으로부터 멀리 보내버리다 그의 문학 속에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 사이의 간극을 좁히던 작가의 부인이 어떻게 그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렸고, 그가 몰락하며 부인 역시 너무나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나를 슬퍼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심금을 울린다. 예전에 본 웹툰 중 <미쳐 날뛰는 생활툰>이라는 만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사소설에 통용될 비판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묘사하는 심리 자체도 점차 뒤로 갈수록 흥미롭고도 매력적이게 되는데, <푸른 도깨비의 훈도시를 빠는 여인> 같은 글에서 드러내는 서슬 퍼럴 정도로 무미건조한 마음이란. 처음 읽을 때에는 이것이 무언가를 꾸며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한 연기로 생각하기에는 그 저변에 의미심장한 공백이 있다. 연기를 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그것이 연기처럼 보일지라도 단지 본능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어째서 그것이 다자이의 죽음 이후에 그에 대해 쓴 글에서도 재차 드러나는지는 참 모를 일이다. 비록 다자이의 글을 좋아하지 않고, 그의 비판이 어떤 면에서 참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보아도 참 잔인한 글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선집에 기담이라고 할 만한 글은 거의 없다는 점일까. 안고가 묘사하는 심리의 섬뜩함은 기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말과 쉼표 속에서 담아내기 가장 좋은 감정이 그 불안과 공포일 테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대신 뒤늦게 감동을 주는 추리 소설(<암호>)이 있다. 안고의 추리 소설 <불연속 살인사건>을 일전 추천 받은 적이 있어 거기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