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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에 대해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복잡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좀 쉽게 말해 봐. 너무 복잡한데. 이런 말이 반동처럼 밀려올 때.

하나하나 따지려면 너무 힘들잖아. 근데 하나하나를 따지지 않으면 하나를 알 수가 없으니.


반쪼가리 자작은 반쪽으로 쪼개졌을 때 비로소 완전무결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쪽으로 쪼개진 자작의 완전무결함은 다른 말로 하자면 곧 '일방적인 것'이다.


지나치게 하나인 사람. 지나치게 하나인 세계.

하지만 지나치게 하나일수록 우리는 그걸 불완전하게 느낀다.

그렇게 조금씩 더 많은 하나를 바라며 우리는 복잡한 사람이 된다.


어쩌면 자작이 반쪼가리인 게 아니라 우리가 여러 쪽의 인간인 걸지도 모른다.

완전한 몸뚱이의 우리에겐 이상하게도 완전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몸뚱이는 사실 수없이 갈라진 몸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가지가 달린 무수히 많은 줄기자국의 나무처럼.

우리는 여러 줄기로 있다.


결국 나무 한 그루를 다 알려면 나무에 새겨진 자국 하나하나를 다 알아야하는 셈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무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이따금 숲을 알기 위해서, 나무를 완전무결하게 만들어버릴 때가 있다.

마치 반쪽으로 잘려나가 밑둥만 남은 것처럼.


대체로 복잡한 사람들로부터,

각각의 반쪽이 겪는 반쪽짜리 경험들로부터,

그리고 그 반쪽의 반쪽이 겪는 무수히 많은 반쪽의...

두 갈래로 끊임없이 갈라지는, 반쪽들로부터...

우리는 발원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완전무결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많은 반쪽들을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반쪽짜리 이해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하다 못해 반쪽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런지.

아니면 그걸 이해하려 함으로써 우리는 또 쪼개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모를수록 더 모르고 복잡할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도 모르게 흩어진 그 수많은 반쪽들에 대하여.


열을 알아야 하나를 알 수 있는

어느 괴상한 세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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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내용은 아닌데 감상문 쓰는 게 너무 어렵읍니다

그만큼 동화스러운 내용 치고 깊이가 상당한...


내용이 그리 길지도 않고 서사가 웅장한 것도 아닌데 이 짧은 이야기 안에 담긴 깊이가 참 좋았읍니다

살면서 읽어본 중편 소설 중에 베스트에 들어갈듯


다음은 『나무 위의 남작』인데 언제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