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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고양이를 안은 레이먼드 챈들러.>

1. 레이먼드 손튼 챈들러(1888~1959)는 미국의 작가로 새뮤얼 대실 해밋(1894~1961)과 함께 탐정 소설의 하위 장르인 하드보일드를 정립하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탐정이 등장하는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에서 그가 창조한 사립 탐정 필립 말로는 아서 이그네이셔스 코난 도일 경(1859~1930)이 창조한 불멸의 캐릭터인 셜록 홈스와 함께 이른바 탐정 캐릭터의 이미지를 양분하고 있다. 홈스가 대부분의 분야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올라운드형 탐정이라면 말로는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온갖 인간 군상을 만나서 때로는 냉소적이고 거칠며 다소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행동파 탐정이다.

2. 본론으로 돌아와서 챈들러의 삶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챈들러는 188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성장은 영국에서 했으며 20대 초반에는 연금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영국군에서 복무했지만 곧 그만두고 자신이 태어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 뒤에 석유회사에 입사하여 부사장까지 올라갔고 연인이자 아내가 된 18세 연상의 여성 시시를 만났다.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었고 좋지 못한 스캔들로 결국 44세에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본인이 즐겨 읽었던 잡지인 「 블랙 마스크」에 "협박범은 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을 투고하여 게재하고 본격적으로 탐정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그 뒤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필립 말로 시리즈로 간주되는 장편 소설인 <빅슬립>(1939), <안녕, 내사랑>(1940), <하이 윈도>(1942), <호수의 여인>(1943)을 연달아서 발표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탐정 소설가로 자리잡게 된다. 이 시점에서 챈들러의 삶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 바로 할리우드 영화의 각본가로 참여하여 활동하게 된 것이다. 6년 동안의 각본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쓴 빅슬립, 느와르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중 배상의 각본을 쓰거나 각색해서 많은 명성을 얻었지만 빌리 와일더와 같은 영화 감독들과의 의견 충돌, 지나치게 상업적인 성향의 제작자들과 그 시스템, 자신의  각본이 지나치게 수정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챈들러는 할리우드에 환멸을 느끼고 본인의 본업으로 복귀한다.

3.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집필하게 된 작품이 바로 <리틀 시스터>(1949)로 해당 소설에는 할리우드에 대한 대단히 비판적이면서도 신랄한 묘사가 잔뜩 이어지며 작품의 주요 소재로 활용되기에 이른다. 또한 챈들러의 후기 걸작으로 칭송이 되는 <기나긴 이별>(1953)까지 발표되고 에드거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면서 변함이 없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렇지만 1954년에 이전부터 그를 괴롭혀온 알코올 의존증이 재발을 했고 고령이었던 아내 시시의 사망 등으로 챈들러는 삶의 의욕을 잃어갔으며, 병원에 자주 입원하고 자살 시도를 하는 것과 같이 순탄하지 못한 말년을 보냈다. 4년이 지난 1958년 마지막 장편 소설인 <원점회귀>를 출간하였고 유작인 <Poodle Springs>를 집필하던 1959년 3월 26일에 챈들러는 7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4. 다음으로 챈들러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챈들러는 주지하다시피 자신보다 5세 연하이지만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선구자인 대실 해밋을 존경했고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거기서 더 나아가서 필립 말로라는 개성적이고 걸출한 캐릭터 창조를 통하여 매력적인 묘사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작품들을 남겼다. 말로가 작중에서 내뱉은 독백과 시니컬한 태도, 집요할 정도의 인물 묘사는 이미 후배 작가들에게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을 제시했고 그야말로 마르지 않는 '클리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서, 필립 말로 이후 창조되고 등장한 미국식 느와르와 추리물에서의 형사 또는 사립 탐정들은 대부분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한 평론가가 "말로 이후로 얼마나 많은 전직 수사관이 말을 안 들어 쫓겨난 후 사립탐정이 되었는가!"라 한탄할 정도였으니까.

5. 이상으로 레이먼드 챈들러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챈들러가 미스터리 문학사에 가지는 위상은 어떠할까?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탐정 소설이 사람들이 단순하게 웃고 즐기는 오락물에서 까다로운 평론가들도 수긍할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어엿한 문학으로서 자리잡았다고 애기한다. 물론 정말로 그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별세한지 6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여전히 꾸준하게 읽히고 인용이 되는 것을 보면 챈들러가 남긴 문학은 이제 당대의 "유행"이 아닌 영원한 "고전"으로 남게 되었다고 필자는 과감하게 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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