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학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수학자한테 자기 자신이 수학자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라고 하면 증명하지 못함
즉 사물이나 현상에 숫자를 대입시키는건 명백한 종교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이걸 대입 가능하거나 사실 그 자체로 날조하는 학문이 수학이며
수학책을 많이 읽을 수록 성경을 읽는 개독처럼 지능이 압도적으로 떨어짐
무엇보다 1+1은=2라는 이런 고정적인 사고 밖에 하지 못하며 1+1=3이나 1+1=4가 될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은 하지 못하게 됨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랑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중에 어느 쪽이 진짜 지능딸리는 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거 같다
2. 과학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과학자한테 자기 자신이 과학자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고 해보면 증명하지 못함
왜냐면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과학자라고 부르는 대상은 사실 과학자가 아니라 단백질 덩어리고 이 단백질 덩어리 보고 과학자라면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개념을 대입시키는 것일 뿐임. 즉 과학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는건 성경을 읽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를 주입받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과학에 관련된 책을 독서하면 지능이 압도적으로 떨어짐
특히 네이쳐, 사이언스 쪽 논문을 절대로 읽으면 안되는게 거기에 "학계"나 "학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걸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논문이 한개라도 있음?
그런게 있다는건 사회적 약속이고 사회적 약속이 실체라고 주장하는건 약속에 대한 증거가 약속 그 자체라는 순환논증이다
과학은 과학적 사유가 맞다는 증거가 과학이라는 개념을 약속한 사회의 의지 그 자체라는 순환논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그저 굉장히 한심하다는 말 외엔 나오지가 않는다.
3. 역사, 고고학 관련 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역사학자한테 사료가 내가 관측하기 때문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과거의 인간이 써서 존재 하는거라는, 즉 유아론이 틀리고 유물론이 맞다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면 증거를 가져오지 못함
고고학적 증거들도 유물론이 맞다는걸 전제로 하는데 역사학자들 중에 유물론이 왜 맞는 이론인지 증명할 수 있는 학자 한명도 없음
즉 역사학 고고학은 종교 이데올로기일 뿐이지 사실이 존재하지 않음
4. 문학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문학책을 읽으면 심리묘사에 의해 나 이외의 다른 인간에게 생각과 감정이 있다는 근거없는 망상에 빠지게 되며
타인에게 감정과 의식이 있을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음. 그저 나한테 감정과 의식이 있으니까 상대방한테도 있을거라고 자신의 관념을 대상에 일방적으로 대입시키는 것일 뿐이지 오감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 할 수있는게 아님
입증하지도 못하고 반증하지 못하는 걸 입증 가능한 사실로 인식하게 되는 저능함에 빠지게 되며
물론 문학책도 유물론을 부정하거나 유아론을 미는 성향의 책이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의 지능을 압도적으로 떨어지게 함
5. 심리학 관력 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위에 문학과 똑같다. 나 이외에 타인에게 마음과 의식이 있다고 전제하는 학문은 입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언어유희의 세계이다
6. 법 관련 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사회가 법과 도덕의식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는 거라는 객관적 인식론 자체가 틀린 것이다
개인의 주관안에서 벌어지는 세상에서 감정과 의식을 가진건 자신 밖에 없고 지구가 존재한다는거 부터 유물론자들이 퍼뜨린 개소리이며
존재하는건 내 감각이 만들어낸 내 개인적 공간밖에 없고 질서라는건 내 감각이 만들어 내는거지 법같은 관념이 만들어 내는게 아니기 때문에
법학은 순환논증으로 밖에 끝나지 않는다
7. 공학, 기계에 관련되어 있는 책을 읽을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컴퓨터, 핸드폰, 자동차, 비행기 이 모든 것들은 내 감각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나오는 자극일 뿐인데 저게 수학이랑 과학의 발전으로 나온거라는 망상을
마치 사실인거 처럼 날조하고 있다. 볼 가치 자체가 없다
8. 철학 관련 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
이건 좀 애매한 부분인데 나 자신이 관념에 세뇌당한 상태에서 관념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려면
도덕관념이 왜 전부 쓰레기인지 니체를 공부해야 하고
객관적 관념론이 왜 전부 쓰레기인지는 장자를 공부해야 하며
과학이랑 수학이 왜 쓰레기인지는 데이비드 흄을 공부해야 하고
인간이 사회적으로 약속한 단어의 의미가 현실이랑 대응하지 않고 전부 자의적으로 결정된다는 걸 알기위해선 소쉬르를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부처, 공자, 예수 이런거 공부하면 지능이 압도적으로 떨어져서 관념의 세계에 갇히게 되며
애초에 책 자체를 읽지 않으면 관념의 세계에 빠지지를 않기 때문에 철학 책을 읽으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친구 불러서 맥주라도 먹으러 나가지...
실베추
장문인게 개웃기네
실베추
Z_2에서 계산하면 1+1하고 4하고 같은데?
Z_2에서 계산하지 않는게 중요함
뭔소리야 이건 또 - dc App
대수 얘기임 말 되네ㅋㅋ
실베고로시각 날카롭게 섰다
개씹쓰레기 글은 독갤말고 야갤에서 써라 - dc App
닉자다 - dc App
와... 논리전개에 한줌의 빈틈도 없네 똥같은 독갤에 이런 통찰력있는 글이 올라오다니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비꼬는거 보소ㅋㅋㅋ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시나요
책 많이 읽으신 듯
반쯤 진심인거 같아서 두렵다
너는 그냥 오늘날의 실증주의적인 사고체계가 싫은 것 뿐임. 다만 그것이 독서 전체를 폄하할 근거는 못됨. 왜냐하면 그러한 실증주의적 학문을 파타하고자 주장을 제시하는 저자들도 존재하기 때문임. 물론 그러한 저자들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배제되고 있긴하지만
실증주의 까는 내용 없는데 뭔 헛소리야. 수학 과학 등의 학문이 알고보면 실증주의 축에도 못끼는 저질스러운 종교라고 말했을 뿐
실증주의가 먼지 모르나? 실증주의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콩트가 말했던 바와 같이, 현상의 법칙만이 실증주의의 관심의 대상이 되며 생성의 법칙은 실증주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날의 자연과학 역시 끊임없이 법칙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자연과학적 실증주의의 법칙개념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마도 법학의 실증주의의 법률개념보다 더욱 나쁜 혼란에 빠져있다. 바로 저 자연과학의 자연법칙들이라는 말은 오로지 하나의 계산할 수 있는 함수만을 표시할 뿐, 결코 실질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적 실증주의는 어떤 근원도, 어떤 원형도 알고 있지 않으며, 원인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니까 그게 헛소리라고 본문에 써놨자나. 과학에는 그런거 없다고
혹시 난독임? 그니까. 이글은 그러한 실증주의의 오점을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잖아.
난독은 너인거 같은데 과학은 약속의 근거가 약속 그 자체라는 순환논증만 있는 믿음 밖에 없는 종교이지 애초에 실증주의를 언급할 필요자체가 없다고
대가리가 안돌아가냐?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증명할 수 없는 법칙들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는 원인이 실증주의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타파하고자 반실증주의를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증명할 수 없는'이라는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실질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글쓴이의 말대로 단지 순환논증만을 밝히는 근원과 동떨어진 해석을 의미한다.
그니까 그 "원인" 자체가 알고보면 과학하고 상관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요. 뭔말인지 이해 못하나?
(39.7)이랑 (118.235)가 다른사람인지 동일인인지는 모르겠는데 뭔 나보고 실증주의적 사고체계가 싫은거라고 하길래 애초에 실증주의 얘기 꺼낸적도 없다고 말한 것일 뿐. 실증주의나 반실증주의나 과학하고 연결시킬 필요 자체가 없음
같은 사람 맞음. 그리고 넌 저능아임. 난 그러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게 실증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한 실증주의를 부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난독이라 글을 못 읽나 본데. 그냥 니 지능이 후달리는 걸 탓해라
과학이 실증주의와 상관이 있다는건 성경이 실증주의와 상관이 있다는 말과 똑같으며 니가 그런 장애인 같은 주장을 해서 대화가 안통한 것일 뿐이지 내가 저능아라서 그런건 아님. 기독교가 실증주의랑 상관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니가 존나 저능해서 그런거일 뿐임. 그냥 니가 장애인이고 논리력 따리는 병신일 뿐
처음부터 나는그러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게 실증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그걸 못알아 듣고 그러한 실증주의를 부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거 보면 이건 진짜 지능문제가 확실한거 같음
내가 봐도 39.7가 저능아 맞음
얘는 왜 자꾸 헛소리를 이어나갈까? 난 니 의견이 중요하지 않아. 니가 글쓴이여서 <내 목적은 애초에 그것이 아니였다>라고 주장하든 말든, 그건 애초에 관심 영역이 아님. 왜냐? 내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글에 적힌 내용을 반실증주의적인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임. 실제로 나의 견해에 반박을 못하고 있잖아? 헛소리만 하고 있지.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은 근대의 과학 정신이 가톨릭 교회의 대항물로서 산출된 것, 즉 오귀스트 콩트가 구성한 <실증주의적> 교회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다.
ㄴ 조헌병 환자냐? 그런 주장을 여기다가 왜 씀. 니가 남의 의견에 관심이 없듯이 니가 과학을 실증주의에 연결시키던지 반실증주의에 연결시키던지 아무도 관심 없는데
그냥 장애인이네
그거야. 실제로 글내용과 연관된 내용이니까 적는거 아니겠냐? 니가 저능아라서 연관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그걸 내가 조현병이라는 이유로 돌리지 마삼. 니가 저능아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생각하삼
니가 말하는 자의적 연관관계 아무도 관심 없으니까 그냥 꺼지시면 될거 같습니다
자의적이라고 말할 생각이라면 이 양자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부터 증명하시길. 헛소리만 오지게 하면서 그런 주장을 내세우면 그냥 병신같아보일 뿐임. 그리고 너랑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니가 글쓴이라면 너의 그러한 독단적인 견해야말로 니가 비판하던 내용이 아니였음?
그게 아니면 뭐 자학개그라도 하는 중이였나?
니가 그걸 관련있다고 생각하는건 실체가 아니라 관념일 뿐이고 난 관념적 주장에 대해서 관념자체를 근거로 내세우며 무한대로 순환논증 하는 저질스러운 논쟁은 하지 않는다. 그런 논쟁은 너같은 저지능아들이나 좋아하는 거고 지능 딸리는 곤충은 저리 가셈 워워
내가 말하는 것은 순환논증이 아니다. 애초부터 그러한 너의 사고방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질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는 해석이다. 가톨릭에 대해서는 공허한 형식과 형식 없는 질료의 대립이 문제가 되지 않듯이, 이러한 대립물의 통합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트적 심정을 매우 강하게 품는 사람은 종교를 영혼 없는 형식성에로 기계화하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를 기독교의 타락이며 악습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편, 바로 그 프로테스탄트 신도가 합리주의적이며 기계주의적인 시대의 비정함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로마 교회에 구원을 구하고, 그리하여 낭만주의적인 도피로부터 가톨릭에로 복귀한다는 일도 존재한다. - dc App
이것도 또한 기묘한 모순이며, 가톨릭 교회의 주목할 만한 <반대물의 복합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경제적 사고 속에 바로 가톨리시즘의 정치이념에 대한 현대의 본질적인 대립이 존재하는 것이다. 경제적 사고가 자신의 객관성, 공정성, 합리성이 자연과학적·기술적 사고방식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톨리시즘의 이념과 정확하게 모순된다. - dc App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본질이 독신주의 관료제의 우월성에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러한 가톨릭 교회의 본질을 간과하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영혼없는 기계화가 소여의 분열, 이간, 결합을 필요로 하는 안티테제, 하나의 무차별점을 가진 외 극성, 해결곤란한 균열상태이며,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에로 도달하는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발전도 불가능한 가장 깊은 미결상태라는 사실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가톨릭 교회의 합리주의는 인간의 심리학적·사회학적 본성을 윤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산업기술과 같은 물질의 지배와 실용화에 관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독자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 dc App
니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합리주의와 자연과학적(실증주의적) 사고가 바로 동일시되고, 가톨릭의 논증에 대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과학적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사회생활의 특수규범적 지도이며,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특수법률적 논리에 의한 논증방식이라는 것이 간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 dc App
자연과학적·기술적 사고방식이 어떻게 깊게 오늘날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가는 거의 모든 논의 중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보통 행해지는 신학적 논증에서 신은 국왕이 국가를 통치하듯이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며, 신은 알지 못하는 중에 우주라는 기계를 조종하는 발동기가 되어 버렸다. 대도회지에 사는 현대인의 상상력은 그 아주 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기술적·공업적인 표상으로 가득차고, 그들은 이러한 표상을 반대로 우주적인 것이나 형이상학적인 것에로 투영하는 것이다. 세계는 이러한 소박한 기계론적이며 수학적인 신화에 대해서 하나의 거대한 발전기가 된다. - dc App
가톨리시즘의 합리주의는 제도적인 것 속에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법적인 것이다. 승려직을 하나의 위계직으로까지 만든 것, 더구나 이것을 독특한 방법으로 수행한 것은 가톨릭 교회의 위대한 업적이다. 무규율한 예언자의 모든 열광적인 야만성은, 교황은 예언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행자라는 논법으로 배제시켜 버렸다. 위계직이 카리스마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승려는 자기의 구체적 인격을 완전히 사상한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위엄을 몸에 지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려는 공화주의 사상으로 말하는 공무원이나 수임자가 아니며, 그 위엄은 근대적 관료와 같은 비인격적인 것은 아니다. - dc App
오히려 승직은 중단되지 않는 인격적 위임자인 그리스도의 인격에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놀랄만한 <반대물의 복합체>이며, 승려 자신의 인격과 승직의 그러한 구별 속에는 가톨리시즘의 합리적인 창조력과 아울러 가톨리시즘의 인간성도 존재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적·정신적인 것에 머무르며, 인간정신의 불합리한 암투를 무리하게 노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것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한다. 가톨릭 교회가 어느 정도로 반대물의 복합체인가를 그 깊이 전체에서 파악하면 할수록, 반로마적 감정은 더욱 무한하게 심화될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포함하고 있지 않는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 dc App
이것은 가톨릭 교회가 양자의 대립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서로의 대립을 긍정적으로 보는 교회가 그 자체로서 양자 모두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면서 하나의 고정된 방향성을 가지며, 최후의 날까지 유동적인 변화가능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체되지 않는 본성>으로 <하나의 진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가톨릭의 근본적 속성이다. 그 속에 존재하는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이름의 <정당원인>을 가진다. 그것은 성전을 의미하며, 데살로니가 후서 제2장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하나의 힘을 의미한다. 그것은 십자군이다. - dc App
권위적 독재의 준엄한 철학자이며 스페인의 외교관인 도노소 코르테스와, 성 프란치스코의 자애의 정신을 가지고 가난한 아일랜드 국민을 위하여 헌신하고, 상티칼리스트들과 협동한 패드레익 피어스와 같은 반역자가 쌍방 모두 경건한 가톨릭 교도였다는 것은 거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학적으로 보더라도 도처에서 <반대물의 복합체>가 지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병존하여 효력을 가진다는 사실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 dc App
나아가 대립물의 결합이라는 현상은 인간의 동기나 표상의 사회심리학적인 궁극적 근원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이란 아버지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교회는 신도의 어머니이며 그리스도의 약혼녀이다. 이것은 부권적인 것과 모권적인 것의 놀라운 결합이며, 가톨릭 교회는 이 두 가지의 것을 결합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면서부터 가지는 매우 단순한 두 가지의 본능적 경향을 로마에로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가톨릭의 무한한 다양성은 매우 엄밀한 교의와 결단에 대한 의지와 다시 결합하며, 이 결단에 대한 의지는 교황무류성이라는 교의에서 극치에 이른다. - dc App
경제적 사고는 절대적으로 즉물적이며 사물 그 자체에 머무름으로써 독단적인 공정함과 성실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인 것은 단순한 경제가치 이외의 것에 기초를 두어야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유에서 본다면 비즉물적이다. 가톨리시즘은 경제의 절대적 즉물성과는 반대로 뛰어나게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에는 반드시 이념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는 권위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떠한 권위도 확고한 파토스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 이상인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 이외의 카테고리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 dc App
그런데 정치적 견해를 시종일관시키면 이것은 단지 일정한 사회적 권력집단이, 국가권력을 수중에 넣기 위하여 생산 과정에 있어서의 자기의 지위를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들이 마치 정치가나 정치 일반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실제로 염두에 둔 것은 그들을 당장 방해하는 구체적인 정치권력이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정치권력의 제거에 성공한다면, 경제적 사고와 정치적 사고를 대립시하는 것도 그들의 관심은 아니게 되며, 경제적 기초 위에 새로 창설된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위하는 것도 정치로 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특수한 타당성과 권위의 요구를 의미한다. - dc App
세계를 포괄하는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의 목적에 도달하는 경우에는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형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는 사람은 이것이야말로 바로 악마의 승리라고 하여 분노한다.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그들의 본능에 따라서, 모든 권력은 어떤 악한 것,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 속에서는 모든 권력에 내재하는 악에의 유혹은 확실히 영원하게 계속되며, 다만 신에 있어서만 권력과 선과의 대립이 여지없이 해소된다. 그러나 세속의 모든 권력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대립을 모면하려는 것은 최악의 비인간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 dc App
막연하고 광범하게 유포된 어떤 감정에 의해서 사람들은 가톨릭의 제도적인 냉정함을 악한 것으로 느끼고, 형태 없는 광막함을 진정한 기독교라고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기분이나 감정에 사로잡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천박한 생각이며, 다음과 같은 견해가 얼마나 비기독교적인 것인지 한번도 보지 못한다. 즉 이 세상에 현존한 시대와 최후의 심판 날에 있어서의 광영있는 재림 사이에 그리스도가 한번이나 그 이상 여러 번, 말하자면 시험적으로 인간관계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상은 비기독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dc App
어떤 프랑스의 가톨릭 교도는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이 가톨릭 교도가 묘사해낸 장면이란 상극적인 긴장 전체를 포섭하고, 동시에 신의 정의에 대해서 향해진 소송이라는 형식으로 정의를 변증법적으로 그 극한에까지 밀고 나아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에르네스트 엘로가 재판과 상소라는 법적 카테고리를 이용하면서 묘사하려고 시도한 최후의 심판날에 관한 미증유의 광경이다. 재판관인 신의 판결이 내려진 때에 판결을 내린 자는 자기가 범한 죄에 감추이고, 그 장에 서서 전우주를 경악케 하며 <나는 상소한다>라고 재판관에게 선언한다. - dc App
<이 말을 듣고 별들은 빛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이라는 사상에 의하면, 그 판결은 무한하게 결정적으로, 더구나 <두려울 경지에 이르기까지 상소불가능한>것이다. 거기에 <너는 나의 재판에 대해서 누구를 상소하는가?>라고 재판관인 예수 그리스도가 묻는데 대해서, 탄핵받은 자는 놀랄만큼의 냉정함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너의 정의로부터 너의 영광에 상소하는 것이다(J'en appelle de ta justice a ta gloire.)>라고. 이와 같은 위대한 대표형식의 각각에서 모순으로 가득찬 생명의 복합체는 인격적 대표에의 통일로 형성되어 있다. - dc App
그리하여 이러한 대표형식의 각각은 특수한 불안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며, <반로마적 감정>을 끊임없이 새로이 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물들은 서로간에 양립가능하며, 가톨릭 교회는 인간적·정신적인 것에 머무르며, 인간정신의 불합리한 암투를 무리하게 노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것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한다. 교회는 단순한 정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도 대표하며, 그리하여 교회는 그 독특한 힘과 존엄을 가지는 것을 표방하기에 이른다. 법학이 효력을 가지는 기존의 법을 단순히 전달하는데 불과한데 대하여, 교회는 대등한 권한을 가지는 당사자로서 국가와 교섭하며 새로운 법을 창출한다. - dc App
대표사상은 거기에 내재하는 인격주의 때문에 깊은 의미에서 매우 인간적인 사상인데, 당파주의자나 이단자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평의회 제도는 그러므로 비경제적 사고의 시대에 속하는 이와 같은 흔적을 제거하고 “위임된 자는 단지 사자인 동시에 대리인이며, 그것은 <명령적 위임>에 의한 생산자의 취소가능한 대리인이기에, 생산과정을 관리하는 사용인에 불과하다”라고 주장을 제시한다. - dc App
교회가 법적 형식이나 그 밖의 다양한 형식에 대한 힘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것이 대표에의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류국가를 대표하며, 모든 순간에 그리스도의 인간화와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역사적 결합을 표현하며, 인격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을, 즉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인간이 되는 신을 대표하는 것이다. 경제적 사고의 시대에 대한 교회의 우월성은 이러한 대표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결하고 진지한 프로테스탄트 교도인 루돌프 조옴도 가톨릭 교회를 본질적으로 법적인 것으로서 정의할 수 있었다. 이 때에 그는 기독교의 종교성을 본질적으로 비법학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 dc App
사실 가톨릭 교회는 매우 광범위하게 법적 요소를 관철시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적 요소는 오늘날의 실증주의적인 법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현대적 법률의 유토피아적 계획으로서의 성격과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근원적인 의미의 파괴는 일련의 구별과 안티테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노모스와 피시스(자연, Physis)를 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대비를 통해서 노모스는 존재로부터 분리되며 존재에 대하여 확고한 근거를 가지게 된 명령된 당위가 된다. - dc App
노모스는 순전한 규범과 입법으로서 이제 더 이상 규칙, 국민결의 또는 명령과 구별될 수 없으며, 구체적 질서와 장소확정의 내부적 척도가 아니라 오직 규칙과 입법만을 내용으로 하고 결국에는 복종-강제-기회를 가진 입법들 중의─중앙집중적일수록 더욱 더 강렬한─합법적 입법만을 의미하는 그 밖의 것들과 구별될 수 없었다. - dc App
이에 반하여 노모스라는 말을 그 근원적인 의미로 다시 사용할 경우, 죽어버린 신화에 인위적인 새 생명을 억지로 새겨넣거나 공허한 환영을 불러내는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모스라는 말은, 그것이 그것의 세계적 문제로부터 생겨난 인식을 법률실증주의적 혼란, 특히 19세기 국내법학에 쓰이는 용어들과 개념들과의 혼동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유용한 것이다. 근원적인 의미와 최초의 육지취득과의 관련을 상기하는 것은 이러한 점 때문에 필요하다. 앞으로 등장할 대지의 노모스는 결코 옛 시대의 제도를 발굴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합법성의 규범체계와 법률화의 경향과 혼동될 수는 더욱 없다. - dc App
이미 고전시대에 등장하고 있는 저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모스라는 말이 그 속에 존재와 당위가 분리될 수 있으며 어떤 구체적 질서의 공간구조가 도외시될 수 있는 그러한 순수한 입법을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언제나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후대의 이러한 용법은 오히려, 더 이상 노모스의 근원과 시초에 결합되지 못하며 구체적 질서와 장소확정으로서의 기본적인 법을 다양한 종류의 제정, 규칙, 명령, 처분과 포고로부터 구별하지 않는 몰락하는 시대─그러한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지도와 지배가 따르는 것과 같이─의 언어관용에 속한다. - dc App
이제 더 이상 구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단지 지도를 행할 뿐인, 헬레니즘시대와 케사르시대의 유복자로서의 권력 보유자들은, 존재하고 있는 구질서의 잔재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그들에 대한 복종과 순종을 얻기 위해 구질서를 이용한다. - dc App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장소확정과 질서 사이의 관련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노모스라는 말을 법률이나 <규칙>이나 <규범>이나 그 밖의 유사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옳다. 노모스는 <분할하는 것(Teilen)>과 <목양하는 것(Weiden)>을 의미하는 말인 네메인(nemein)으로부터 왔다. 따라서 노모스는, 그 속에서 한 민족의 정치적 사회적 질서가 공간적으로 가시화되는 그러한 직접적인 형상, 목초지에 대한 최초의 측량과 분할, 즉 육지의 취득과, 육지의 취득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지취득 속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 질서이다 - dc App
칸트의 말로는 <토지 위에서 내 것과 네 것을 분배하는 법률>이며, 적절한 표현인 또 다른 영어 단어로는 근본적 권원이다. 노모스는 대지의 토지를 특정 질서 속에서 분할하며 자리잡게 하는 척도이며, 그와 더불어 주어지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 형상이다. 척도와 질서와 형상은 여기서 하나의 공간적인 구체적 통일을 형성한다. - dc App
자연은 인위나 작위의 대립물이나, 이성, 감정 내지는 심정의 대립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노동과 작물의 유기적 성장은 동일물이며, 자연과 이성은 동일물이다. 트리엔트 공회의의 교의가 자연과 은총의 프로테스탄트적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는 자연과 정신, 자연과 이성, 자연과 기술, 자연과 기계의 이원론이나
이 이원론이 변전하는 파토스를 전혀 알지 못한다.
원래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저이 파이어아벤트나 읽어요
차라리 할카스를 보겠어
실제로 한 분야의 전문가 전공자가 될수록 다른 분야 바보가 되긴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능이 떨어져요 ㅋㅋ
뭐 떡밥 비꼬는 드립글임? 진심으로 쓴거라면 좀 안쓰럽네
가톨릭 교회 어쩌구 하는 거 보니 예전에 강인한 정신 운운하면서 추천글 올리던 정신병자인가보네
너만 하겠냐
난 너같이 앞장서지도 못하는 용기도 없는 찌질한 개1돼지들은 불쌍해서 측은하게 생각한다. 어찌하겠냐? 그렇게 나약하게 태어났는데. 화이팅해라ㅋㅋ그런애들은 팩트박아주면 아무말 못하고 비아냥 거리기만하지. 걍 좀 불쌍해
ㄹㅇ 이런얘들 정신승리 보면 좀 신기함. 학회 가서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독갤에서 장문의 뻘글쓰면서 진심으로 자신이 철학자라고 생각하나봄
또 그렇게 타협하고 도망치는거야? 도망자같은 인생 참 딱하네ㅋㅋ
무한동력 발명가랑 다를 바 없는 수준
우리 진기 타협했어?ㅋㅋ화이팅
설진기/ 정병 묻는다 닦고 할거 해라
ㅍㅌ) 1. 난 글쓴이랑 동일인물이 아니다. 난독새끼들 핀트파악을 못하는 걸 넘어서서 누가 누군지도 파악 못하고 있는 중 2. 이미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의 책의 내용ㅡ보편주의의 본질에 대한 해석을 다룬 부분ㅡ을 그대로 발췌해온 것이다.
이제 머라고 하면서 타협할거냐? 엄마한테 일러라ㅋㅋㅋㅋ우쭈쭈
하나라도 걸리라고 장문으로 써놨노ㅋ
이게 정신병자가 아니면 뭐냐
독갤 일동은 210.222가 좀 더 건강한 삶을 살기를 응원합니다
방구석에서 일단 모르겠고 다 틀렸다고 망상하는 시간에 누군가는 그 수학 과학으로 증기기관 만들고 GPS 만들고 탐사선 쏘고 그러는거지.. 애초에 그런 학문들이 단지 믿음에 불과하다는 발상으로는 아무것도 못함
님 혹시 아큐 환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