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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의 사상적인 근본은 도덕감정론에서 나온다 라고 하는데,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의 사상적인 근본도 바로 이 책 공리주의에서 나옴.
개인적으로 존 스튜어트 밀을 좋아하는 이유가 많긴 하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책을 정말 깔끔하게 잘 쓴다는거임. 이번 공리주의에서도 '내가 왜 이 책을 쓰는가' 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머릿말에 정리함:
Q. 우리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A. 공리주의 또는 행복 이론을 소개하고 평가하며, 그것을 증명하는 일에만 치중하려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써 공리주의를 제안하는' 책임.
정확히는 효용(utility)을 증가시키는 행위, 그러니까 고통의 부재와 쾌락을 불러오는 행위가 옳은 행위다 라고 말함.
세간에는 공리주의 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동의 이익이 조금만 더 커도 나머지를 줘패버리는 기계적이고 디스토피아스러운 인식을 띄는데,
밀은 '다른 것을 평가할 때는 양뿐 아니라 질도 고려하면서, 쾌락에 대해 평가할 때에는 오직 양만 따져보아야 한다고 한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고 하면서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함. 그러니까, 행복의 양 못지 않게 그것이 저질의 행복인이 양질의 행복인지를 구분해야 하고, 그 방법은 이렇다고 함.
'만일 두 가지 쾌락이 있는데, 이 둘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 전부 또는 거의 전부가 도덕적 의무 같은 것과 관계 없이 그중 하나를 뚜렷하기 선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바람직한 쾌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쪽 다 경험해 본 사람이 한 쪽을 선택하는 빈도가 명백하다면 그 쪽이 양질의 쾌락이라고 주장함.
그러면서도 크게 감탄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임:
먹고살기 위해 매달려야 하는 직업과 각자의 사회적 상황이 그와 같이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다수의 젊은이들에게서 그러한 능력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잃고 나면 보다 높은 곳에 빠져들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그런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도 사그러진다. 그 대신 열등한 쾌락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이것은 그런 쾌락을 의식적으로 더 선호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들이 접근 가능하거나 그나마 비교적 오래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보기에 저질 쾌락이라고 보이는것들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해 그저 그 사람들이 못난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확장했음.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철학자 맹자도 '항산항심' 이라하여, 일단 배가 불러야 뭘 한다고 했는데, 옳음에 대한 추구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는구나 싶음.
여간, 책을 읽다보면 존 스튜어트 밀 사상의 근본답게, '어? 여기는 여성의 종속에서 하는 말 같은데?' 하는 부분이 많이 나와서, 읽다보면 또 재미있을거임.
근데 사실 재미는 없음
공리주의도 함 파긴 해야되는데
공리주의가 벤담이랑 밀 맞나..? 학교다닐때 잠깐 배운거말곤 지식이 전무해서.. ㄷㄷ - dc App
양적 공리주의 벤담, 질적 공리주의 밀. 다수의 행복의 합이 크면 소수를 억압해도 된다는 게 벤담이고, 그딴 좆같은 질낮은 행복을 우리는 거부한다가 밀임.
참고로 밀이 벤담을 사적으로 극혐함.
꿀잼노잼이 먼소리야 십팔!
꿀잼 중에서 제일 재미없다는 거.
사람은 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이게 자본주의 노예를 운용하는 방식이라 그르킨해... 내가 항상 주창하는 바지만 자본주의 혁명은 비혼 비출산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