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하루키의 책을 몇 권 읽는 편이었다. 상실의 시대로 처음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과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등을 제외하고도 몇 권을 더 읽었으니 내가 이름을 알고

책을 선택하는 몇 작가중에 하나였다.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 7~8년 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를 노르웨이의 숲으로 읽어보니

이전보다 소위 말하는 하루키스러움에 대해서 느껴지는 바가 있다.

휴학을 하고 심심하게 있던 나에게 이 소설은 쉽게 읽히며 다시 활자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의미가 커서

통상의 평가보다 과대평가를 할 수도 있으니 향해바람


노르웨시의 숲은 스토리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들의 성격이 특이한 것도 아니지만

읽고 난 후에는 섹스씬 밖에 생각이 안나는 그런 소설이다. 적어도 중학교 시절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이가 든 후에 읽어보니 "특공대"가 나오는 반딧불이에서 끊기는 자연스러운 단편도 눈에 보이고

하루키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뭔지에 대해서 약간은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나는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서 사회적 구조의 변화에서 늘어가는 20대의 허무주의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허무주의를 경계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탐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은 죽음으로 이어져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 다만 모두가 죽는다고 허무한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운명적으로 죽고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하고 사랑하는 행동을 상실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곁에 두고서도 20대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들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죽은이를 기리며 지우고 좌절하지 않고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이같은 점에서 하루키는 섹스신만 기억나는 소설 속에 20대를 위한 응원을 녹여냈고

하루키 신드롬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보통의 존재들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라는 메세지가 담겼기 때문

하루키의 문체가 지극히 상업적이긴 하지만, 돌려 말하면 킬링타임용의 소설로는 완벽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힘들지 않더라도, 시간내어 한번 읽어본다면 언젠가는 소설의 글이 격려를 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