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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다시 훑어보니 너무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중2병같다.. 마르크스는 대중문학 소설가의 소질이 매우 뛰어난것같다 막 설레

부르주아지는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인 제 관계를 모두 파괴하고 적나라한 금전관계로 대체시켜버렸다.(본문 중)

ㄴ배금주의의 황충인것마냥, 고전가치를 퇴색시키는 것은 진보와 보수조차아닌 퇴화임을 더더욱 확신하게한다, 신인류로 거듭나기에 자본이 장애물인지 아닌지는 가름하기 어려우나 퇴보의 이유는 자본이 불러온 사람의 과도한 자유인 탓이 아닐까 조심히 유추해본다. 덧붙여 설명해보자면 사회시사 중 나는 대리만족과 더불어진 소비의 단축이 크게 신경쓰인다, 소비시장의 극단적인 발전이 소비시간마저 단축시켜버린것이다, 간단히 유튜브나 sns의 그다지 심각해보이지 않는 사례들이 우후죽순들 사회에 있지만 문제를 야기할것이라곤 생각들지않는다만은 말이다. 후세인들이 지금을 바라보았을때는 다를수도 있겠지

-역설적으로, 타인이 있어봐야 자신이 귀한줄 아는것과같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당선언은 무엇의 모티브였을까싶다. 이도저도 아닌 노동에 지친 사람의 한 탄식일수도있으려나

늘어가는 기계 사용과 분업으로 말미암아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자립적 성격을 모두 잃어버렸으며, 이와 더불어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온갖 매력을 잃어버렸다. 노동자는 기계의 단순한 부속품이 되고,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단조로우며 가장 배우기 쉬운 동작뿐이다. 따라서 한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은 거의 모두 그 자신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에 국한될 뿐이다. (본문)

ㄴ 살기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비참한 법이다. 그래도 쓰레기 더미속에서도 피어나는 붉은 장미는 있을법하다. 더더욱 비참할지라도

-자본에 대해 생각해보니 누구나 화수분을 소유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실존하는 물질은 해소되지 않는 인간의 어느 욕망과는 달리 물질의 소유만으로도 채워질 수 있는 이른바 본능충족선이 있다고 느끼는 바이다. 그렇기에 현대발전에 감사할 따름이다. 무소유?

노동자 대중은 공장에 집결하여 군대식으로 편성된다. 산업 군대의 병사인 노동자 대중은 수많은 장교와 하사관들로 이루어진 완전한 위계 질서의 감시 밑에 놓인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마다 시간마다 기계와 감독, 무엇보다도 개별 부르주아 공장주에 의해 노예가 된다. 이 전제(專制) 제도는, 영리가 궁극적인 목적임이 노골적으로 선언되면 될수록 더욱더 인색하고 증오스러우며 잔인하게 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분업화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본다. 본래부터 있어오지않았는가 부르주아와는 별개로 계급일반의 문제이지않나 음 아니 생각해보니 둘다 동일맥락으로 보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