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SLv2YEvWY4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Maundy Thursday) - 이별곡 (Etudes Op.10, No.3 )

#영화ost #영화사운드트랙 #soundtrack #영화우리들의행복한시간 #영화우행시 #MaundyThursday #이별곡 #어게인리그렛 #Again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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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65914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공공도서관 대출 1위 “죄와 벌”

올해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많이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최근 3년간 《죄와 벌》이 가장 많이 대출됐다. 출판계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작품의 재출간, 연구서 발간 등이 활발했다.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레프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1821년 11월 11일에 태어난 그는 1846년 로 소설가로 등단했다.국립중앙도서관(관장 서혜란)이 올해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최근 3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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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살짝 낚시인게 


2021년이 탄생 200주년이라 공공도서관에서 해당인의 책들 중 어떤게 대출 1등인가 봤더니


죄와 벌이였다는


근데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1) 러시아어 원어로 치면 죄를 짓다가 "한발 더 나가다" 뭐 이런 개념이라고 함  진작부터 러시아인들이 아시아적인 면이 있다 생각했는데 동북아시아 개념으로 말하자면 죄를 짓다가 중용, 밸런스를 깨고 과하게 하다, 엇나가다 뭐 이런 느낌이 듬


그리고 아래 교수님이 언급한 것처럼 벌이 죄인에 대한 치유, 자각 이런 것을 좀 현대 사회에서는 간과하는 것 같다고나 물론 피해자 입장이 우선하는게 이치에 맞긴 하지만

https://youtu.be/BaW773yron8

『죄와 벌』이 보여주는 '죄'와 '벌'의 의미 -이현우(서평가, 한림대 교수)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의 대표작 『죄와 벌』 (Prestupleniye i nakazaniye, 1866)의 제목에서 말하는 ‘죄’와 ‘벌’은 무엇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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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스콜리니코프가 유대인 부자 노파를 살해하다 어떨결에 선한 그녀의 여동생을 죽이는 장면은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대로 베꼈네 ㄷㄷㄷ 뭐 오마주라면 오마주겠지만 공지영은 인터뷰 찾아보니 언급 잘 안한 눈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YES24

https://mnews.imaeil.com/page/view/2022110915174735438



https://magazine.hankyung.com/money/article/202101206010c


소설 <죄와 벌>은 흔히 죄의식을 탐구한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는 다른 인간들로부터의 끔찍한 격리를 느낄 뿐이다. 이 책이 1866년에 쓰였지만, 카뮈와 베케트로 이어지는 20세기 ‘고독의 문학’의 위대한 선조로 평가받는 이유

(중략)

표트르 대제는 1703년 러시아를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수도를 옮기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이곳이 이른바 성 피터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다. 365개의 다리가 놓인 러시아의 베네치아

(중략)

수많은 사상과 문화, 예술이 유입되는 도스토옙스키와 차이콥스키의 제2의 고향이자 유럽의 창

(중략)

그러나 1861년 러시아의 농노해방을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밀려드는 대중으로 인한 열악한 주거난과 실업 문제, 이로 인해 야기된 매춘과 고리대금업 등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혼란과 균열

(중략)

무덥던 7월의 어느 날, 한 청년이 집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다. 창녀촌이 운집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복판에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사람들

(중략)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언제든 돈을 빌릴 수 있는 유대인 못지않은 부자이지만 아주 인색한 전당포 노파에 대한 생각뿐이다. 이 청년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계획으로 머리가 복잡

(중략)

청년이 보기에 노파의 삶은 바퀴벌레나 이(蝨)만도 못하다. 거리에는 가난한 청년과 삶에 찌들어 미래를 포기한 대학생, 돈이 없어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자, 매춘을 마다하지 않은 가난한 여성들로 가득

(중략)

전당포 노파가 죽어 그 돈이 다른 곳에 쓰인다면, ‘어쩌면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

(중략)

 라스콜리니코프다. 우울증 환자처럼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청년.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이렇게 말이 없고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다. 몇 달째 방세가 밀려 있고, 집주인과 부딪힐까 봐 두려워

(중략)

어쩌면 나폴레옹 같은 변화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고 싶었을지도 

(중략)

안녕하세요? 알료나 이바노브나”라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심술궂은 노파는 한 청년의 불안한 낯빛을 발견하자 언제나 그렇듯이 조롱

(중략)

손까지 떨고 있었다. 심지어 노파가 이런 상황을 꼭 짚어 가며 “이상하다”고 말하자 청년은 현기증에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무참히 살해

(중략)

가득 차 있던 노파의 돈은 챙기지도 않았다. 제 몸을 추스르기도 어려웠

(중략)

 <죄와 벌>만큼 잘못 이해되는 작품도 없다. 벌레만도 못한 노파를 대신할 수 있다는 몽상을, 관념적인 청년의 사유 정도로 곡해하는 논의가 적지 않다. 그러나 <죄와벌>의 문면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생각만큼 철학적이거나 관념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불안하고 소심한 청년

(중략)

그저 그는 당시 유럽에서 풍미하던, 세상은 범인과 비범인으로 나뉘며,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한 사람의 행위는 사회를 더 낫게 만든다는 초인사상에 사로잡혀 있을 뿐

(중략)

비참한 상태를 넘어서고 싶었던 청년, 부활과 구원을 상상했던 대학생. 그러나 그 몽상이 악행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시간이 

(중략)

<죄와 벌>은 마지막까지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벌인지 묻는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벌’이란 말인가. 라스콜리니코프의 재판 과정만 참고하면 그가 행한 죄는 노파를 죽인 것이고, 그가 받은 벌은 살인에 해당하는 죄이나 그가 평소 행한 행동 등이 정상참작 돼, 7년간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벌이 내려진다. 누가 보더라도 약한 처벌

(중략)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게 이 소설의 목적이 아니다. 청년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죄이고 벌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소냐’를 통해서만 죄가 무엇인지 겨우 짐작

(중략)

소냐는 “노파가 가진 가치를 저울질하며 삶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생명은 그 어떤 다른 가치를 통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

(중략)

노파의 삶의 길이를 판단하는 것은 어찌됐든 궤변이며 변명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한 인간의 가치를 돈이나 능력 등의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선다는 소박한 진실이 그것

(중략)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분명한 것은 186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빈민가, 선술집, 매춘굴 속에 얽혀 있는 악취와 소음, 증오와 분노, 불안과 공포가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찌됐든 라스콜리니코프의 비극은 186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비극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04760/20200615/%EC%A3%BC%EC%9D%BC-%EC%98%A4%EC%A0%84%EC%97%90-%EC%9D%80%ED%98%9C-%EB%B0%9B%EC%9D%80-%EB%92%A4-%EC%A0%80%EB%85%81%EC%9D%B4%EB%A9%B4-%EB%8B%A4-%ED%9D%98%EB%A0%A4%EB%B2%84%EB%A6%AC%EC%A7%80%EB%A7%8C%E2%80%A6.htm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살인은 죄가 아니라 영웅적 행동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죄책감은 없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본인이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살인은 이론이 아니라 삶이었다. 소설의 대부분은 그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제목대로 그의 행동은 '죄'였고, 그가 받는 고통은 '벌'

(중략)

소설 속 또 다른 주인공은 소냐(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다. 살인을 계획 중이던 라스콜니코프는 알콜중독자인 소냐의 아버지(세묜 자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에게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

(중략)

 소냐는 억울하게 해고를 당한 후 일을 구하지 못했다. 집에는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폐병에 시달리는 계모. 계모가 데려온 어린 동생 세 명이 있다. 

(중략)

가족을 위해 매춘부가 된 소냐. 그녀에게 '순결(純潔)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이론이고, 이복동생들을 먹일 '빵 한 조각'은 삶이었다. 그녀는 이론을 따라 살지 않았다. 가족을 위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중략)

그녀에게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찾아와 살인죄를 고백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그를 위해 울어주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자기 자신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어요! 지금 온 세상을 통틀어 당신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어요!!" 라스콜니코프를 안고, 목 놓아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