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야 '아동 문학이니까 그럴 수 있다'로 시작하겠지.
그런데 그 다음은? 뭐가 '옳게' 바뀌는 건데?

단테의 신곡에는 기독교적 신념이 짙게 깔려있어서 열애나 동성애 등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매몰돼 행동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묘사 되는데 그게 현대인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지.
그러면 단테가 규정한 죄인들을 천국에 갔다고 묘사해야 하나? 바꾸는 김에 히틀러도 지옥에 쳐넣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검둥이란 비하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조연 짐조차 '멍청하지만 착한' 흑인 노예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와. 거기다가 핀이 팔려버린 짐을 구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도 그게 옳기 때문이 아닌, 친구이기 때문에 한 거란 말이지.
그건 현대인의 시각으론 옳지 못해. 그렇다면 깜둥이란 표현을 다 지우고, 짐을 주체적이고 자기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인물로 바꾸고, 허클베리 핀을 무지했지만 짐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흑인 노예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면 '옳은' 내용이 될까?

지금 비꼬는 식으로, 과장해서 수정 방식에 대해 비판했지만 사실 적절하게 표현 몇 개를 수정했어도 문제가 돼.
왜냐하면 고침으로서 원작이 원작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혹자는 원작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만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할지도 몰라.
아, 표현의 자유. 중요하지.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려면 남의 알 권리도 존중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읽고 싶은 건 원작자가 쓴 글이니까 'ㅇㅇ이 고친 개정판'으로 따로 책을 내면 되는 거잖아?

왜 개정판은 되고, 원작을 고치는 건 안 되냐고?
'고친 이야기'라는 것을 전자는 알고 읽을지 말지 선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후자는 알기도 힘들고 선택할 수도 없거든.
쉽게 말해, 하루키 책인데 '편집자가 성적인 내용을 포함한 각종 부분을 지우고 고친 뒤 그 사실을 적어두지 않아서' 원래 하루키 책과 완전히 달라진 책인게 버젓히 원서로 나오게 된다는 거야.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돼.
1. 이번 사건을 묵인하면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더 심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2.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알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
3. 알 권리를 보장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건 자유고 현재도 많이들 하는 방식이다.
4. 그렇지만 이번 건 알 권리를 침해하는 표현의 자유고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기에 용납해선 안 된다.

읽어줘서 고맙고, 의견 있으면 댓글로 남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