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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프카 작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프카 책 중 제일 읽기 쉽고 재밌다. 성의 그 이상하게 꼬여진 플롯과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서사와, 너무 다의성이 진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카프카의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소송은 매우 쉽고, 재밌으며, 생각할 거리도 많으면서, 작품성도 존나게 높게 평가받는다.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카프카의 소송을 다 읽고 나서 뒤에 나오는 신부와 K의 대화는 순식간에 독자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 첨에 k의 사형 집행 후 두근거리던 마음으로 읽다가 갑자기 나타난 이 단편에 띠용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마지막 신부와 K의 대화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는 <법 앞에서>라는 텍스트가 갖는 다의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법 앞에서>는 다양한 해석의 갈래가 나올 수 있었고, 특히 카프카라면 환장하는 포모 철학자들이 다 법 앞에서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데리다는 "결코 이해될 수 없고, 그래서 들어갈 수 없는 법"과, "문지기에 의해 끊임없이 유예되고 연기되는 법의 집행"을 통해 차연 개념과, 문학의 속성을 읽어내고, 아감벤은 시골 남자에게서 종말론적 메시아주의를 읽어낸다. 버틀러는 법 앞에서를 통해 본질이 대한 기대가 본질을 역으로 구성하는 젠더의 속성을 읽어낸다. 이처럼 법 앞에서에서 법은 해석하기에 따라 문학이 될 수도, 권력이 될 수도, 젠더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포모 철학자들처럼 엄청난 철학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텍스트를 통해 무엇을 읽어낼 수 있었나. 나는 순전히 법 그 자체를 보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라는 말이 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현실 세계의 파워 게임에서, 생각보다 법이 갖는 위력은 너무나도 약하다 . 헌법은 우리의 기본권을 확실히 박아놓았으나, 우리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폭력과 부조리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그렇다면 법의 힘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해야 할까? 간단하다. 문지기를 설득하는 것이다. 문지기들도 법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 권력의 계층구조는 끊임없이 올라가며, 어디가 끝인지조차 알 수 없다. 분노의 포도에서 쫓겨난 농부가 누구에게 총을 쏴야 하는지 알 수 없듯이, 나 역시 내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방법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주저앉는다. 문지기를 보면서. 때론 문지기를 설득하고, 때론 문지기를 압박하면서 나는 전지전능한 "법"의 힘이 아니라, 온갖 꼼수와 협상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이것이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우리 모두는 법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안다. 법의 힘은 무한하며, 결코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법은 너무 멀고 느리다. 법의 문지기들과 싸워가며 법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게 힘들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굳이 그런 복잡한 방법을 쓰지 않고 언제나 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법의 문이 열려 있지만 들어가는 대신 문지기를 매수하거나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시골 남자처럼, 우리 역시도 문지기, 그 중에서도 우리 앞에 보이는 문지기들의 사소한 하나까지 다 기억해가며 우리의 삶을 경영해가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재판을 하는 경우도 있고,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이런 방식을 통해 보상금을 얻어낸 방식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법은 언제나 맨 꼭대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신과 같은 법이 그 철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법의 사제, 혹은 법의 문지기들이 그들 나름대로 법을 "해석"해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들의 신탁을 받은 자들은 자기가 맡은 임무를 완수한다. 그들은 자신의 임무가 어떤 역할인지 정확히 알지 않는다. 물론 아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저 너무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을 뿐. 그렇게 법은, 결코 현신하지 않은 채, 그 존재 만으로 거대한 세계를 운영하고 있다.
감상 미쳤다..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