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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시오랑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읽지만, 역시 그리 취향은 아니다. 대체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삶의 허무함을 깨달을 수 없되, 그 깨달음은 결코 즐겁거나 가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읊조리는 구절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어쩌면 나는 실제로 희열 가득한 열정에 휩싸여 삶의 베일을 걷어낼 생각조차 못해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영원 앞에서는 악행 뿐 아니라 선행 역시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뿐이고, 우리가 영원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을 짧을 순간을 살아가며 유일하게 그 영원을 느낄 방법은 한 순간에서 영원을 이끌어내는 것 뿐이래도, 이런 종류의 절망이 내 몫은 아니겠거니 싶다.
유일하게 마음에 든 몇몇 구절 중 하나는 예수에 대한 것이다. 예언자와 광신자, 정신병자를 구분지을 수 있는 건 오직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를 품느냐는 말부터 시작되며, 진정으로 뜻깊은 예언은 오직 그 사람의 죽음, 이 뜻깊은 예언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값어치 없다고 여겨질 법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서만 검증될 수 있다는 가학적인 현실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도 불합리한지를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목소리. 물론 예수는 자신이 신의 아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만, 신의 아들로서 저 추잡한 인간들을 위해 죽는 것에 대해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후회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은 실제로 불쾌로 가득 차 있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망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기쁨은 고통에 비해 너무나 덧없이 지나가며 기억 속에서조차 휘발된다. 진정으로 남에게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현대에 실존주의자들이 유일하고도 명성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 다른 어떤 것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 삶이라는 과정에서 모든 것의 이유를 찾는 것. 이 세속적인 기복신앙을 믿고 따를 수야 없지만, 세상에는 딱 그 정도 의미면 살아가는 데에 족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은 흥미롭고도 재밌는 일이다.
10대나 20대에 읽다간 인생 조지기 딱 좋은 책
물론 나도 20대고 읽다가 인생 조져질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