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는 우월한 인간이 아니다. 창조적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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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미지는 니체의 여동생과 히틀러의 합작품이다. 
또는 오독한 사람들 

실제로 니체의 책은 군인에게 잘팔렸다.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뭔가가 되기 위한 다리다. 

인간 다음 이라는 위버멘쉬와 자기극복은 
종족 우월주의와 고통회피라는 면에서 
정치와 전쟁에 갖다 쓰기 좋았다. 


위버멘쉬 = 창조적 인간의 조건 

1. 시간에 대한 기존 관념을 벗어나야한다. 

이유는 강렬한 믿음 때문이다. 


니체의 글에서 후대에 숭배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메모가 있다. 
이 글을 썼을 당시 
니체는 무명에 가까웠다. 


이것은 나르시즘이나 말년에 나타난 
정신병 망상증 초기 증상이 아니다. 

실제 그는 믿었다. 

어떤 일을 생각하고 
정확한 행동을 하면 
미래에 대한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차있다. 

라면을 먹겠다 생각하고 
라면을 끓이는 동안 
라면을 먹는 일 
미래는 정해져있다. 

가다 자빠져 라면을 다 엎는 
일은 극히 적은 확률의 
변수이기 때문에 
그런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를 확대해보면 
미래는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면 높은 확률로 
정해져있는 것이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확정된 미래에 있다.
시간은 순차적이지 않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 
운동선수가 시간의 흐름을 잊고 
무의식적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니체가 생각했을 때 
자신의 사상은 
인간 사고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사상임에 확실했다. 

그러니 미래를 생각했을때 
자신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유명해지리라는 것도 확신했다. 

숭배받는 것을 두려워한 이유는 
숭배하는 것이 계급적이고 
경쟁적, 권력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창조적 인간이 되기 위한 
사고에 방해되는 관점이다. 

이것은 널리 퍼졌지만 
자신의 사상이 오독됐을 경우를 
걱정한 것이다. 

위버멘쉬는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우월한 인간이 아닌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선물을 주는 사람이다. 

니체는 자신이 인류에게 
선물을 줬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을 주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강렬한 믿음이 있어야한다. 
그럴려면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해야한다. 

정신적,신체적 자유로움이 필요한 이유다. 

자유로움을 방해한 기존 사회의 질서 
믿음, 의지하는 것들을 
박살 내고 싶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2. 위버멘쉬가 되는 것은 영원한 숙제다. 


RPG게임은 인간 대부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압축해서 보여준다. 

순차적이고 경쟁적이다. 

레벨 1에서 2로 되고 다시 몬스터를 
죽이고 3이 된다. 

만렙까지 찍고 숭배받는다. 

이 게임에 압축된 세계관을 정반대로 
생각하면 위버멘쉬를 그릴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유로운 정신과 신체로 
위버멘쉬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경쟁적,권력적 관점에서는 
인간을 레벨 1이라고 보고 
위버멘쉬를 만렙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만렙과 레벨 1이 실시간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니체 관점에서는 
인간이 곧 위버멘쉬가 될 잠재력이면서 
동시에 위버멘쉬는 다시 인간이 될 수있는 
하나의 상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의 몸과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한 
끊임없이 자기극복을 해야 

위버멘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자기 극복=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않고 세상 모든 것을 긍정하는 태도, 


3. 창조적 인간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거창한 예술품이 아니라 
양말이나 단추를 만든 사람도 
당연히 창조적 인간이다. 

또한 물질적 가치가 아닌 
사상가들의 새로운 
생각 또한 창조물이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모든 것이 
창조에 포함된다. 

그러니 창조적 인간은 
세계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사람이다. 


세계를 발전시킨 사람은 예전에도 
소수였고 지금도 소수다. 

그것은 특권이나 재능, 
운빨의영역으로 치부되었다. 

니체 사상이 계급적이었다면 

인간 다음이 위버멘쉬가 아니라 
'특정한' 인간 다음이 위버멘쉬라고 
썼을 것이다. 

아포리즘을 좋아한 니체가 
인간 다음이 위버멘쉬라고 한 것은 

모두가 창조적인간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 얘기했고 느꼈듯이 
우리는 어린시절 모두 창조적 인간이었다. 


자유로운 마음과 신체적 활동의 상태 

당연히 이 문장이 오독될 경우를 
걱정해야한다. 
범죄자들은 대게 저 상태니까 


그러니까 
올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자유로운 상태가 되야한다. 


이제 마지막이다. 


4. 니체가 본 미래 


두 가지 사회가있다. 

하나는 모든 것이 빽빽히 다 있는 사회다. 
내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저것들을 가지려면 남한테서 가져와야한다. 
남을 이겨야한다. 내가 앞서나가야한다. 
우월해야 가장 많이 가질 수 있다. 
가장 많이 가지면 숭배받는다.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사회다. 
내가 뭘 만들어야 한다. 
저쪽에 있는 사람은 저걸 만들고 
나는 이걸 만든다. 쟤는 그걸 만들고 
만든 것들은 제각각이고 모두 
같이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서로 도움이 된다. 
같이 더 빨리 발전한다.

두 사회는 정반대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두번째 사회를 봤을 것이다.
니체는 정말로 행복했을 것이다. 
그가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찾은 이유가 
그것이라고 믿는다. 

니체 전에도 창조적 인간들은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왜 지금 사람들이 
믿음이나 사회질서에 의지해 나약해졌는지 
명문화한 사람은 없었다. 


죵교의 시대 
생산의 시대 
유통의 시대 
전문가의 시대 
A.I의 시대까지 왔다 

이제 인간이 할 것이 없어보인다. 
인간 다음이 될 차례인 것 같다. 

그러나 
위버멘쉬는 우월한 인간이 아니다. 


선물을 든 이웃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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