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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 저러나, 한국이라는 국가의 건설(건국을 포함해,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한국의 사회제도의 기틀을 포함)에 있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몇 백 년 전의 조상들이 살아가는 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사고관은 과연 비교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동떨어졌다. 탈식민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구가 스스로의 자아를 세계에 확장시킨 것이라고 말하는 걸 즐기는데, 어떤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기존 시대와는 다르게 근대 국가는 자신의 영토라고 할 만한 지역에 훨씬 더 직접적인 통제력을 가질 수 있었고, 거주민들의 생활 방식 역시 완전히 이국적인 장소보다는 좀 더 자신들의 고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변형시킬 수 있었다.


이는 꼭 식민제국만의 영향력은 아니었으며, <오리엔탈리즘> 등의 저서에서 언급하듯 서구권이 '동양'을 타자화해 자신들의 온갖 열등한 요소들을 '동양'에 부여했듯, '동양' 역시 자신의 패배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며 서구권의 온갖 요소들을 모방하려고 했다. 그 현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행동원리나 동기는 여전히 저 머나먼 곳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대체로 이 전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2차 대전 이후와 같이 보다 더 자성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면 자본주의 이행 논쟁과 같은 '왜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한가?'에 대한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양쪽에서 느끼지 않는다. 만약 그럴 필요를 느낀다면, 그것은 이 질문의 전제, 서양의 우월성이 흔들리는 시기뿐이다.


아마도 <대분기>는 중국의 극적인 부상 이후에 좀 더 본격적으로 해답을 찾고자 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단순히 '왜 서양이 성공했는가?' 하는 질문을 답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성공했다는 결과 앞에서 실패한 상대와의 차이점들을 나열하기만 하면 대체로 그것들은 나름 그럴듯하게 들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일반인과 학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나오는 것이 동양에 비해 뛰어난 서양의 사상적인 근본인데, 인문주의, 계몽주의,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윤리 등이 보다 더 근대성에 걸맞는 사람과 풍토를 가꾸어 냈고 바로 그것이 19-20세기의 심각한 격차를 일궈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분기>는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원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존에 동양에 부여한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사회구조 따위가 사실은 그 당시 서유럽과 중국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문제였으며, 오히려 많은 경우 전자에서 더 큰 문제가 대두되었다는 점에서부터 <대분기>는 주장을 펼쳐나간다. 서유럽의 상품들은 대체로 무력을 동반하지 않은 무대에서 중국, 일본 등의 국가의 상품들보다 열세였으며, 서유럽의 기술과 학문은 동시대의 중국과 비교해서 그리 뛰어나지도 않았고(사실, 열세인 곳이 꽤나 많기도 했으며), 개인의 생활 형편이나 자유 시장 등의 요소로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비교는 그 모호하고도 드넓은 '서양'과 '동양'을 중점으로 한 것이 아니다. '서양', 개중에서도 서유럽만 치더라도 국가별로 상황은 너무나 판이하고, 경제적 요인들을 살펴보는 데에 있어 유럽의 국가들의 공통점을 찾는 것보다는 잉글랜드와 양쯔강 삼각주 지역이라는 경제적으로 융성한 곳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더 수월하다. 다만, 어째서 후자가 전자가 될 수 없었는가? 그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어째서 전자는 후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저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두 번째 질문이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18세기는 양쪽에게 있어 경제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멜서스 트랩, 생태적 한계를 맞닥뜨린 시대였다. 단순히 인구 대비 식량의 문제는 아니며 인구와 식량의 자리에 위치할 요인들을 면밀한 통계를 근거로 설명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요점은 두 지역이 비슷한 문제를 목도하였고, 이를 자연재해나 경제 위축 등의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쯔강 삼각주 지역의 제도는 이 문제를 비교적 정상적 범주 내에서 해결해낼 수 있었고, 그대로 사회가 유지되었다. 잉글랜드는 그럴 수 없었지만, 바로 이 "후진성"에서 지점에서 대분기가 생긴다.


땅을 더 쓰지 않고도 에너지를 무제한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석탄과, 토지 집약적인 생산물들'만'을 만들어내며 자본 집약적인 생산물들을 계속 수입해내야 하는 식민지다. (물론, 식민지의 역할은 그 외에도 몇 백 년간 서유럽의 경제를 파탄내지 않도록 도와준 은이나 인구 문제를 처리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노예 시장도 있지만, 보다 덜 중요하다) 그 두 요인은 잉글랜드가 양쯔강 삼각주 지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게 해준 동앗줄이자, 서유럽은 커녕 잉글랜드의 사람들조차도 상상해본 적 없는 '근대'로 그들을 이끌어준 계단이 되었다.


역사는 독자를 냉소에 잠기게 만든다. 이 가치중립적이고 통계로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그나마 교훈을 찾는다면,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좀 더 사람들을 착취하며 단순한 자원적 불균형을 넘어, 한 사회를 완전한 파탄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스탈린이 소련을 '개혁'했듯. (소련의 경제적 부상은 자국 내의 영토를 대상으로 이 식민지와 함께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꼭 그리 비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근대와는 또 다른 현대가 시작된지 오래고, 우리는 비로소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분석들이 <총, 균, 쇠>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대주의자와 오리엔탈리스트에게 좀 더 뜻깊은 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했고, 앞으로도 복잡할 것이다.


P. S. 다만 그래서 <대분기>는 읽기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어차피 학자가 아닌 이상 이 통계의 신뢰도를 따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지금 계산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경제적 수치가 무엇인지나 이것이 어째서 그러한 결과를 낳는다고 판단하는지 따위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책 머리에 실린 감수자의 말을 보면 이 책을 대학원 강의 교재로 사용했다가 골치 아팠다고 하는데, 나 역시 예전의 거시/미시경제학 내용들을 떠올려도 쉽지 않았다. 아마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대분기"에 대한 논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에는 좀 더 대중적인 저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P . S. S. 물론 경제와 역사는 다르다. 저자 역시 책 말미에서 다시 언급하듯이, 경제적 요인의 '미세한' 차이는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크나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최대한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마지막 문단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