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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탑
인간은 경험적으로 신을 직접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경험에 따라 인식할 방도가 없으니 그저 관념 속에 담아두고 신이 사는 인식불가능한 가상세계를 생성함으로써 이세계의 신을 숭배할 뿐이다.
인간들은 경험칙상 알 수 없고 알 수 있을지도 확답하기 어려운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일념과 의지 하나로 하늘을 꿰뚫는 탑의 건설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때론 직관적으로 더 이상 하면 안된다는 것을 종종 직감하듯이 도를 넘어서면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추락하고야 마는 현실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다. 거대하고 웅장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힘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 절망과 그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잡아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의지의 표출은 오히려 알 수 없는 쾌감과 희열을 불러일으킨다.
세계의 가장 높은 곳은 사실은 가장 낮은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 모순적이면서도 신비함 앞에 놓인 인간은 기이하게 생겨먹은 세계를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자연의 숭고함에 경탄할 뿐이다.
이해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 뉴런을 활성화하게 하는 약물의 주입 끝에 인간의 무의식적 힘들마저 의식의 영역으로 탈바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완전성을 갖춘 두 인물은 뛰어난 지능을 지녔으면서도 그 지능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생각이 다르다.
사회와 단절된 채 지식의 완성을 통해 그 완성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적 타입의 인간과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봉사하는 시민적 타입의 두 대결은 지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와 수단으로 하는 자의 대결이고 어찌보면 무관심적 태도를 근간으로 한 미적 태도의 대립으로도 보인다.
목적 그 자체로 볼 것이냐 수단으로 볼 것이냐 무엇이 옳을까? 심미주의와 실용주의의 대립.
주인공은 상대의 조작과 통제 끝에 암시의 의미를 파악한다. 말을 한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다. 붕괴한다. 역설적이게도 지식을 그 자체로 추구했던 심미주의자였던 주인공은 지식을 깨달은 죄로 파괴된다. 그것이 마치 죄였던 것마냥 말이다. 그것은 실용주의에 입각한 판결인 것이다.
영으로 나누면
현실에선 1은 1이고 2는 2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 물리적인 제약에서 해방된 수학은 자체의 형식으로만 움직이고 1 = 2가 성립하게 되는 모순을 가진다. 이 논리와 형식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순간 괴리가 발생한다.
일평생을 바쳐 아름다움을 느낀 수학에서 모순이 발생하여 아름다움마저 남지 않았다면 한 인간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은 것은 오로지 무의미뿐이다. 자신의 지난 나날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좁힐 수 없는 현실과 수학의 간극은 한 인간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이 1 = 2라는 명제는 현실과 항상 유리되는 것인가? 물리적인 수량을 세는 경우엔 현실과 맞지 않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성립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모순 속에 빠져 현실을 영위할 수 없는 르네와 그 간극을 좁혀줄 수 없는 남편은 서로 혼자있는 것이나 둘이 함께 있는 것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1 = 2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호러가 아닐까?
네 인생의 이야기
외계인 혭타포드들은 혭타포드의 특성에 따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다. 동시에 일어나기에 선택의 문제나 자유의지가 끼어들 틈이 없다. 필연성의 법칙이 지배한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최소 최대화로 나타나는 최고의 효율이라는 목적이 지배한다. 그렇기에 언어의 사고방식 조차 인간의 언어와 다르다. 따라서 정해진 결과에 따라 순응하고 정해진 결과 발생에 불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행동이나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이 혭타포드의 사고방식이다.
반면 인간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완벽히 행할 수 없기에 어떤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의 문제는 인간에게 수많은 선택지의 답변을 고려하게 하며 인간은 고뇌끝에 어떤 이유에서건 하나의 답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과는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자유의지다.
혭타포드가 인간들에게 안겨주는 마지막 선물은 인간의 작동원리와 다른 자연의 작동방식과 유사한 방식을, 즉 자연의 신비나 경이를 알려주는 것이다.
선물에 힘입어 주인공은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깨닫고 동시적이고 필연적으로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자연률에 따라 자신이 낳을 아이의 탄생부터 성장, 이른 죽음의 과정까지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결말은 모성애의 아름다움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은 과연 의무나 책임을 토대로 미래의 결과가 최대 효율에 따라 순항할 수 있도록 자연의 숭배자로서 규칙을 준수하게 될까? 난립하는 자유의지에 영향에 따라 정해진 미래를 사수하지 못하게 될까?
중요한건 주인공이 아닌 아이다. 아이는 어떤 과거나 미래따위에 얽매이지도 않고 지각하지도 못한다. 오로지 지금 그 순간만을 영원히 즐기며 기뻐하고 슬퍼한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규율할 수도 없다. 아이는 자연률의 지배가 아닌 자유의지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인생의 여러 문제에 자신만의 처절하고 치열한 과정 끝에 자신만의 답을 내리고 자신만의 인생을 그릴 것이다. 결국 주인공이 예견한 아이의 미래는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네가 써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의지가 인간을 규율하는 방식이자 원리다.
일흔 네 글자
무엇인가 혁신하고 창조하려는 세력은 항상 기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세력의 방해를 받는다. 인간사의 싸움은 모두 이런 것에서 비롯된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자들과 기존의 세계를 지키려는 자들의 혈투. (물론 시시껄렁이들끼리 밥그릇때문에 싸우는건 논외다.)
더 나아가 인간의 탄생마저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게되고 이런 세력 간의 다툼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생명은 그 생명을 목적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자들에 의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 탄생한 인간은 더이상 고유한 하나의 생명이 아니라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자동인형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며, 얄팍한 이익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화를 막으려는 인간의 모습은 더없이 고귀하고 위대하다.
지옥은 신의 부재
같은 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관련해서 자기 자신에게 발생한 상황이나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고, 그것은 세계를 대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태도를 결정한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는 신이 존재한다. 이런 신의 보편적 존재에 따라 우리는 내 안의 신과 주변 사람 또는 사물들에 내재된 신을 마땅히 사랑해야 한다.
평상시의 신성을 외면한 채 삶을 사랑하지 않고 고통을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신을 수단삼아 천국으로 가려했던 닐의 죄와 그 신성을 긍정하여 자기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재니스의 선행은 너무나도 대조된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보상받고 죄인들은 벌을 받는다. 그것은 인류에 내재되어 있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믿음이고 그것은 신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질서에 따라 닐과 재니스는 각각 지옥의 벌과 불확실성의 해소, 안정되고 평온한 삶을 판결받는다.
모든 것은 뿌린대로 거두리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발상 자체가 끔찍하다. 아름다운 대상은 아름다움 때문에 오해받기도 하고 내면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설령 그렇다고해도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근거로 아름다움을 느낄 즐거움과 자유를 원천적으로 앗아가려하는 것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이게 pc인가 먼가 그런거냐?
많이 알면 더 많이 보이겠지만 철학적 지식이든 과학적 지식이든 부족해서 많이 안보이는게 아쉽다. 그래도 진짜 아주 탁월한건 쌉ㅇㅈ. 문알못 눈에도 보인다. 스토리 자체도 재밌어서 빌드업 하다 막판에 폭풍처럼 몰아칠땐 그만 읽고싶어도 한편 다 끝날때까지 손에서 책을 못놓겠더라. 숨 올때까지 숨 참음 흡
종교.윤리적 주제를 과학적 접근으로 파고드는게 ㄹㅇ 탁월한 작가임..바빌론의 탑 에서는 테드창이야말로 아서 c 클라크에 견주는 작가구나 하고 감탄했음 - dc App
지랄자제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