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사기"에서 케리 그랜트까지, 현대 일본 소설을 읽다.
(하스미 시게히코, <와세다 문학> 2003년 7월호)
일부 발췌
소설이란 것은, 어떠한 의미에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방금 예로 들었던 소설 몇 작품은, 대부분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 때 "이건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끔 세부를 지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본과는 무관한 배경을 선택한 히라노 게이치로 씨의 경우, "실수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쓰는 행위의 운동감을 지워버렸다"고 언급했습니다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몇가지 있었기에, 여기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컨대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시간적으로 이상한 것이 상당히 있었다고 생각해 자세히 건드려보자 합니다만, 제 2차 세계대전 도중, 1944년으로 상정되는 어떤 사건에 있어 두드러집니다. 쇼와 19년, 앞으로 1년이면 제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항복에 의해 끝나는데, 야마나시현이었나요, 시골 학교 선생님의 16명의 학생을 데리고 산으로 향하는 겁니다. 체험학습을 간 곳에서, 거의 이유도 알지 못한 채로 (나중에 이유가 어느정도 밝혀지지만) 학생들이 하나 둘 쓰러집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학생들을 깨우려고 하는데, 어느 시간이 될 때까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마침내 잠들어 버렸다는 삽화가 있습니다. 전쟁 이후, 미군이 와서 그 사건을 수사합니다. 거기서 증인이 몇명 나와, 미국 장교에 맞서,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 중 한 명, 의사의 증언입니다만, "당신은 그 장소에 갔습니까" 라는 장교의 질문에, "네, 저는 거기에 갔습니다. 거기서 16명의 남녀 학생이 연이어서 쓰러졌습니다"고 의사는 증언합니다. 문제는 그 직후인데, "그것은 마치 전위적인 연극芝居의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태가 일어난 것은 쇼와 19년, 1944년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1946년 정도에 그것을 회상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때의 "전위적인 연극"이라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의사는 츠키지 소극장이라도 다니고 있던 걸까요? 그러나 "전위적인 연극"이라는 어휘는 카라 쥬로(唐十郎) 이후의 세계랄까, 또는 히지가타 타츠미(土方巽)의 무용 이후의 감성입니다. 종전 직후에는 "전위적인 연극"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게다가 시골 마을에 산다는 의사가 어째서 "전위적인 연극" 같은 표현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무라카미 씨, 이건 이상하지 않나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꽤나 있는 겁니다.
그러나, 무라카미 씨의 문장이라는 것은, 마치 역사적인 배경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시대 배경을 향한 고착도가 매우 희박하기에, 다들 별 생각 없이 읽어버립니다. "아, 전위적이구나" 하고 생각해버리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 카라나, 히지카타구나" 해버립니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마치 전위적인 연극의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것을 1946년, 쇼와 21년의 등장인물에게 말하게 하는 것이, 소설가로서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 그것이 "픽션적인 허용도"에 저촉하는지의 여부입니다.
"몇년도 몇월에 무슨무슨 승합마차가 달렸습니다"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조사해 쓰는 것에 비해, "전위적인 연극"이라고 툭 흘려버리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을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만날리가 없는 시기에 굳이 히구치 이치요와 모리 오가이를 만나게 하고 있습니다만, 이 "전위적인 연극"이라는 한마디에는, 그런 "굳이"의 각오가 없다. 과연 어떨까요, 이런 게 허용되는 걸까요? 아니면 "당신은 68세대니까, '전위적'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려 하는데, 그런 것은 픽션이라도 허용될 수 없어" 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
비평가인 저는 그런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그거대로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게 동시대적인 감성이라는 것에 대한 동조의 기대가 있습니다. "다들 전위적인 연극이라고 한다면 무언가 알 것이다", 숲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새하얀 얼굴을 하고 늘어져 있다... 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문화적인 동시대성으로 지니고 있는 "전위적인 연극"이라는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을 것을 기대하며, "바로 그거야"하고 지시한다. 그것이, 제가 "결혼사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마치 전위적인 연극을 보고 있는 듯"같은 말을 그 시대의 의사가 말할 리가 없는데,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사기"군요, 그는. 그런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아무쪼록 사기에 당하지 않도록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사기에 당하는 것을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꿈을, 굳이 깨트릴 생각은 없습니다.
난 막줄에 어느정도 공감이 가네. 그나저나 이 하스미는 글을 참 그답게 쓰는거 같음
글은 아니고 구술한걸 기자가 받아 적은듯?
하루키는 고증 지키는 것에 무심하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할 수 있구나. 이 정도 되야 평론할 수 있는 것? - dc App
근데 이거 전체 읽어보면 단순히 그것만 건드리는건 아니고 당시(2003년) 일본소설들의 고유명사 사용이라든지 카타카나 등등으로 폭넓게 엮어서 얘기함
전체를 어디서 읽어볼 수 있음? 관심이 감 - dc App
나중에 시간나면 번역해서 올릴게
나는 단순히 하루키 까는 내용인줄 알고 구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좀 깊게 들어가서 당황했음
감사합니다..! - dc App
거의 살인의추억에서 그 당시 대통령을 추정하는 그 글 수준의 집착 수준의 분석이네...
영화는 반영론 보단 내재론 위주로 비평하는데 소설은 반영론 이야기 하니까 신기하네 ㅋㅋㅋ 하루키 원작 토니 타키타니 영화봤는데 ‘결혼 사기’ ...ㅋㅋㅋ 진자 전위적이고 연극적임.... 영화도 관객에게 보여주는 구도가 많이 나와서 재밌었어. 하루키 문체 자체도 타인을 의식한 듯한 연극적인 자의식이 많지. .
일본의 순일한(?) 미의식에 가닿기 위해 시대성을 배제하는 오즈 야스지로와는 다르게 하루키는 시대성을 배경과 소재 정도로 채택하는데 통시성이 없는 건...그 시대성이 재즈라든가 위스키라든가 하는 외래문명에 기대는 경향이 있어서 붕 떠있는 늬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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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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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나올때 하스미 할배도 도쿄대 총장으로 사회활동 열심히 햇다
댓글이 완성했노
그냥 고증실수인것 같은데 억까 씹지리노ㅋㅋ
이게 진짜 문제인 건 발견한 사람한테는 몰입감 다 깨지고 재미없어지는 사안이지만 그걸 표현하면 사소한 거 가지고 억까 지리노ㅋㅋ 라는 식으로 집단패대기를 한다는 거임
사실 이 글에서 문제삼는 건, 하루키 문장의 특징인 '동시대성에 기대는 서술'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예로 든 것이 '전위적인 연극' 문장이라서 후자만 물고 늘어지면 좀 그렇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