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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코스키의 책 중 ‘고양이에 대하여’와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고 쓴 글이다. 부코스키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부코스키의 작품 전체를 다 읽어보고 난 다음에 이야기 하는 것이 맞고 실제로도 그것이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어떤 작가는 시기별로 인상이 확확 바뀌는 것은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작품 성향도 180도 바뀌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어떤 작가들은 그 작가의 작품이 주는 인상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절대로 그 인상에서 벗어나는 성향의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고 실제로도 그런 일관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을 작가들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 부코스키는 명백한 후자의 경우다. 그래서 부코스키의 책을 2권 읽은 지금 부코스키에 대해 느낀 감상을 쓴다. 만약 후자의 경우가 아니었고 부코스키의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감상을 받는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즐겁게 깜짝 놀랄만한 일이 아닐까…. 아무튼.
부코스키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작가다. 이 양반은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어떠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진솔하고 (가끔은)당당하게 써내려가는 작가다. 마치 “나 지금 의자에 앉아서 담배피고 와인 빨면서 타자기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인데 똥마려!”라는 글을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 같았다. 그렇다고 이런 얘기만 하는 작가란 뜻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진솔하고 가끔은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라는 뜻이다.
다른 작가들이 부코스키와 똑같이 의자에 앉아서 책상 위에 있는 타자기를 두들기며 온갖 환상들과 각운이니 론도, 운율 등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궁리할 때, 부코스키는 그딴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부코스키에게는 그저 자기 앞에 타자기가 놓여있고, 자신은 그걸 두들길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부코스키에게는 오직 그것만이 현실이고, 나머지는 다 허상일 뿐이다. 마치 디오게네스가 ‘책상다움’과 ‘술잔다움’은 지금 내 눈 앞에 안보인다고 플라톤을 비웃으며 말했던 것처럼.
이 인간의 글은 그만큼 정직하다. 부코스키가 씨발같다거나 인생은 개씨발 같다고 썼다면 실제로 씨발같거나 인생이 개씨발 같아서 썼을 것이고, 섹스하고 싶다고 썼다면 섹스하고 싶어서 그렇게 썼을 것이고, 똥오줌에 대해서 썼다면 실제로 똥오줌이 마려워서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이런 부코스키에게 소재가 천박하다거나 너무 과격하다거나 차별이 보인다거나 하는 비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코스키는 사진과도 같은 작가라서 그저 자기 자신이 겪은 걸 사진처럼 썼을 뿐이니까(실제로 이런 비난에 부코스키는 자신의 인생이 그래서 그렇게 썼다는 식으로 항변하곤 했다). 거기에 삶을 버텨내기 위해(책을 읽다보면 자살할까 생각했다는 글도 꽤 나온다) 필수적으로 익힐 수 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유머를 한수저 담아서.
덧붙여서, 이 양반이 했던 유명한 말인 작가란 글은 쓰는 순간에만 작가이고, 나는 타자기 앞에 앉은 순간에만 작가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란 글을 쓰는 존재이고, 글을 쓰는 순간에만 작가이니까.
이런 의미에서 부코스키에게 생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아닌(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강연이니 시 낭독회니 그런 것들은 나가서 과시하는 걸 좋아하고 무리짓는 걸 좋아하는 작가들은 작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들이고 글을 쓰고 있을 때만 작가인데, 글을 쓰고 있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니까. 그들은 글을 썼던, 작가였던 사람들이지(실제로 이런 뉘앙스의 글을 쓰기도 했고 저런 작가들이었던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것도 좀 많이).
암튼 요 근래에 베베 꼬이고 복잡한 글만 읽다가 부코스키의 글을 읽으니까 매우 즐거웠음. 들여다 보는 대로 들여다 보이는 느낌이었고.
들여다 보인대로 보인다고 깊이가 얕다는 뜻은 아님. 난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각 각자의 깊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일 뿐더러, 부코스키의 진솔성이, 마치 투명한 물 같아서 물이 깊더라도 그 바닥까지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느낌임.
읽으면서 즐거웠음.
호불호는 확실히 갈릴 수 있다만 한번 쯤 읽어볼만한 가치를 지닌 작가임에는 확실함.
글고 말년에 쓴 글들을 보면 굉장히 오묘한 빛을 띄는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작가인 부코스키가 죽음이 자신의 앞에 찾아온 걸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뭔가 깨달은 것 같은 느낌까지 줌. 말년에 쓰인 글들을 보면 거의 최고에 가까울 정도임. 10년만, 아니 5년이라도 더 살았다면 뭔가 더 대단한, 기념비적인 걸 썼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음. 아깝다….
짤 뭔지 알려줄 수 있어?
폐도의 이야기 - dc App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