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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 허먼 멜빌 / 작가정신
info : 문학 / 728p
reading period : 23.1.26~29
rating : 4.5 / 5.0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 해두자' -31p

모비딕은 항상 내가 꼭 다시 읽고 싶은 소설이었다. 아주 어릴때 요약본으로 읽고 언젠가는 반드시 완역본을 읽겠다고 다짐했었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쉽사리 도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에 독감에 걸리고 격리된 생활을 하며 드디어 모비딕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읽기 전에는 이슈메일 항해와 모험을 기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내용이 너무 난해해서 힘들었다. 특히 에이해브 선장이 등장할때마다 내뱉는 광기들린 독백과 감탄은 읽는 사람까지도 미치게 만들어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또한 내용 전개와 무관한 고래와 관련된 강의가 책 내용의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모비딕을 읽는 내내 나도 망망대해를 표류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152p

그래도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돌이켜보면 마냥 무의미하진 않았다. 숙적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파멸로 밀어넣는 에이해브와 명령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타벅의 고뇌 등 등장인물들의 내적갈등과 타협은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모비딕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비유와 암시로 이루어진 하나의 대서사시이다. 미리 알아두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배의 이름에 있다. 모비딕을 사냥하기 위해 에이해브가 이끄는 배의 이름은 '피쿼드 호'인데 이 이름이 곧 복선이다. 피쿼드족은 미국의 인디언 부족으로 1637년에 전멸했다. 청교도인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최초로 아메리카에 정착한 것이 1620년이니 불과 17년만에 일어난 사건이다. 피쿼드족은 백인에 항쟁하다가 백인 전투부대에게 어린아이와 여성을 포함한 모두가 죽임당한 최초의 부족이기도 하다.

한편 소설 속에서의 피쿼드호는 백경(모비딕)에 대항하다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전멸당했다. 피쿼드족이 백인에게 학살당한 최초의 부족이라면 피쿼드호는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자연에 패배한 최후의 포경선이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계속 굽이쳐라, 깊고 검푸른 바다여, 굽이쳐라! 수 많은 배들이 고래기름을 찾아 그대 위를 헛되이 달린다.' -210p

모비딕이 영문학 불멸의 고전으로 남은데에는 시대적 배경도 한 몫했다. 모비딕이 출판된 1851년은 사회적 격동기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된지 70년가량이 지난 후로 본격적으로 문명이 자연을 지배해나가던 시기지만  동시에 여름이 없는 해(1816년)를 겪고 아일랜드 대기근이 닥친 수난기이기도 했다.

멜빌은 이러한 '인류가 발전해서 대자연을 위협하지만 정작 간소한 차이로 이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를 정확히 포착하여 섬세하고 치밀하게 모비딕을 집필했다. 모비딕의 진정한 가치는 인류가 자연에게 무릎을 꿇은 마지막 세대를 조명했다는 점에 있는 셈이다.

'저건 커피 주전자에요. 스타벅씨. 저 독일인 친구는 우리한테 커피를 대접하러 오는 겁니다.' -429p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가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렇듯 모비딕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책이다. 마치 양파처럼 파도파도 끊이지 않는다.

커피와 고래 영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비딕을 추천한다. 짧은 시일안에 다 읽으려는 집착없이 여유를 가지고 편한 마음으로 조금씩 읽는걸 추천한다.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