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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잔티움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다. 그 당시 도서관에 있던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의 <비잔티움 연대기>를 읽고, 그 장엄한 역사에 매료된 것이다. 나는 그 후로 비잔티움을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고토를 수복하고자 온 힘을 쏟은 유스티니아누스, 제국을 멸망에서 건져낸 이라클리오스, 크킹황제 바실리오스, 무로부터 기적을 일군 테오도로스, 자기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한 콘스탄티노스. 이들의 인간군상에 완전히 반한 나는, 몹시 흥미를 느끼고 더 깊이 들어갔다.
대략 몇 개의 왕조 이름은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었을 때쯤, 인물을 넘어서서 비잔티움 문명이 대략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 그리스, 기독교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비잔티움의 독창적인 문명. 책 표지의 말처럼, 비잔티움은 진실로 문명의 용광로였다. 학교에서는 일리아스를 외우고 교회에서는 이콘에 입 맞추고 법정에서는 로마의 법을 들었던 사람들의 세상.
많이들 간과하지만, 이 세 요소는 결코 쉽게 섞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했다. 가져올 것은 가져오고 시대에 맞지 않게 된 낡은 것들은 버리며, 아름다운 융합과 재창조를 통해 독자적 문명 구축에 성공했다. 그렇게 이 세 요소는 비잔티움 문명의 줄기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줄기가 살아남으려면 조건이 있다. 뿌리가 죽으면 안 된다. 비잔티움 문명의 뿌리는 홍수를 수없이 버텨내고 꿋꿋이 땅에 자리를 잡았다. 비잔티움은 7세기 이슬람으로 인한 대규모 영토 상실에도 살아남았다. 717년 아랍의 10만이 넘는 대군에도 살아남았다. 아나톨리아를 다 날려 먹었는데도 다시 중흥했다. 심지어 십자군에 멸망했는데도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330년부터 1453년까지-그러니까 고구려 미천왕부터 세조 때까지, 역사가 이어졌다.
그렇게 뿌리가 굳건하고 줄기가 싱싱했기에, 비잔티움은 역사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서유럽사의 경우 조금 깊게 파다 보면 비잔티움 이야기가 나온다. 보편공의회, 르네상스 등등. 그런가 하면 동유럽사의 경우 삽을 한 번만 박아도 비잔티움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을 개수해 나폴레옹의 민법전이 만들어졌고 그건 그대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아토스 산의 수사들, 경탄을 자아내는 이콘, 경건한 수도원, 로마네스크 양식, 모자이크화는 전부 비잔티움이 남긴, 아직까지 살아 숨쉬는 독창적 유산들이다. 동유럽과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진 우리 집에서조차도, 몇십 분 지하철을 타고 가면 정교회 성당이 있고 그 안에는 여전히 신자들에게 공경 받는 비잔티움 양식 이콘이 있다. 그러니 현대 세계에서도 살아 숨쉰다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이런 식이기에, 유럽 역사를 잘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고 한번 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추천하는 편이다.
비잔티움의 상세한 역사는 이 책으로 다 알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1천 년이 넘는 비잔티움의 통사를 다루기 위해 오스트로고르스키는 736쪽을 써야 했고 워렌 트레드골드는 1천 44쪽을 써야 했는데, 이 책은 원서로 300쪽이 안 되니까. 계속 공부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공부의 레이스에 있어 아주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마구잡이로 공부할 걱정은 덜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훌륭한 책을 출판해준 더숲 출판사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넘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좋은 리뷰! 출발점으로 이 책 읽어봐야겠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