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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나온 고골의 단편을 읽었다. 아래는 뻬쩨르부르그와 고골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 스포를 포함한.


고골의 문학에서 느껴지는 일련의 환상성은 비교적 우스꽝스럽다. 신비롭지도 않고 마술적이지도 않고, 끔찍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우스꽝스럽다.

그래서 고골 작품에 담긴(또는 뻬쩨르부르그를 감싼) 전체적인 침울감과는 다르게 고골의 작풍은 전반적으로 웃긴 편이다.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고골의 환상은 뻬쩨르부르그라는 침울한 도시를 우스꽝스럽게 비틀어버린다.


이를 테면 단편 「외투」에서 나타나는 뻬쩨르부르그의 모습은 한겨울이면 건물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부는 차가운 도시다. 고골은 이것이 뻬쩨르부르그의 슬픈 지형에서 기인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외투가 없으면 쉽사리 살아갈 수가 없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이 부조리한 추위는 가난한 이들의 옷가지들을 쉽게도 갈가리 찢어버린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환상은 슬픈 동시에 희극적이고 우스꽝스럽다. '실제'의 참혹함을 감싸는 고골의 환상은 조소와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게 된다.


카프카나 마르케스를 읽었을 때 느꼈던, 일종의 공감각적 묘사 또한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카프카보다는 마르케스 특유의 덕지덕지한 문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네프스끼 거리」에서는 토마스 만의 특유의 길-쭉한 만연체 느낌도 들었다. 특이하게도 번역가 분의 어휘 선택인지 뭔지 앞뒤로 중복되는 단어들이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들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뻬쩨르부르그를 바라보는 고골의 시선이다. 찬란함을 뒤집어쓴 도시에 대한 뒤틀린 우화들. 하지만 고골은 도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되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도시의 엉뚱함은 사람들을 슬픔과 광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찬란한 '가짜' 빛을 벗겨낸 '진짜' 뻬쩨르부르그의 모습은 추악하고 허영뿐이지만, 정작 가짜에조차 속하지 못한 '진짜' 속 사람들은 '가짜'를 이 도시의 궁극적인 '진짜'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도시의 두 얼굴이 뒤엉켜버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골은 '가짜' 도시의 괴상함에 조소를 던지는 동시에, 도시의 '진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키진 않는다. 단편들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는 대부분 고골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니, 어쩌면 기나긴 자기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속 뻬쩨르부르그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 놓인 허영의 도시다. 그런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허영이 아닌 실체다. 인상 깊었던 해석중에 나보코프가 내놓은 해석이 있었다. '「외투」는 주인공 아까끼가 본래의 모습인 유령으로 회귀해가는 이야기.'라는 해석. 이 말을 제멋대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 실체였던 사람들이 허영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광인일기」에도 대입해보면 애초부터 뽀쁘리시친은 광인이었던 셈이다. 결국 뻬쩨르부르그는 유령과 광인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도시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제멋대로인 생각조차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러다가 뻬쩨르부르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알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다시 펼쳤다, 덮었다, 하고 있다. ㅡ 뻬쩨르부르그를, 펼쳤다가, 접었다가, 그러다가. 원래 접혀있던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또 펼쳐질 테지. 뻬쩨르부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