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이그네이셔스 코난 도일 경(1859~1930)[이하 "코난 도일이라고 한다."]은 미스터리 문학사에서 커다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코난 도일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그의 대표작인 "셜록 홈스 시리즈"와 관련하여 탐구해보려고 한다. 코난 도일은 1859년 5월 22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2남 7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찰스 앨터몬트 도일(1832~1893)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의 후손인 잉글랜드인이었으며 어머니 메리 조세핀 폴리(1832~1920)은 아일랜드 출신의 가톨릭 신자였다. 다시 말해서 코난 도일은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다. 코난 도일은 본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의사로서 안과 분야를 진료하는 의원을 개업해서 운영했다. 하지만 코난 도일의 안과 의원은 워낙 손님이 없어서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었다. 당시 세무서로부터 의원 운영과 관련된 수익을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내용의 서류를 받았으나 "손님이 없어 한푼도 못 버는데 낼 돈이 어디 있겠냐"라는 답장을 보냈으며 이와 관련하여 세무 조사원이 직접 방문하여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했으며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이 알려져 있다.
어쨌든 손님이 없어서 시간이 잔뜩 남았던 코난 도일은 탐정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얼마 뒤 자신이 완성한 장편 소설을 <비튼의 크리스마스 연감>이라는 제목의 잡지에 투고했으며 이 작품을 1887년 12월에 게재하여 발표했는데 그 것이 바로 미스터리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진 작품인 "셜록 홈스 시리즈"의 시작인 <주홍색 연구>였다. 코난 도일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890년에 두 번째 장편인 <네 사람의 서명>을 발표했다. 두 작품은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작가로서 유명해지자 본업이었던 안과 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도 크게 늘어나는 선순환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업 작가로서 활동하지 않았다. 코난 도일이 전업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조지 뉸스가 중심이 되었으며 1891년 초에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월간지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장 헐버트 그린호프 스미스의 권유를 받은 뒤 셜록 홈스 시리즈의 단편을 꾸준히 연재했고 그러한 단편 12개를 정리한 뒤 다음 해인 1892년에 간행한 첫 번째 단편집 <셜록 홈스의 모험>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코난 도일은 전업 작가로 전향한 뒤에 추가적인 연재를 통하여 12개의 단편을 집필했고 이러한 결과물들도 자연스럽게 단편집의 형태로 1894년에 간행되었는데 바로 <셜록 홈스의 회상록>이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의 회상록>의 마지막 단편인 [마지막 사건]을 통하여 셜록 홈스가 그의 최대의 적인 수학자이자 악당인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와 스위스의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함께 떨어지면서 실종되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셜록 홈스 시리즈의 연재를 종료해버렸다. 이와 같은 결정은 셜록 홈스 시리즈가 연재된 잡지인 스트랜드 매거진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입혔고 동시에 독자들의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게 만들었다. 또한 코난 도일도 자신의 집 유리창이 매일 부서지고, 길을 지나가다가 양산을 가지고 있던 노부인에게 얻어맞는 봉변을 당해야 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 이미 당대에 셜록 홈스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마니아를 가리키는 단어인 '셜로키언', 또는 홈지언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코난 도일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서 충분히 억울하고 항변을 할만한 사정들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찰스 앨버몬트 도일이 지속적인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다가 사망했으며 부인인 루이자 호킨스는 당시로서는 불치병에 가까웠던 폐결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울러 셜록 홈스 시리즈의 어마어마한 인기에 대한 부담과 지속적인 창작의 어려움,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던 다른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불만도 쌓이고 있었다. 그와 같은 문제들이 계속 이어지던 것을 참지 못한 코난 도일은 후폭풍을 감수하고 셜록 홈스 시리즈의 연재 종료를 선언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범주를 한참 초과해버린 항의를 셜로키언들은 무려 7년 동안이나 반복했다.
결국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실종되었다는 내용의 마지막 사건 이전이라는 설정을 덧붙인 세 번째 장편인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1901년에 발표했고, 그로부터 4년 뒤인 1905년에는 사실 셜록 홈스가 실종되지 않았으며 전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그의 친한 친구인 존 왓슨이 머무르고 있던 베이커가 221B번지로 복귀한다는 설정을 추가한 세 번째 단편집인 <셜록 홈스의 귀환>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연재를 다시 시작했으며 여전히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기에 이른다.
코난 도일은 이후에도 네 번째 장편인 <공포의 계곡>을 1915년에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집인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를 1917년에 발표했으며 10년이 지난 1927년에 다섯 번째 단편집이자 셜록 홈스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작품인 <셜록 홈스의 사건집>을 발표하면서 무려 40년에 걸친 세월 동안에 장편 4개, 단편 56개 등 모두 60개에 이르는 셜록 홈스 시리즈를 완결하는 금자탑을 쌓기에 이른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완결한 코난 도일은 말년에 심취한 심령학 활동에 주로 매진했으며 그와 관련된 연설을 이어가던 1930년 7월 7일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별세하게 된다. 그의 유언은 두 번째 부인인 진 레키에게 한 "당신 너무 멋져"(You Are Wonderful.)라고 한다. 그리고 코난 도일은 별세 이틀 전에 "나는 수없이 모험을 했다. 이제 가장 크고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코난 도일은 미스터리 문학사에 "셜록 홈스 시리즈"라는 걸출한 작품을 통하여 그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거인이었다. 그의 셜록 홈스 시리즈를 통하여 비록 에드거 앨런 포와 에밀 가브리오라는 작가들을 통하여 뿌리가 맺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소설로서의 그 위상이 너무나도 불안정했던 탐정이 등장하는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은 비로소 제 궤도를 찾아서 안정될 수 있었고, 그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미스터리 소설의 전성기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미스터리 소설을 중심으로 활동한 수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면서 미스터리 소설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하위 장르가 만들어졌으니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셜록 홈스 시리즈의 연재가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13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거대하게 남아 있으며 그 가치는 정확하게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부록-
https://gall.dcinside.com/reading/487607
1930년 7월 9일 조선일보 4면 생활/문화면에 게재된 아서 코난 도일의 부고 기사.
안떠요
업로드 됬음.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