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수상님께,
제가 논픽션은 가뭄에 콩 나듯 보냈지만,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는 우리 둘만의 대화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책이기 때문에 이 주의 책으로 선택했습니다. 박학한 지식을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세계주의적인 책이어서 역사와 국경을 힘들이지 않고 넘나듭니다. 망구엘을 지구가 한 권의 책인 것처럼, 또 자신이 그 책을 치밀하게 읽어낸 것처럼 독서와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과 일화 및 역사 문학 종교 철학 심리학 고고학 사회학 지리학에 관련된 문헌들만이 아니라 상업적이고 과학기술적인 관련 자료까지 빠짐없이 거론합니다. 이 책의 결론에 따르면, 독서가 만사(everything)입니다. 모두가 책을 읽는 독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더구나 그렇지도 않잖습니까. 오히려 세계, 또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일종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망구엘은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인용합니다.
모든 대상에는, 산, 나무 그리고 별ㅡ이 모든 생성과
죽음에는
서로 의미의 한 부분으로서ㅡ서로에서 진화한 존재로ㅡ
각각의 표면
뒤에는
비밀의 신비한 암호가 고스란히 오므린 채 기다리고 있구려.
(휘트먼,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휘트먼은 우리가 가진 오감을 짜릿하게 해주는 시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로써 독자에게 삶의 활력을 더해주는 시인입니다.) 세상은 책처럼 해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독자가 탐정소설을 읽듯이 고생물학자는 화석을 읽으며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로맨스 소설을 읽듯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읽으며, 그의 표정에서 위안과 안정을 얻습니다. 또 신자가 경전을 읽듯이 정치인들은 여론조사를 읽으며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라고 고민합니다. 독자가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어떤 책을 끝까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다른 책, 또 다른 책을 찾다가 결국에는 독서 장애가 오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지듯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심지어 어린아이라도 세상을 읽을 가치가 없다고 외면하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집니다. 책과 세계, 둘 모두에는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요컨대 '오므린....암호'가 있습니다. 그런 미스터리에 푹 빠져서 헤엄치고 거의 익사할 지경이 된다면 얼마나 재밌겠습니까! 망구엘의 책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특이하고 흥미로운 사실을 대거 인용함으로써 우리가 특이하고 흥미로운 종이라는 걸 흥겹게 입증해준다는 장점이 특히 눈에 띕니다.
좋은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독자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도를 유지하는 긴 실에 비유됩니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독서의 역사』는 다채로운 색깔의 짧은 실들로 구성되어 간헐적인 독서로도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망구엘의 문체는 느긋하고 유려해서 많은 소재들을 무리 없이 연결 시킵니다. 『독서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나들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작품입니다. '나'를 앞세운 망구엘의 매력적이고 도시적인 목소리가 은밀하게 끼어들며 독자로서의 길고 만족스러운 삶에서 얻은 경험이나 일화를 전해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독서 자체는 순전히 개인적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에 쓰인 관사를 눈여겨 보십시오. 부정관사가 쓰였습니다. 따라서 정확히 해석하면 '독서의 모든 역사'(The history of Reading)가 아니라 '독서의 한 역사'(A History of Reading)입니다. 이처럼 부정관사를 선택함으로써 망구엘은 독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하나, 즉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해석하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망구엘이 말하는 독서의 역사는 수상님이나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역사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가 말하는 독서의 역사는 풍요롭고 다양하며 재밌습니다. 수상님께서 생각하는 독서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다음에 보내는 편지와 책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얀 마텔 드림
알베르토 망구엘은 편집자, 번역가이면서 수필과 소설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대표작으로는 『독서의 역사』 『상상의 장소에 대한 사전』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십 대 후반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고, 1982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1월, 『독서의 역사』(정명진 옮김/세종서적)으로 출간되었다.
읽은 책 :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저, 강주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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