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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는 당시 영국 문단을 정확히 강타해 세간에 파장을 일으킨 풍자 소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폐부를 찌르는 통렬한 풍자소설이라고 는 느끼지 못하였다. 사실 풍자소설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풍자라고 거의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는 내가 태평천하도 읽지 않은 풍알못인 탓도 있거니와 당시 영국 사회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거리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 지금 한국 문단을 대상으로 이런 소설을 쓴다면 나는 엄청난 풍자소설로 느낄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는가? 오독일 수도 있지만 한 작가의 성장소설로 읽었다.


로이로부터 드리필드의 정보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셴든은 회상을 시작한다. 회상은 지극히 주관적인 일이다. 기억은 종종 왜곡되기도 하며 있지도 않은 사실이 첨가되기도 한다. 소설의 대부분을 1인칭 화자의 회상으로 채운 것은 단순히 위대한 작가의 뒷사정을 기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는 아마 작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타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작중 중반에 일인칭으로 서술한 목적을 드러내기도 한다(“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의식하기 마련이니 작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것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일인칭 시점은 이 제한된 목적에 한해 대단히 유용하다.”p.210). 하지만 작가는 최대한 타인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기에 작중 화자인 어셴든의 직업이 작가임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누군가에 대해서 회상한다는 것은 그를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관계된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셴든의 회상은 타인을 토대로 자신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신은 아니지만 신이 되어보려는 작업이다.


작중 대부분의 회상의 대상은 드리필드의 첫 번째 부인인 로지이다. 목사인 숙부 밑에서 자란 신사 어셴든에게 로지는 위험하면서 매혹적인 인물이다. 그는 로지의 밀회와 야반도주에 혼란을 느끼며 그녀의 육체와 달 같은 은은한 광채에 빠져든다. 그렇게 그는 억압된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조지 켐프랑 달아나며 로지는 그에게 한동안 미결로 남게 된다. 그녀는 꾸밈없이 솔직하지만 가장 불가해한 인물이다. 그녀는 맑은 물 같은 사람이지만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드리필드가 위대한 작가가 됨에는 든든한 후원자인 트래퍼드 부인의 영향이 당연히 크겠지만 로지의 영향이 막대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평생 로지를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익사하더라도 깊은 물에 들어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바닥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생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의 가장 불가해한 순간을 소설로 써냈을 것이다. 어셴든도 마찬가지다. 작중에 그가 작가가 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나는 그가 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가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녀는 그에게 평생의 숙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글로 장악했다. 그렇게 그는 자유인이 됐다(“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P.295). 그녀의 나이 70이 넘었을 때 그와 다시 만나게 된다. 작품의 마지막 그는 조지 켐프를 좋아한 이유를 묻는다. 그녀는 그가 언제나 완벽한 신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끝난다. 어셴든은 다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싫어했던 인물을 그녀가 완벽한 신사라고 생각했음에, 또한 깨달았을 것이다. 작가는 신이 아님을. 그렇게 로지가 진정한 작가임을 알게 됐을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소설을 싫어한 이유도 읽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완장님 감사합니다. 리뷰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