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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사에서 가장 이상화된 시대를 꼽으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아테네를 꼽을 것이다. 옛 중국인들에게 요순 시대가 그러했듯, 아테네는 늘 애매하게 알려진 자료와 보기 좋은 사상, 그리고 근본이 주는 매력으로 다가오곤 했다.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의 요람, 부유하면서도 평등한 도시국가, 모든 사회가 최소한 본받고자 노력하기는 해야 할 문명의 원류. 하지만 이런 국가에서 어떻게 소크라테스를 죽일 수 있었으냐고 묻는 순간 조금 이상해진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들을 뒤져보더라도 그 시절 소크라테스를 고발할 수 있을 만한 분명한 범죄 항목이 딱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시절 아테네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가? 우리는 아테네에 대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아테네의 변명>은 아테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에 걷힌 안개를 어느 정도 걷어내는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어린 시절 무렵의 아테네부터 시작해서, 이 도시국가가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제도를 보듬고 아꼈는지, 아테네에서 그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이 아테네에서 어떤 의미를 점차 갖게 되었는지 등등을 좀 더 면밀한 자료와 분석을 통해 아테네라는 거대하고도 자세한 그림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소크라테스를 위치시킨다. 이렇게 해야만 소크라테스라는 유명하지만 스스로 글을 남긴 바 없는 인물을 제대로 묘사해낼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염려도 함께한다. (플라톤이 과연 소크라테스의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던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비교적 소크라테스라는 개인을 일반적인 렌즈에서 벗어나 바라볼 수 있도록.



물론 아테네와 그리스 문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있던 바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바라본 그 옛날 아테네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다시 한 번 민주주의적 선진국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위선을 그 먼 옛날부터 미리 보여준 것만 같았다. 또는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정확히 그 이유로 아테네 역시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면에서 페리클레스는 참 잔혹하게도 명석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영광이 그들을 결과적으로 위대하게 만들 것임을 알았다. 딱 그 정도의 가치 뿐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영광을 사람들에게 벗겨냄으로서 국가가 쇠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 차원의 위선이 국가적 차원의 자원이 된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선악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이 영광을 벗겨내려던 사람이기도 했으리라.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단순히 질서에 순응하는 삶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 질서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에게 정말로 무엇을 의미했었는지, 그가 의문시했을 아테네의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이었을지, 그리고 그가 아테네의 질서에 순응하려는 것이 아테네의 시민들을 위해서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의 기나긴 아테네 여정의 끝이리라. 비로소 날것 그대로의 아테네를 마주했으니, 남은 것은 다시 또 씁쓸한 감상이다. 어쩌면 이것은 고약한 여행자의 취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곳,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들이 전부 자신의 생각보다는 안 좋은 곳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