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스러운 점 또 하나는 (이건 내 절대적인 신조이기도 한데) 초고를 마칠 때까지는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절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초고란 날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살아 있는 듯 보이는 것이 이야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깔끔함을 잃더라도, 스스로 일어서 걸어가는 효과를 지닌 것들은 계속 유지하려고 하지요. 좋은 이야기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추출해야 하지요. 아무리 말을 아껴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성과는 느리고, 에이전트의 비웃음과 출판사의 오해를 살 겁니다. 그러다 서서히 당신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겠죠.


2.

매일 무얼 하며 지내냐고요?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안 쓰죠. 대개 아침이나 이른 오후 무렵에 글을 씁니다.밤이면 무척 현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지속은 안 돼요. 오래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죠. 작가들이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 법에대해 쓴 소소한 글들을 늘 보고 있습니다만,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숙취에 시달리든 팔이 부러졌든, 그 사람들은 그저 매일아침 여덟시에 자기들의 작은 책상에 앉아 할당량을 채우지요.머리가 얼마나 텅 비었건 재치가 얼마나 달리건, 그들에게 영감 따윈 허튼 소리. 찬사는 보내지만 그들이 쓴 책은 조심스럽게 피하겠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굳이 영감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지만요.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 의도적인 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어요.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바닥에서 뒹굴어도 좋아요. 다만 바람직하다 싶은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됩니다. 글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훑어보거나, 수표를쓰는 것도 안 돼요.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학교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입니다.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라도 무언가를 배우려 하죠. 이게 효과가 있답니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이에요.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3.

보면, 작가가 자기가 써먹지도 못할 기교를 얼마나 많이 알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지요. 재능이 충분하다면 본질이 없이도 어느 정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본질이 알차다면 재능이 없어도 어느 정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그 둘 다 없이는 해 나갈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아직 아닌 작가들은 아주 비극적인 인물들이죠. 그들은 자신이 나아가지 못한 게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공한, 혹은 크게 성공한 작가는, 자신이 나아갈 수 있었던 한 걸음이 얼마나 작은 차이였는지 알고 있고,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죠. 그뿐입니다.


4.

내 경험을 바탕으로 경고하자면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유명 학교의 공개강좌를 제외한, 일반적인 창작 교육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무엇보다 그런 강좌들은 모두 소위 '작가들의' 잡지라는 데에 광고되고 있죠. 그 사람들은, 당신이 이미 출간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낼 수 없는 건 하나도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분석하고 모방해 봐요. 다른 교육은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해요.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걸 위해 돈을 내야한다면 대체로 수상쩍은 겁니다.


나는 아내가 조금씩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 사실을 안다는 고뇌 속에서 내 최고의 책을 써야 했으며, 그럼에도 써 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서재에 들어가 눈을 감고는 생각을 모아 스스로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지요. 그러는 데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렸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작업을 시작했습니다.”(1957.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